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공간, 그리고 다른 시각: 그 두 번째 이야기(2/3)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은 주한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 외국 상품, 그리고 외국 문화의 집결지이다. 이태원은 1945년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며 형성된 상권이며 외국인에게 특화되어있는 상권이다. 몇 년 전에는 이태원을 소재로 한 노래인 ‘이태원 프리덤’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 ‘이태원 클라쓰’도 많은 화제가 됐었다.
이태원은 필자가 사는 고양시에서 이동하기 편리한 곳이라 대학생이 되고서 자주 방문한 장소 중 한 곳이다. 친구들과 가볍게 놀기 위해서는 홍대를, 음주를 즐기기 위해서는 신촌을, 맛있는 디저트를 먹기 위해서는 망원동을 주로 방문한다. 홍대 인근은 고등학생 때부터 자주 방문해서 더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태원으로 간다. 이태원에는 다양한 문화의 음식, 문화 활동, 상권이 자리 잡고 있고 무엇보다 이태원이라는 장소의 특징이 살아 있어 질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 신입생때는 친구들과 오로지 ‘유흥‘을 즐기는 장소로 인식하고 이태원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이태원은 알면 알수록 매력 있고 신기한 장소였으며 단순히 ’유흥‘이라는 단어로 그곳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태원을 방문해보고자 한다.
핫 플레이스였다는 경리단길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이태원의 경리단길이다. 최근 필자는 용산에 방문해도 한남동을 자주 방문해서 경리단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경리단길이 이어지는데, 플랫폼 안에서 나가기 전 짧은 순간에 외국인을 최소 다섯 명을 만났다. ‘그래 여기 이태원이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경리단길의 입구로 들어서는 길의 한쪽 면에는 기와로 된 벽이 있다. 그리고 그 벽에는 경리단길의 유래와 경리단길의 전체 지도가 붙어있다. 입구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전통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경리단길은 육군 중앙 경리단이 입구에 있어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육군중앙경리단은 현재 국군재정관리단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경리단길 입구에 있다.
경리단길에서는 영어를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외국인들을 끊임없이 마주쳤다. 테라스가 있는 펍에서는 외국인들이 앉아 낮술을 즐기고 있고, 편의점에서는 한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 경리단길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치 외국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펍과 가게들은 외관상으로도 외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졌으며, 그 공간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었다. 또한 경리단길은 다소 관리가 되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져 외국의 슬럼을 연상케 했다. 실제로 외국의 슬럼을 가본 적은 없지만 언뜻 보면 미드에서 본 느낌과 비슷해 보이기까지 한다.
경리단길을 돌아다니면 멕시칸, 이탈리안 등 다양한 세계의 음식점을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이색적인 맛과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이태원역 근처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다. 거리에는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 커플 몇몇이 경리단길을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이 외국인인 것 같았고, 근방에 사는 것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인한 영향도 커 보였지만, 현재는 지역주민 위주로 상권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또한 경리단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노후한 건물과 거리에 당황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경리단길의 거리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은 상점과 가게들이 즐비했다. 상점들은 꽤나 낡은 외관이었고,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었다. 일부는 새로 지은 가게들이 보였지만, 대부분이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었다. 또한 길거리 한편에 쌓여있는 쓰레기봉투 더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미관상 깔끔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경리단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곳에 자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과거 경리단길은 사람들이 30분 이상 줄을 서서 먹는 가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한산한 거리에 외국인들이 이곳을 메우고 있었다. 과거에는 유명했으나 현재는 임대문의와 폐업한 가게들, 관리가 안 되어있는 경리단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유명인 홍석천도 약 두 달 전 이태원에서 운영해온 자신의 식당을 폐업했다. 그는 “요즘 이태원은 사람이 없어서 더 안전하니 많이 찾아달라”라고 당부하는 등, 이태원 상권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홍석천은 “코로나19 앞에서는 버티기가 힘들다”라며 “건물주, 관에서 일하는 분들과 여러 가지로 박자가 안 맞았다. 코너에 몰리면 방법이 없다”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의 식당 폐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한 매출 하락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다른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경리단길 싱권의 노후화, 지역 정체성 상실 등으로 인한 방문자 수 하락 등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태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세업자와 지역주민,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상권이 도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은 이러하다. 낙후된 상권에 정부의 지역 활성화 정책으로 자급력이 부족한 영세업자들이 해당 지역과 상권에 몰리게 된다. 그곳에 자신만의 고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닌 영세업자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며 입소문이 나고 상권에 방문하는 유동인구가 증가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서며 가격 경쟁이 시작되고, 기존 영세업자들과 지역주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상권에서 유출되게 된다. 이는 지역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며, 상권이 도태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필자와 같이 과거의 유명세만을 기억하고 방문한 사람은 실망을 할 것이고, 다시 재방문하고자 하는 의사를 갖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이태원 경리단길과 해방촌 상권의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곳의 상권이 좀 더 활성화되려면 여러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 해방촌 예술마을
경리단길을 둘러본 후 우리는 해방촌 예술마을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탔다. 해방촌은 남산 아래 형성된 마을로 1945년 해방 이후 외국에서 귀국한 사람들과 6.25 전쟁 이후 월남한 사람들이 포화된 경성에서 살 곳을 찾아 마을을 이루어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방촌의 입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기 전에 앞에 놓인 광경에 ‘우와!‘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굉장히 많은 장독대가 한쪽 면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 해방촌 예술마을에 내렸다. 하지만 예술마을이라고 보기 힘든 광경들이 펼쳐졌다. 이곳이 정말 서울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오래된 주택들과 가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고 거리는 많이 노후 되어 있었다. ‘언제 지어진 건물들일까?’,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이 자리에 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해방촌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부동산과 마트부터 시작해서 오토바이 수리점, 페인트 전문점, 가구점 등 꽤나 다양한 품목을 다루고 있는 상점들이 보인다. 곳곳에는 카페와 식물 공방도 있다. 이곳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시장 내에 카페와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주변엔 온통 주택뿐이었으며 큰 상권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다 보면 주변에 음식점과 카페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경리단길 보다 더 이국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테라스와 카페에는 정말 외국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외국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게의 테라스와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과 그들끼리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큰 상권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가와 음식점들로 보였다.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
해방촌을 지나 이태원의 앤틱가구거리로 향했다. 앤틱가구거리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코로나19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녁때의 앤틱거리의 상권은 꽤나 한산했고 몇몇 펍만이 운영되고 있었다. 추석 연휴가 아닌 다른 날 낮에 방문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앤틱가구거리에는 가구를 파는 가게들이 몇몇 모여 있었지만 문을 닫아 구경할 수 없었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이국적인 펍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볼까도 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이 앞서 구경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시, 이태원
앤틱가구거리를 둘러보고 이태원역으로 향했다. 이태원 부근은 다양한 술집과 음식점, 가게들이 모여 있고 곳곳에는 외국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보인다.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낮에 방문했던 경리단길 보다 유동인구가 많다. 하지만 과거 방문했던 이태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 방문했던 이태원은 나와 같은 20대들로 가득 찬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었고, 술집이 있는 거리는 새벽까지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태원은 밤 10시가 넘었음에도 상당히 적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이태원의 특수한 장소로서의 의미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양한 상권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태원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강남, 신촌, 홍대와 같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여러 공간이 있지만 이태원은 십수 년 간 지역 공동체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이다.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 2동, 그 옆의 용산동 2가 해방촌, 그 옆의 후암동 모두 서울 남산을 에워싸고 있는 달동네 중 한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남산 자락 달동네가 관광지로 부상한지는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관광지로 급부상 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다시 쇠퇴하고 있는 경리단길과 해방촌 일대의 모습을 보며 꽤나 깨닫는 것이 있었다. 경리단길과 해방촌 일대는 교통이 상당히 애매한 곳이었다.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로 가는 길이 먼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장소는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이렇게 경사가 심하고 방문이 까다로운 장소인데, 상권 특색마저 없어지면 사람들은 방문을 꺼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필자에게 이태원의 이미지는 단순히 외국인들이 많고, 유흥을 즐기기 위한 장소였다. 그러나 나는 이태원의 단면만 알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며 경험해보니 이태원의 새로운 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태원 상권의 낙후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상인들의 눈물과 애환이 담긴 속 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이태원의 마을을 보았다.
또한 상권의 흥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입소문과 유행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우선 상권이 들어서기 좋은 환경, 위치가 조성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도 분명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상권의 임대료 수준, 상권의 관리 정도, 상권의 고유의 정체성 등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태원 상권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태원 방문을 마쳤다.
이 글을 작성해 준 조은빈양은 패션 기획 MD를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의상과 공간에 관심이 많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물을 사랑합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생각에 잠기는 것 그리고 그때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깊이 있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하루 중 소소한 소중함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은빈 양의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