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체코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나의 모든 고양이들(All my cat)’에 관한 내용을 엿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목에서 드러나듯 흐라발은 고양이를 애정하는 ‘냥중독자’였다. 그는 교외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그곳을 찾았다. 그러다 문득 암컷 고양이들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태어날 새끼들을 생각하자 그 새끼들이 또 새끼들을 낳아 끝없이 늘어날 묘구 증가에 큰 공포를 느꼈다.
흐라발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당 네 아깽이가 태어나고 그 아깽이가 또 다른 아깽이를 낳아 자신이 수많은 아깽이들 사이에서 익사하는 상상 속에 빠졌다. 그는 미래에 닥칠 위기에 젖어 있던 중 항시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으로 그와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는 고양이들을 피하려다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고 그만 화가 폭발한 모양이다. 결국 그는 고양이 중 한 녀석을 잡아 때리기까지 했다. 때리고 난 뒤에는 책상에 앉아 작가로서 본업인 글쓰기에 태연하게 매진했지만 곧 죄책감에 사로잡혀 난로에 불을 올려 고양이들에게 데운 물이나 따뜻한 음식을 주며 참회를 하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온 뒤에는 별장에 두고 온 고양이들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기도 한다.
흐라발의 처지가 나와 흡사한 면이 많았다. 밝음이, 놀숲, 짭얄이, 누돼, 탁구, 고니는 내가 직접 힘들게 포획한 뒤 중성화한 고양이들이다. 손길 한 번 허락하지 않는 아이들이어서 포획도 힘이 들었다. 장맛비가 쏟아지거나 폭설에 잠기는 나쁜 날씨여도 상관 없었다. 밥차는 언제나 출동했다. 하지만 6년째 아침 저녁 사료를 두 번 나눠주고 깨끗한 식수와 간식 심지어 야참까지 챙겨주는 나를 아이들은 정작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 대하듯 기겁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어이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이 혹시 어딘지 모르게 고양이를 잡아먹는 맹금류처럼 생긴 건 아닌지 꼼꼼히 뜯어보기조차 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모든 아이들의 수술을 마치자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재작년 겨울 고새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고새의 등장은 내가 애써 만든 모든 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고새는 2년 전 갑자기 우리집 앞에 나타난 어린 고양이인데 대문 앞에서 끝없이 울었다. 얼마나 굶었던지 볕 좋은 탁자 위에 밥을 주자 정신없이 먹고 난 뒤 그릇을 껴안고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겨울을 나면서 ‘고새를 못 참고’ 임신을 해 아깽이 네 녀석을 우리집 마당에 낳았다. 결국 고새가 싸질러 놓고 어쩔 수 없이 양육을 내가 책임졌다. 초유에 불린 따뜻한 아기 사료를 먹은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셔라. 담장 위에서 호시탐탐 밥을 노리던 ‘펄랭이’ 아줌마가 자신이 낳은 아깽이 세 마리를 뻐꾸기 탁란처럼 우리집 마당에 떨구어놓고 갔다. 기존의 아이들을 포함해 밥을 먹는 아이들이 모두 열 네마리로 늘어났다.
나는 아침마다 밥을 달라며 악을 쓰는 아깽이들에 둘러쌓여 결국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벌어진 분홍 입 안 너머 송곳니로 포위된 듯한 느낌은 정말이지 아찔했다. 굼떡굼떡한 고양이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이웃들 중 누군가 이 광경을 훔쳐볼까 두려워 겸연쩍은 표정으로 밥을 주기도 했다. 게다 솔직히 이대로는 도저히 사료값을 감당 못할 거 같았다. 중성화를 한 밝음이나 놀숲 등 기존의 고양이들에게만 밥을 줄 수 없는 것일까? 많은 아이들이 좁은 마당을 차지했고 밥차 출동에 황홀한 표정을 짓던 멍청한 몇 녀석들은 무자비하고 바쁜 내 운동화에 발이 밟혀 비명을 지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나는 원하지 않는 현실에 화가 끓어 올라 양파를 걸어놓는 용도로 쓰는 대나무를 집어들고 소림사 권법을 자랑하는 이소룡처럼 마당을 두들기고 담벼락을 치다 공중에서 휙휙 소리나게 마구 휘저으며 “다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흰 털빛을 가진 아깽이들은 바람에 휘날리는 휴지 조각처럼 모두 담벼락 위로 흩어져 도망쳤다. 그러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려 갑자기 시내로 달려나가 캔을 몽땅 사서 사료에 비벼주며 납작 엎드려 슬슬 피하려는 고양들에게 어서 많이 먹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나는 늘 중얼거렸다.
‘고새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니, 고새에게 밥만 주지 않았더라도!’
그랬던 내가 어느 날 우연히 기묘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고새와 골목대장 호동냥이 우리집 마당에서 가족처럼 서로 반갑게 볼을 비벼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직감으로 알았다. 호동냥의 소개로 고새가 우리집에 나타났다는 것을. 호동냥이 고새를 꼬드긴 것이 분명하다. ‘너, 그거 알아? 우리 동네에 무료급식소가 있어. 대문 앞에서 울고 있으면 어떤 호구가 나와 밥을 주던데?’ 이런 상상에 이르자 나는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고양이라고 다 같은 고양이가 아니다. 소심한 고양이, 당당한 고양이, 얌전한 고양이, 사나운 고양이, 장난치는 고양이, 밋밋한 고양이, 눈치보는 고양이, 눈치없는 고양이, 뽐내는 고양이, 수줍은 고양이 그리고 뻔뻔한 고양이가 있다. 뻔뻔한 고양이, 그래 뻔뻔한 고양이가 있다. 흐릿한 회색과 누런 털이 뒤섞인 덩치 큰 테비 고양이. 뻔뻔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양이 말이다. 이 녀석은 거들먹거리는 뽄새도 희한했고 기이하게도 얼굴이 아주 큰 녀석이었다. 처음에는 신장이 안 좋아 얼굴이 부었나 싶어 측은한 마음에 관찰이란 것을 했다. 두고 보니 꼭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게다 턱살이 두 겹으로 늘어져 축 쳐진 목도리를 걸친 것 마냥 우스꽝스러웠다. 피부층도 어찌나 질기고 도톰한지 인조 캐시미어 담요에 본드를 발라 밀착시킨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보면 볼수록 한 쪽 눈을 짜부린 채 쳐다보는 눈빛이 슬슬 기분이 나빠져 오는 것이다. 커다란 시가를 문 채 한 쪽 눈을 찡그리는 늙은 마피아 같은.
이 녀석은 우리 구역 대장이었다. 덩치 큰 외부 침입자들과 목청 높여 싸우지만 내부에서는 구역원들을 괴롭혔다. 밝음이, 놀숲, 짭얄이, 누돼는 우리집을 대표하는 마당냥이들이다. 사계절 내내 제대로 쓰다듬어 본 적 없이 충심을 다해 음식을 갖다 바쳤다. 그런데 골목대장인 이 녀석은 장발장을 뒤쫓는 자크 형사처럼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음식을 뺏어먹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이 아이들에게 볼 일이 아주 많다. 그 볼일이라는 것이 여자 아이들의 항문 냄새를 맡으며 귀찮다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러다 대뜸 덮친다. 중성화한 여자 아이들은 신경질적으로 냐옹거리고 냥펀치를 날리며 뺨을 때린다. 귀싸대기를 맞으면서도 졸랑거리며 따라붙는다. 게다 중성화한 남자아이들까지 덥석 물어 꼼짝도 못하게 만든 뒤 붕가붕가를 시도한다. 그저 아무나 붙잡고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다. 호동냥의 행동이 강간범을 보는 듯 몹시 불쾌했다.
우리집에서 3년을 채 못 살고 고양이별로 떠난 귀얄이도 골목대장이었다. 귀얄이는 임신한 냥이들을 정중하게 밥그릇 앞으로 모셔온 뒤 냥이들이 마음 편히 밥을 먹으라고 망을 봐주기까지 한 배려심 넘치는 고양이였다. 떠돌이 방랑자에서 골목 대장이 된 귀얄이는 허피스와 신부전 때문에 평생 고생을 했지만 그 아이가 우리집에 적응하며 가족이 되기까지 보여준 기품 있고 우아한 행동은 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얼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천하장사 씨름 선수 이름까지 얻게 된 호동냥은 어떠한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대장이란 직위룰 이용해 지나치게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습이 얄미웠다.
무엇보다 우리집 여기저기에 고양이 오줌을 내갈기며 고약한 냄새를 풍겨댔다. 숨숨집 안에 넣어둔 담요며 지푸라기 위에도 온통 이 녀석이 자신의 오줌을 싸질러 놓은 것이다. 지독한 냄새였다. 통창을 열 때마다 그 놈의 냄새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호동냥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만 서로 죽고 못 사는 고새도 통덫 포획 목록 1순위였다. 기존의 아이들이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밥그릇 안으로 눈치 없이 머리를 끼워넣고 밥을 뺏어먹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모두 낯선 고새를 피하기 시작했고 결국 단식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호동냥과 고새를 떠올리자 골치가 아팠다. 마음 크게 먹고 호동냥을 통덫에 가둬 우리집과 아주 먼 곳에 버려버릴까 고민 중이었다. 그 고민은 진심이었다.
5월 중순이었다. 우솜돌은 많이 아팠다. 평소에 좋아하던 닭가슴살이나 삶은 고구마를 접시에 얹어 냄새를 맡게 했지만 전혀 입을 대지 않았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불린 사료를 믹서에 갈아 주사기에 넣은 뒤 강제로 먹였다. 안타까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억지로 삼키는 우솜돌도, 주는 나도 고역이었다. 일어서도 잘 걷지 못했다. 비틀비틀 걸었다. 그래도 흙냄새를 좋아했다. 나머지 아이들이 항암을 하는 우솜돌의 소변을 밟으면 안 되기에 대문 바깥에 나가 배변을 보게 했다. 아이가 배변을 하면 바가지에 물을 담아 씻어냈다. 문득 어둠 속 탱자나무 아래 누군가가 앉아 있기에 자세히 보니 호동냥이었다. 게슴츠레 뜬 눈을 짜브리며 앉아 있었다. 나는 우솜돌이 보기 전에 쫓아버릴 요량으로 다가갔는데, 우솜돌이 먼저 호동냥을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형체를 알아본 우솜돌이 놀라 짖으며 달려들었다. “ 왈왈!” 호동냥은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때 내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마치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올렸던 것들이 죄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짖는다는 것은 흥분을 했다는 것이고 암세포들이 이 흥분을 자양분 삼아 아주 빠르게 퍼져나가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목구멍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던 그 동안의 온갖 감정들이 분출했다. 어둠 속에서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으며 우솜돌에게 먹이려던 죽 한 그릇을 호동냥 때문에 엎은 기분이었다. 분노였다. 내 저 놈을 살려 두지 않을 거다. 사실 호동냥은 그저 탱자 나무 아래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한 번은 빨래를 널기 위해 마당으로 나서는데 고니 목을 물어뜯은 채 올라타고 있기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 썅노무 새깽이!” 등짝을 냅다 후려갈겼다. 성별을 떠나 아이들을 괴롭히는 행위에 참았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따끔한 정도가 아니라 등짝이 얼얼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벌에 한 방 쏘인 듯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유유히 담장을 타고 사라져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호동냥이 매일 밥을 먹으러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호동냥에게 사료를 대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탁구의 장례식에 호동냥이 참석했다는 이유다. 탁구는 수수깡처럼 몸이 말라 보기만 해도 얼마 살지 못할 것만 같은 길아이였고 우리집에 매일 밥을 먹으러 왔지만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검사 결과 탁구는 선천적으로 장에 면역기능이 없어 설사를 자주 하는 희귀한 질병을 앓았고 비싼 항암약을 평생 먹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시한부 판결이 내려졌다.
일년 반 뒤 보드라운 재가 된 탁구를 집 주변에 뿌리기 전 유골함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탁구의 친구들인 짭얄이, 밝음이, 누돼, 놀숲이 집 뒤 야산 공터에 모였다. 마치 장례식장에 조문이라도 온 것마냥. 나는 동물에게도 영성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이들은 옛 친구가 하늘 나라로 떠나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유골이 뿌려지는 내내 조용했다. 그 중에 호동냥이 있었다. 호동냥은 일행에서 약간 떨어져 뭔가 딴청을 부리는 듯 했다. 유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짜증이 났지만 탁구 장례식에 와준 것이 기특했다. 또 덥고 추운 계절을 혹독한 길바닥에서 나야 하는 아이기에 내 미움에도 한계는 있었다. 밉지만 또 미워할 수가 없다.
길아이들을 생각하면 사료나 중성화, 치료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항시 마음이 버겁다. 그러다 마음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마치 해왕성처럼 말이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피부병을 앓고 털이 뭉텅 빠지는 고양이라 해도 아픈 환자이기에 따로 밥을 챙겨주게 된다. 또 다른 녀석은 다리를 절뚝여 뼈에 금이라도 갔는지 엑스레이라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당장 포획하기 보다 고픈 배부터 먼저 채워줘야 할 것 같다. 호동냥도 마찬가지다. 등짝이 불이 나게 맞았어도 이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다리 사이를 감아온다. 마치 “아이, 왜 그래, 나 알잖아?” 라고 앙탈을 떠는 듯. 호동냥에게는 자아가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상태인 것이다. 나라고 고집할만한 실체가 없다. 밉고 귀찮은 녀석임에도 서서히 거부감이 줄어든다. 나도 덩달아 미안해진다. 이것이 체념인지 수용인지 도무지 헷갈리지만. 이 헷갈림은 또 해왕성의 고전적인 특징 아닌가.
나는 어린 시절 집에 갇혀 지낸 적이 많았는데 심심하고 외로웠지만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바로 마당에서 닭과 토끼, 개 혹은 우리집을 염탐하는 고양이들을 관찰했던 것이다. 파브르처럼 동물에 대한 열렬한 탐구심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상당히 평화로웠다(갇혀 있는 녀석들은 화가 잔뜩 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운이 좋은 봄날에는 파꽃이나 무꽃에 날아드는 흰 나비나 호랑나비, 붕붕거리는 벌들을 몰래 쫓아다녔다. 그들에게서 느끼는 온갖 친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어린 보호자이고 싶었다. 이 어린 보호자는 인간이 식물이나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드디어 몇 년 전 잎사귀가 무성하던 공원길에서 나무 틈 사이에 있던 새 한 마리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새는 '호로로록' 울었고 나도 따라 울었다. 마음 속에서 '안녕, 새야! 반가워.'라는 메시지를 담고서. 잠시 후 뜸을 들이다 새는 다시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새는 한참 더 뜸을 들이다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의 지저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어? 뭐야, 대체 너 누구야?'
나는 도통 어른이 되지 못했다. 몸은 커졌지만 여전히 여덟 살 아이 수준의 정서에 머물러 있다. 가족 내부에서 나는 그다지 행복한 아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마당에 앉아 있던 그때 그 순간이 내 삶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홀로 동물들과 어우러지는 삶. 내 삶의 목표는 언제나 동일했다. 그때 그 공간과 시간을 복원하는 것. 그렇다면 질문 몇 가지를 추가한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대체 얼마나 행복했기에? 평생을 그 순간을 복원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라니 무슨 뜻이야? 또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나는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 때문에 홧김에 다시 장대를 들 수도 있겠지. 흐라발처럼 호동냥을 잡아 때릴 수도 있을 것이다(요즘 호동냥은 아이들을 거의 괴롭히지 않는다. 한 달 전 땅콩을 수확했거든).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를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애틋함은 이별을 전제한 감정이다. 과거의 개든 고양이든 닭이든 토끼든.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떠날 것이다. 불교 교리에 '인연과보'란 말이 있다. 인연을 맺었다면 과보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것은 징벌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법칙에 관한 것이다. 사랑한다면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별은 항시 나의 과보였다. 그 순간이 너무나 두렵고 괴롭지만 나는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나는 안다. 먼 훗날에도 새롭게 만날 미지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조차 멈추지 않을 것임을. 어린 시절 마당에 앉아 있던 나는 아이들의 죽음을 몰랐다. 어렴풋하게 알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까맣게 잊었다. 죽음을 안 이후에도 달라질 것은 없다.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처럼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아이들을 애틋하게 추억할 거니까. 호동냥 또한 마찬가지일 것임을.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구름 두웅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