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탁구가 떠났다. 길고양이로 태어나 떠나기 1년 반 동안 투병 생활을 했던 탁구. 깡마른 몸으로 남편 아파트에서 치료 받으며 조금씩 살을 찌웠던 탁구가 수숫대처럼 마른 채 딱딱하게 굳어 돌아왔다. 탁구의 장례식을 예약하면서 깐돌이, 우믈이, 루나까지 공동 화장을 하기로 했다. 그들은 집 한 귀퉁이 낡은 나무관 속에서 뼛조각까지 바스라지고 있었다. 깐돌이는 2009년, 루나는 2011년, 우믈이는 2016년에 죽음을 맞았다. 그들은 땅에 묻혔다 다시 파내어지고, 묻혀지고 파내어졌다.
16년 전 교통사고로 우리와 헤어진 깐돌이를 산책했던 강물과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둑에 묻었다. 다른 지역으로 집을 옮기면서 삽으로 시신을 파냈다. 함께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는 반려동물의 장례 문화가 홍보가 덜 되었고, 화장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장례 비용에 큰 돈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때는 너무 가난해 유골함이나 화장 비용을 마련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둑에 묻었다.
1년 뒤 순돌이의 딸 다롱이가 우솜돌, 까비, 루나를 낳았다. 2010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우리집 개들의 종족 번식이 활발해 남편의 말대로 창세기 아브라함의 계보와 견줄만 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순돌이가 다롱이를 낳고 다롱이가 우솜돌, 까비, 루나를 낳았느니라.’ 루나는 얼마 살지 못해 앞마당에 묻었고 이사갈 무렵 깐돌이와 같은 관에 넣어 새로이 눌러앉은 집 뒷마당에 묻었다.
아이들을 땅에 두고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태어나 같은 상황에 처해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시신을 옮기는 행위가 쓸데없는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유기와 같은 행위였다. 뼈만 남은 시신이라 해도 말이다.
이사간 집에서 1년 뒤 우믈이가 심장마비로 떠났다. 나무관을 짜기로 했다. 어디에서 관을 구해야 할 지 몰라 성구 목수에게 부탁했다. 교회에서 쓰는 의자나 탁자를 만드는 목수였다. 관은 제법 튼튼했다. 차갑게 굳은 우믈이의 품 안에 뼈만 남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깐돌이와 루나를 넣고 살구나무 아래에 묻었다. 땅을 파는 남편을 보며 나는 영화 ‘조용한 가족’의 송강호를 흉내냈다. ‘아부지, 뭐 또 묻을 거 없어요? 김장독 같은 거, 김장독!’
몇 년 뒤 인생 종착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현재의 꼭대기집으로 이사오기 위해 다시 아이들의 관을 파내야했는데, 무거운 흙에 눌려 꺼내느라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삽으로 관 아래쪽 면을 댄 채 삽자루를 누르고 반대편도 누르며 삽을 지렛대처럼 이용했다. 뒷집 할머니가 다가왔다. 뭘 하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할머니야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할머니의 서방님은 동네에서 깡패와 다름 없는 노인이었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결국 마지못해 ‘술을 묻어뒀는데 파내고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조금씩 정착해서야 떠나가는 아이들을 화장하기 시작했다. 기본 장례만 치러도 크게 비싸지 않아 깜짝 놀랐다.
길고양이에서 집고양이로 삶을 마감한 탁구는 작은 몸만큼이나 아주 적은 잿더미로 남았다. 유골함을 받았을 때 이제 막 화장을 끝낸 터라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함께 화장을 한 깐돌이, 루나, 우믈이의 공동 유골함도 건네 받았다. 직원은 공동 유골함을 바라보더니 오랫동안 땅 속에 있었고, 또 바깥에 방치되기도 한 아이들인 터라 머지 않아 재가 상할 가능성이 높으니 뿌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파드득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영혼은 나비처럼 날아가버리고 남은 것은 껍데기 뿐이다. 공기는 흩어 사라지고 흙은 가루가 된다. 사라진 것을 애타게 붙잡으려는 나의 헛된 욕망들. 파고 또 파고. 묻고 또 묻고. 쓸쓸한 웃음이 나왔다. 북향방 책상 위에 얹어 두었던 부니, 귀얄이, 순돌이의 유골함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왜 아이들을 잘 가라고 떠나보내주지 못하는 것일까? 이 아이들에게는 떠날 권리조차 없는 것일까? 유골함을 붙잡고 있으면 위로가 되나? 행복한가? 가슴 아픔만 더해지는 것은 아닌가?
탁구를 집 근처에 뿌리고 아이들과 살았던 시골 월세집, 모든 아이들이 태어났던, 이제는 폐가마저 흔적없이 사라진 옛집 근처 둑길에 올랐다. 바람은 모든 것들을 움직였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밥 말리의 머리털처럼 흔들리고 버드나무 군락을 에워싼 보리밭이 조금씩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며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등 뒤에는 주름진 탁류가 흐른다. 오랫동안 희부윰한 먼지를 쓰고 있던 북향방 아이들의 유골함이 도착했다. 순돌이의 유골함에 손을 집어넣어 조금씩 허공을 향해 뿌리자 흰가루가 하얗게 흩어져갔다. 바람을 타는 연처럼 날아가다 어느 지점에선가 뚝 떨어진다. 나는 헹글라이딩 교관처럼 회색의 재를 붙잡았다 조심스레 떠나보내기를 반복한다.
가슴 아픈 시간이 지나자 뼛가루 뿌리기에 재미가 좀 붙었다. 투포환 선수처럼 더 멀리 멀리 날려보내기 위해 한 쪽 다리를 짚고 한 쪽 다리를 뒤로 버틴 채 한 아이씩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떠나라며 소리쳤다. 유골은 면사포처럼 흩어지다 하얀새처럼 추락했다. 바람이 세어 오히려 날이 좋았다. 바람 속을 걸어가는 흰새들. 날개를 펼치며 저 아래로 소멸하는 새떼들. 먹먹한 가슴 끝자락에 후련함 같은 감정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아픈 우솜돌이 마저 떠나면 이곳에 뿌려줄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났던 집 근처이기도 하지만 막힘없이 탁 트인 공간에 아이들을 날려보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 목함과 장갑, 천년포를 태웠다. 북향방에 들어와 아이들의 유골함이 놓였던 자리를 봤지만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스스로 놓아준 것은 처음이다.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
언젠가 나는 ‘영계로부터의 메시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실버 버치라는 오래 전 죽은 인디언 영혼이 영매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한국인 박금조씨가 번역한 책이다. 환생을 믿지 않더라도 사는 일이 고통스러운 사람, 삶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자아의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실버 버치는 ‘죽은 영혼은 사후 세계에 머물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지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 즉 영적 성장의 기회를 미션처럼 수행하며 진보한다'라고 말한다.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과 반려동물은 분명 계속 환생할 수 있고 가족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환생을 거듭할수록 인간과 반려동물의 영적 성장의 속도는 불일치할 수 밖에 없다. 그 불일치 때문에 언젠가 그들은 영원히 헤어진다.
져비가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해진 5년만에 나는 그의 꿈을 꾼 적이 있다. 복숭아나무를 심은 과수원 안에 허름한 오두막이 보였고 방문을 연 순간 져비와 만났다. 우리는 기뻐 얼싸 안았다. 져비 이외 다른 개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들은 떠돌이처럼 보였다. 나는 져비를 안은 채 그들과도 반갑게 인사했다. 져비를 얼마나 안고 있었을까. 나는 이상한 답답함과 바깥에 대한 동경을 느끼며 여전히 만개한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져비를 남겨둔 채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끝도 없이 긴 산길을 빠져나왔고 인간들이 사는 세계에 들어섰다.
어느 날 출근하려던 나는 갑자기 실버 버치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아이들의 사진이 든 액자, 인형, 그림 따위를 전시해놓은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꺽꺽대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두고온 져비를 생각하자 터질 듯한 그리움과 서러움에 목을 놓아 울었다. 져비는 지금도 떠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언젠가 영원히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실버 버치의 말은 분명 거짓일 것이다.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들과 영원히 머물 수 있다면. 내 울음 소리는 너무 커서 귓가가 심하게 찌륵거렸다. 아이들의 유골을 뿌리고 집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벗어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꾸욱 막아놓았던 것이다. 유리병 안의 내용물이 상하거나 흘러 넘치지 않도록 잘 막아뒀던 코르크 마개가 펑 소리를 내며 튀어오르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