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이태원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그리고 다른 시각: 그 두 번째 이야기(3/3)

by 전주언

2020년 스물넷 이재영. 절심한 바램으로 이태원을 만나다


의경 시절. 미군기지에 미시설 근무를 나가기 전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었다.

바로 근무지 선택이다. 가위, 바위, 보 한 판에 내일 운명이 달라진다. 꽉 막힌 유리창안에 동물이 되느냐 아니면 자유를 얻은 멋진 경찰관이 되느냐…


"유동, 정출, 후출 사오자" 필자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경이 아닌 이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동 사오자는 돌아다니면서 근무하는 일이고, 정출 사오자는 정문, 후출 사오자는 후문에서 경비근무를 서는 것이다.


가위, 바위, 보 한 판에 다 큰 사내들 사이에서는 기쁨과 절망의 감정이 나뉜다. “제발 유동 사오!” 필자의 머릿속에는 유동 사오를 하는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그 순간 주변에서 함성이 들린다. 필자 옆에 쓰러져 있는 후임들,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다. 나의 승리다. 보로 다 쓰러트려 버렸다.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유동 사오는 후임과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간식을 사 먹을 수 있고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중 케밥을 사먹는 게 단언컨데 최고였다. 근무중 먹는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근무 중 어떻게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냐고? 나도 모른다. (후임들을 위한 대외비) 사실 우리 모두 케밥을 먹기 위해서 유동사오를 간절히 원했던 것 일 수도 있다. 이쯤되면 뭔 과거 얘기를 이렇게 많이 하지? 이태원 얘기 맞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필자의 글이니깐 두둑한 배짱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다.


그때도 느꼈지만, 케밥 특유의 자글자글한 냄새는 배가 고픈 사람은 물론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까지 유혹했다. 그 냄새(향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맡아본 사람만 중독성을 알고 정말 이겨내기 힘들다는걸 알고 있다. 매력이 냄새뿐이랴? 냄새에 이끌려 다가가면 얇은 고기를 겹겹이 쌓은 우람한 덩어리가 영롱한 빛깔을 내며 유혹한다. 거기에 퍼포먼스까지… 터키 사장님이 자신의 키만 한 칼을 들고 친절하게 눈인사를 건넨다. “와썹 브로 한 번 먹어봐 정말 맛있어 어떻게 줄까?”냄새, 시각, 서비스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어느 순간에 필자의 손에는 콜라와 양과 소고기가 섞인 케밥이 올려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밥 사장님들은 탁월한 전략가인 것 같았다. 어버버하는 사이에 자신의 손님으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그래도 맛은 끝내주니 전략에 당해줄 만하다.


2020년 10월 9일 필자는 이태원 거리를 걷고 있었다. 3번 출구에 나와 주위를 둘러 보던중 케밥 냄새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적절하게 섞인 두툼한 케밥이 올려져 있었다. 놀라웠다. 어떻게 이태원 케밥 가게도 k-55 케밥 가게처럼 똑같은 전략으로 판매하고 있을까? 심지어 케밥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육즙이 터져 나오는 고기 맛마저 k-55에서 먹었던 맛과 똑같았다. 이 진한 풍미, 유동사오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맛이었다.


그 때 그 절실한 바램이었던 유동 사오는 사회인이 된 지금 의미를 잃었지만, 그 당시에 소소한 일탈이 꽉 막힌 군대 생활에서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이태원에서 먹은 케밥이 맛있는 건지 그때가 그리운 건지 목이 멘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필자의 절실한 바램이다.



그래피티

독자 중에서도 특유의 향기를 맡거나 특정한 장소에 가면 추억에 빠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래피티” 가 그려져 있는 건물과 셔터를 볼 때면 그때 그 시절 추억에 잠긴다. 그래피티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참 욕심이 많고 가지고 싶은 게 많았던 미운 나이 9살 그래피티와 내 인연은 시작되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라는 게임은 물풍선을 가지고 전투를 하면서 서브 적으로 캐릭터와 배경을 꾸밀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가상에서 배경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 있는 그래피티 배경이 정말로 가지고 싶었다. 아니 갈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터무니없이 적은 용돈으로 동네 슈퍼 앞에 진열된 500원 정도의 불량식품도 사 먹기 어려웠다. 그래피티에 대한 욕구를 떨치지 못한 필자는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렸다. 지금 보면 바보 같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픽셀로 이루어진 사이버 공간 안에 3만 원가량을 사용하는 거니깐… 그럼에도 어머니는 필자를 혼내지 않고 안아 주시면서 돈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고 토닥여 주셨다. 어머니도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두 형제를 키우느라 정말 힘에 부치셨을 것이다. 힘드신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할망정 저런 행동을 했다니 다 자란 지금 필자가 했던 행동이 정말 부끄럽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필자가 무슨 이유로 그래피티 배경을 갈구했을까 생각해봤다. 아마 그래피티는 답답한 환경에서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물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웅변 학원, 영어학원 빡빡한 일정 속에서 하루에 단 한 시간 게임, 그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그려져 있는 그래피티… 그래서 그래피티가 주는 그 분위기에 매료됐던 것 같다.


필자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왔던 지역은 딱딱하고 자유로움과는 동떨어져 있는 장소여서 한동안 그래피티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이태원에 가게 되어 그때 그 시절 갈망했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래피티를 보니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율이 꿈틀꿈틀 올라왔다. 단순히 그래피티만 쳐다보는데 왜 눈물이 날까? 독자 중 누군가는 “락커로 대충 그린 그림에 왜 눈물을 흘리지”라며 날 비웃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래피티가 여전히 좋다.


조화 그리고 쇠퇴

2020년 10월 16일 칼바람이 부는 금요일 이태원에 도착했다. 요전 일주일만 해도 반팔, 반바지를 차림이었는데,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두툼한 점퍼를 입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문뜩 든 생각이지만 날씨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환경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았고 이태원도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경리단길에서 5년 이상 ‘보름달’ 백반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이모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과거 이태원의 금요일은 경리단길뿐만 아니라 근방 2km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현재 이태원과 경리단 길에서 과거와 비슷한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길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폐점한 가게들도 많고 임대를 한다는 장소도 많았다. 전혀 상권의 중심지로 볼 수가 없었고 텅 빈 거리를 통해 달라진 이태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자 밥 먹는 이재영 #쌀쌀하다 #소고기 백반 1 인분 #식사가능해요# 쓰러짐# 지침 #추움 #거지


이태원 거리를 다니다 보면 각양각색의 음식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도 많이 볼 수 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00M 안에 이슬람 사원과 성당, 교회가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태원이라는 도시를 통해 '조화'라는 단어를 느낄 수 있었고 문화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 도시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태원을 조사하고 관찰하는데 제약이 많았다. 대부분 들어갈 수 없었고 운영도 하지 않았다. 이슬람 사원 내부 모습을 기대하며 방문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입장이 불가하며 정면에서 찍는 사진마저도 불가했다. 또한 리움 미술관은 코로나 19로인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이태원의 보물을 보지 못해서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이슬람 사원으로부터 얼마 가지 않아 엔틱 가구 거리에 도착했다. 엔틱 가구의 거리는 거리 곳곳에 엔틱 가구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고 햇살이 가구에 반사되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햇살과 나무, 재즈 노랫 소리, 소품이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가게 안은 정리되지 않은 투박함으로 해리포터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이곳에 지내면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 분위기처럼 주인도 얽매이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듯 비어 있는 가게가 대다수였다. 누가 들어오든 신경을 쓰지 않고 장소 본연의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가게 앞으로 나와 가지런히 놓여있는 의자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을 둘러보면서 느꼈지만, 분위기마저 풍부한 장소여서 20대 30대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누가 요즘 엔틱 가구를 사겠어...”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이 짧았다. 엔틱가구의 거리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사람도 녹일 수 있는 매력을 보유한 거리였다. 조만간 경리단길보다 이곳이 이태원의 중심지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요즘 많은 곳을 경험하면서 필자의 생각이 단순하다는걸 느끼고 있다. 인지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어정쩡한 자세 #한혜연 만남 #잘몰라서 #사진 안 찍음 #주차라인 앞에서 #최대한 손을 뻗 실패#


엔틱의 거리를 지나 이태원역 쪽으로 향했다. 이태원 거리의 입구에서 소녀상을 발견했다. 비석내용을 읽어보니 다양한 인종이 사는 이곳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아픔을 널리 알리기 위해 상징하는 상징물을 설치했다고 했다. 필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 묵념 후 역사를 마음속에 다시 새기고 이태원역의 메인 거리로 들어섰다.


메인 거리에는 “큰 옷 팝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그만큼 큰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상권이 외국인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도심 길거리에서 먹지 못하는 다양한 나라의 디저트들이 넘쳐났다. 초콜릿부터 터키 빵, 케밥, 터키 과자 등등…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간식 몇 개를 주워 먹었다. 맛은 노코멘트 다신 먹지 않는다고 언지만 해주겠다. 헬스장 팻말도 광명에서 보던 헬스장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조금더 개방적인 느낌? 100M 밖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간판이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와 헬스는 처음이지 #원래는 pub #자리 구조가 신기하다 #이런데서 한 번 해보고 싶다



현대 뮤직 라이브러리에 도착해 건물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행사 진행으로 출입을 제한했고 1층 카페밖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남동으로 내려갔다. 한남동의 T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게는 긴 줄을 마케팅 방식으로 생각하며 일부로 천천히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았다. 예상대로 줄의 길이가 꾸준히 유지되었다. 특히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카페에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건물 하나를 사이로 이태원의 메인 거리 환경과 분위기가 달라져서 놀랐다. 마치 연남동 카페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한남동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옷과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대부분의 여자분 손에 필름 카메라가 있었다. 이 부분으로 보아 한남동을 핫 플레이스로 유추해볼 수 있었다. 한남동을 구경을 마치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다.


마무리는 이태원의 꽃 이태원 클라쓰의 세트장 ‘단밤’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태원 클라쓰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몸이 피곤한데도 빠른 속도로 향했던 것 같다. 낮과 다르게 밤에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는 이태원의 본연의 모습이 보였다면 이제는 프렌차이즈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렌차이즈들을 인지한 순간 이태원역 주변으로 올리브영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 아까도 올리브영 본 것 같은데” 필자는 생각에 빠졌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뷰티에 관심이 많을 걸까? 아니면 위생용품? 정확한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올리브영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이용하는 사람은 많은 것으로 보였다. 다음에는 올리브영에서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도 관찰해보고 싶었다.\

#한남동 너무 프리하게 입고 왔다 혼자라서 살짝 민망 단밤 꿀밤이랑 헷갈렸다 외롭


간단하게 단밤과 도로의 조화를 구경한 뒤 집으로 향했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지하철에서 집에 가는 내내 쪽 잠에 들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인천행을 타버렸다. 고단함이 두배가 되었다.


마무리로 이태원에 다녀오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적어보겠다. 이태원을 외국에 가지 않아도 어린 친구들에게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시켜줄 수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태원 내에 유동인구가 증가함으로 인해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고 기존에 이태원에서 자영업을 하던 자영업자들은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태원을 떠났다. 이 때문에 이태원의 지역의 고유 정체성과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다른 문화를 가진 상인들이 이태원에 진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너무 높아져 버린 임대료와 그 외의 비용(인건비 등)이 진입의 어려움을 증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태원에 임대료와 그 외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고 자본을 가진 프렌차이즈 매장만 더 생기는 것 같았다. 홍석천씨 마저 떠나버린 이태원은 앞으로도 조화를 이루며 다른 문화를 포용할 수 있을까?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필자는 이태원이 이 위기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작성해준 이재영군은 마케팅 리서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관찰을 좋아하고 생각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배움을 좋아합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합니다. 의류에 관심이 많고 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재영 군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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