마지막 계절

by 싸지타


6월에 접어들자 우솜돌은 더 말라 갔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급격하게 살이 빠졌다. 눈은 퀭했고 약물이 들어 노랗게 얼룩진 입 언저리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잘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밥을 먹지 못했다. 눈 뜬 시체 같았다. 탈피하려는 갑각류 동물처럼 우솜돌의 몸은 쪼그라들었다. 늑골이 작은 산봉오리처럼 도드라지며 숨을 쉴 때마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항암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료를 갈아 주사기에 넣어 강제로 먹였다. 가끔 토했다. 잘 걷지 못했고 비틀거렸다. 소변을 보려 방석에서 나오다 미끄러져 쓰러졌다. 건조한 코를 쓰다듬을수록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소중한 무언가를 꺼내다 절벽 아래 파도 속으로 떨어트려 영원히 잃고 마는 듯 아찔한 느낌이었다. 나는 괴로웠다. 10키로짜리 쌀 한 포대가 등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몸과 마음이 무겁고 우울한데 아이들 앞에서 웃어야 했다.


옆지기가 택배로 유아차를 보내왔다. 작고 검은 색이었다. 당*에서 샀다고 하던데 유아차가 너무 비싸 결국 저렴한 물건을 구매한 모양이다. 유아차를 보니 문득 7년 전 새벽에 꾼 꿈이 떠올랐다. 혈관육종을 앓던 부니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꿈 속에서 검고 작은 유아차가 길거리에 세워져 있다. 유아차는 덮개가 덮혀 있고 부니는 보이지 않았다. 꿈임에도 불구하고 부니가 검은 유아차 안에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며칠 뒤 부니는 동물병원에서 코마 상태로 호흡기를 뗐다. 그날 나는 종이 상자 안에 든 부니를 꼭 껴안고 거리에 주저 앉아 울었다. 꿈 속에서 보았던 부니의 검은 유아차가 우솜돌을 위해 선물처럼 도착했다. 옆지기에게 고마웠다.


지난 4월에는 우솜돌의 수술비용에 큰 돈을 썼고 산소통을 챙겨 보내줬다. 또 고마웠다. 1년 반을 함께 생활했던 고양이 탁구를 보내고 상심이 컸을텐데 그는 다시 우솜돌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에도 비용이 필요하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탁구는 천만원의 빚을 남겼다. 천만원. 매달 기본 진료비 30만원에 약값 30만원. 탁구는 깨잘깨잘 먹었고 늘 설사를 했다. 면역성장질환, IBD(아이비디). 선천적으로 장에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했다. 나는 옆지기가 탁구를 포기하기를 바랐지만 나 또한 우솜돌의 항암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피차일반이었다. 가엾어서든, 책임감에서든 생각해보면 이유야 어찌됐든 붙잡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남긴 빚이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아니다. 애시당초 자녀를 낳지 않은 부부는 현재 적절한 벌이가 있기에 저축으로 미래에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급류에 떠내려가는 가재 도구들처럼 벌어도, 벌어도 끊임없이 돈이 떠내려갔다. 아이들이 늙어갈수록 가재 도구는 뭉텅이로 더 많이 떠내려갔다. 부부는 가정법원에 몇 번 들락거렸다. 쓸모없이 서로 논쟁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싸우다보면 아이들에 대한 책임 공방이 자연스럽게 딸려나온다. 개체수를 불린 건 당신 아니냐라는 옆지기의 주장과 아이들의 엄마인 순돌이를 우리가 함께 데려왔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내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병원비 명목으로 위자료 몇 천만원은 줘야 한다, 라는 내 주장이 옥신각신 팽팽했다. 쉽게 말해 두 사람이 가진 성격이 서로 부딪혀 쨍그랑거리는데, 그런 순간에조차 노령견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수단이자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실 아이들 탓이라기보다 반려동물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우리는 다퉜다. 아니다. 건강보험보다 적기에 하지 못한 중성화 수술 때문이다. 출산을 예방하지 못한 우리들의 무지가 더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무지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빈곤했던 시절 우리가 질병처럼 앓았던 무기력이었다. 정신차려 보니 아이들이 열 둘로 늘어나 있었다.


2012년 6월. 태풍이 많은 것을 무너트렸던 최악의 장마철이었고 부엌 천정에서 뚫린 구멍으로 흙물이 떨어졌다. 부엌은 옛날 정지를 없애고 시멘트 벽돌로 부실하게 벽체를 쌓아올린 공간이었는데, 부엌 앞처마를 받치던 파이프를 태풍이 휘감아 버린 것이다. 쿵 소리와 함께 파이프가 뒤틀리며 처마와 이어지던 부엌 지붕이 찢어졌다. 찢어진 지붕을 보수했어야 하는데, 큰 돈이 들까봐 두려워 방수 천막을 사서 날아가지 못하게 벽돌로 덮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그곳은 어차피 폐가이고 위험한 곳이라며 주인은 되려 이사를 권유했다.


마당은 잡초가 우거지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공장에 출근할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날이 꾸무럭하면 뱀이 들어왔다. 시골 폐가에는 털과 개비린내로 가득했고 형제들 사이에서 또 다시 태어난 아이들은 기생충에 감염됐다. 모기 때문에 종이 바른 문을 열 수 없었다. 덥고 텁텁한 방 안에 누우면 선풍기는 펌프처럼 기이한 냄새를 끌어올린다. 옆지기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겠다며 주유소 알바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떠났다.


땅이 패듯 무서운 폭우가 계속됐다. 집 근처 강이 범람할 수도 있기에 만일에 대비해 초등학교로 피난을 가야만 한다. 수재민들은 학교 체육관에라도 대피할 수 있지만 나는 열 두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다. 면사무소에서 공무원들이 나왔다.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겠지만 개들은 입양을 시켜야 한다는 전제였다. 긴급위기가정에 지원하는 30만원만 받고 나머지 제안은 거절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물폭탄의 두려움 속에서 늪과 같은 계절을 버텼다.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배변을 해야 한다. 장마철이라 진흙을 묻히고 오는 아이들을 잡아 한 녀석씩 발바닥을 닦아주면 세상이 온통 개발바닥으로만 보인다. 빗줄기가 세찬 날에는 수건을 몇 개씩 준비해 들어오는 녀석들마다 털을 닦아 줬다. 마루로 올라오지 못하고 토방에서 서성이는 녀석들은 안아 올려주고, 뱀이라도 물리지 않을까 늘 장대를 들고 아이들 곁을 서성이며 주변을 경계한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가끔 나무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배짱 좋은 뱀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초여름 특히 장마가 시작되는 6월이 싫다. 6월은 겨울처럼 무채색의 계절이다. 날은 흐리고 습기를 가득 품은 뜨거운 바람이 분다. 옛 기억 때문인지 비만 오면 날이 곤두선 채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이미 20여년 전 일이고 우리는 그때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지역, 다른 집. 특히 물이 찰 염려가 적은 꼭대기집에 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날 후두둑 빗소리를 듣던 나는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산에서 흘러나오는 빗물이 석축을 무너트리고 마당 배수로 어딘가가 막혀 집 안으로 흙탕물이 차오르는 환영에 시달렸다.


장마가 끝나면 폭염이 시작된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강렬하고 신선한 아침 햇살이 창문 안으로 들어와 바닥 장판에 눈부시고 뜨겁게 드리운다. 그 빛은 야생 허브처럼 향긋하게 느껴지고, 밖에서는 매미가 울며 우중충한 껍질을 벗은 파란 하늘이 드러날 때 나는 마당으로 나가 큰 숨을 쉬며 기뻐하는 것이다. 땀구멍에서조차 곰팡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은 눅눅한 장마가 지나고 이제 태양이 온 세상을 불지르러 온다. 나는 두 팔 벌려 찬란한 불볕을 환영하며 “누구나 자신만의 태양을 갖고 있다!”라며 소리지른다.


또 어느 날은 태양이 점령한 땡볕 아래 적막한 시골 동네를 걷다보면 풀숲 어디에선가 찌륵찌륵 풀벌레가 운다. 양로당에 모인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낮잠에 드는 시간에 나 홀로 오존 폭탄을 맞으며 멍청한 얼굴로 걷는다. 그러다 탱자 나무 아래에서 얼굴도 모르는 풀벌레 가수의 노래를 듣다보면 왠일인지 주변 풍경이 갑자기 변해버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곤 한다. 노랗게 익은 나락들이 촤르르르 가을바람을 타고 밀물처럼 몰려드는 환상.


우솜돌은 늦가을에 태어났다. 수확이 끝나 콤바인에 잘린 벼밑둥만 남은 텅 빈 들판에서 지푸라기 냄새가 밀려왔다. 10월이 오면 만월처럼 우솜돌의 생은 꽉 차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도 옆지기도 알고 있다. 일 년만에 다시 새로운 태양이 돌아오겠지만 우리 곁에 우솜돌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슬픔 속으로 또 발을 헛딛고 나의 감각은 자꾸만 시간을 반복하며 모든 풍경이 고무찰흙처럼 뒤죽박죽 엉킨다. 폭염 속에서 노랗게 나락이 익는 추석이 오고 빨간 단풍나무 가지 위에 잔설이 얼었다. 늦은 겨울 햇살 속에서 남풍이 불면 흰 찔레꽃이 시들어간다. 그리고 코랄빛 석양이 검은 유아차 속 우솜돌을 비춘다. 우솜돌은 분홍색과 주홍색으로 물든 한 쪽 눈을 약간 짜브라트린 채로 석양을 바라보지만 곧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즐겁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숲돌아, 숲돌아, 이제 숲돌이는 자유로워질 거야. 바람처럼, 구름처럼, 웃는 태양처럼.”


6월에 접어들자 우솜돌은 숨쉬기를 더욱 힘들어했다.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콧구멍이 좁아졌다. 지난 토요일에는 동공이 제 멋대로 움직였고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했다. 일요일 아침, ‘할부지’가 밀어주는 검은 유아차에서 내린 우솜돌은 피똥을 쌌다. 우리의 여행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옆지기와 나는 알고 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어쩐 일인지 우솜돌과 단 둘이 산책을 하고 싶었다. 유아차를 밀다 저 멀리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앉아 쉬었다. 습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불었다. 나는 아이의 털이 새털처럼 가볍게 일어나 흔들리는 것을 본다. 맞은편 갯버들숲에서 불어온 바람에 강아지풀도 흔들린다. 새소리가 야단스럽다. 그 뒤로 이어지는 고요와 적막. 이따금 지나치는 차소리. 그래, 6월이지. 두렵고 두려운 6월. 나는 12월 사수자리 태생이고 6월이 지나면 죽음의 전령사인 명왕성에게 낯익은 별 하나가 찾아온다. 너그러운 비구 행자, 목성. 명왕성의 가르침은 내 안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게 되겠지. 과거의 두려움인가, 분노인가 혹은 현재의 상실감인가, 아이들에게 종종 화를 내는 나쁜 버릇인가. 하지만 목성은 공처럼 둥글게 몸을 말며 슬퍼하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겠지. 아아, 숲돌아. 너는 머지 않아 할무니를 비추는 별이 되겠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지. 이것이 네가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계절이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산책이라는 것을. 그리고 산책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끊임없는 고백의 시간이라는 것을.










숲돌이(숲 속 요정 우솜돌).HEIC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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