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이력서
빼곡한 일기장
내 젊은 날이 남긴
유일한 선물
옛 일기장을 다시 뒤적인다.
눈물과 웃음
다독임과 질책
버려짐과 일으킴
상반된 내용으로 가득 찬 일기장이 넌지시 손을 내민다.
맨발로 딛고 있는 땅이 너무 뜨거워
제발 살려달라며,
이 고통에서 날 구해달라며
울고 뛰며 통곡하듯 남겨둔 기록이
위안이 되어줄 날을 맞을 줄
그때는 몰랐다.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어딘지 모르게 멋들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
니체, 헤겔, 비트겐슈타인....
카프카, 고골, 보르헤스, 도스토옙스키, 윤동주....
가난한 내 글을 보며
종이를 채우고도 밖으로 내놓지 못했다.
확신은 있었지만 자신은 없었던 나였기에
세상이 꺼내 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아지은 아니라며 한결 같이 나를 외면했다.
기다림과 포기의 중간
'살아있는 한 내 생에 포기는 없을 것이다.'
결론은 그랬다.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
다시 마주한 운명,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목놓아 울었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린 그때,
세상살이에 덴 내게
일기장 속 끄적임이 위로를 건넨다.
일상을 속살거리는 이야기가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너덜너덜해진 심장에 염산을 부은 듯
삶의 막막함에 신음하고 있는 시간,
누구도 내게 해주지 않은 말을
십 년 전 내게서 듣는다.
청춘의 열정을 어떻게 해야 몰라
퍼질러 앉아 울던 그때 남긴 글귀에 기대
나는 웃으며 운다.
내가 받은 소소한 위로를
조금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길 기도하며
배낭 속에 넣어 둔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십 년 전 나로 돌아가 십 년 후의 나를 만나려 한다.
어떤 세상이 얼마나 남겨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 공간에 남겨지는 글이 한 줄이라도
누군가의 가슴을 어루만져 수 있다면
그 일은 전망이 없다며
내 지난 시간을 無로 만들려 했던,
내 삶 자체를 실패로 단정하려 했던
폭력 앞에 조금이나마 어깨를 펼 수 있지 않을까.
이 기록이
공해가 되지 않길,
누군가의 귀한 시간을 아깝게 하지 않길 기도하며
내 푸른 봄날의 기록을 하나씩 전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