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작가, <선량한 차별주의자>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할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차별이나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도 스스로를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차별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의 세상의 기준과 서 있는 위치에서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마 어떤 사람, 차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차별하지 않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기 위해서 바로 이 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나도 그랬으니까.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한 명이었던 작가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다문화학과 교수로 다양한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한 강의에서 '결정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지적을 받게 된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기거나 지적한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작가는 이 사건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
생각해 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作 본문 중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했던 수많은 생각들도 '차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차별 당하는 약자로 생각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다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모든 부분에 공감할 수 없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지만, 그런 여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외국인,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는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이미 다른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했고, 외국인과 난민을 배척하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여성들의 입장 역시 차별이라는 부분에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서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作 본문 중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디에 서있는지를 생각했다. 여성, 청년, 정규직, 기독교, 이성애자, 한국인. 내가 속한 세계는 어떤 기준에서 보면 다수에 속하고, 어떤 기준에서 보면 소수에 속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소수에 속한다고 크게 느끼며 살지는 않았다. 구조적 차별에 부딪혔을 때도 사회적 구조에 크게 반발하기보다는 수용하고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 것을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나와 다른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대한다고 했을 때 겉으로는 선량하고 차별이 없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색의 목줄을 차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저 사람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고, 내가 저 사람에게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잘 해줘야 한다는 건방진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아닌 그냥 차별주의자인 것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作 본문 중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그렇다고 책은 나 같은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구나 차별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차별일 수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다수에 목소리에 묻힌 소수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고, 그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역사상 많은 차별을 바꿔왔다. 신분제도, 노예제도, 흑인차별, 여성차별 등 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과거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바뀌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나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들이 그렇다.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 또한 지금의 차별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구 시대의 유물로 느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사실 나는 화장실 문제에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꼈었다. 흑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따로 있었던 시설,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남성보다 적었던 시절,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서 불편했던 시절 등에 비하면 지금 화장실은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위한 화장실, 크게는 남녀 누구에게나 평등한 화장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반감이 들었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여성들을 얼마나 두렵게 하는데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말이 되는 건가. 아니면 작가가 말한 외국의 사례처럼 아예 세면대까지 같이 놓인 커다란 화장실이 모두 분리되어 존재해야 하는데 공간적으로 너무 비효율적인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장애인 화장실도 처음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일반 화장실보다 큰 면적을 차지하지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녀 누구에게나 평등한 화장실도 결국 그런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생각에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관념 속의 평등을 현실로 구현하는 매우 구체적인 인권 프로젝트이다.
'다양성을 포함하는 보편성'을 만들기 위한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는 함께 토론하고 연구해야 한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作 본문 중
변화는 처음에 고정관념을 깨기 어렵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나면 어느 순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그랬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그럴 것이다.
다만 높낮이가 다른 길을 걸어야 할 수도 있고, 구불구불한 길을 만나 같은 거리도 더 오래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막다른 곳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커다란 장애물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길이 있고, 모든 곳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길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또 열어갈 것이다.
"희망을 가지세요."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作 프롤로그 중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갑자기 차별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또 내가 서 있는 땅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편협한 생각과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이 평평한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희망'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모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희망이라는 따뜻한 단어가 그 모습 그대로 쓰일 수 있고, '나'라는 존재가 그저 '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