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공간, 그리고 다른 시각: 그두 번째이야기(1/3)
Hey? You know what I'm saying?
지금은 없어진 신촌역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은 언더그라운드 힙합퍼들의 작은 성지였다. 유튜브를 통해 90년대 온라인 탑골공원 음악들을 잘 들어보자.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전성기였다고 평론가들은 평가하지만 그 어디에도 지금의 힙합퍼(랩+DJing+비보이)들은 가요Top10이니 SBS 생방송 인기가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왜냐?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송국 관계자들도 “저들은 양아치니 생방송으로 무대를 마련해 주다가 분명 사고 칠 거야”라는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나라에는 아주 소수지만 랩을 하고 DJing을 하고 스트리트 댄스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던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리스너(listener)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모여서 힙합문화를 즐길 수 있었을까? 마스터플랜이 있었다.
지금은 힙합계의 대부라 불리는 드렁큰 타이거가 데뷔하기 전, 난 정말 운 좋게 마스터플랜에서 드렁큰 타이거가 난 널 원해를 처음으로 공개했던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에 타이거JK와 DJ샤인은 무대에서 끊임없이 외쳤다. You know what I'm saying?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You know what I'm saying 이 어떤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잘 알 것이다. 굳이 번역 안 해도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별 뜻이 없다. 그냥 You know what I'm saying? You know what I... You know what...? 유남생. 버릇처럼 중얼거린다.
지금은 신촌거리의 마스터 플랜은 사라졌지만 You know what I'm saying을 혼잣말로 지껄이기에 딱 맞는 곳이 있다. 바로 이태원이다.
컨버스 척테일리는 내가 처음 신었어. 유남생?
중학교 3학년 때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암에 걸린 친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국 청춘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컨버스 척테일러를 신고 나왔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 신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자면 슬램덩크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후 농구 광풍이 불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이나 리복의 샤킬 오닐 농구화 정도는 신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컨버스 척테일러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컨버스 척테일러를 판매하는 곳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있었던 컨버스 척태일러를 취급하는 매장을 찾은 것이다. 바로 이태원이었다.
서울 끝자락에 살고 있던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이태원은 너무 먼 동네였다. 하지만 컨버스 척테일러를 사수하기 위해 나는 친구를 설득해 결국 이태원까지 갔다. 그리고 당시 2만 3천 원에 구입했다(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컨버스 척테일러를 쇼핑백에 넣어 이태원 길을 걷고 있던 중 어떤 무서운 형이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야. 조용히 친구인척 하고 따라와라. 소리라도 지르면 죽여 버린다.” 그리고 지금의 이태원시장 골목으로 친구인척 끌려(?) 들어가 마지막 동전 하나까지 탈탈 털렸다. 하지만 천만다행일까? 그 무서운 형은 내 소중한 컨버스 척테일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형도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가 더 간지 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사수한 컨버스 척테일러를 신고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신고 갔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신발을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했다. “야? 여자 신발이냐?” “엥? 고무신 신고 왔네?” “무슨 신발 앞에 골무가 씌어져 있냐?
하지만 난 끝까지 항변했다. “야. 이거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발이야.” You know what I saying? You know what I'm saying. 유남...생...
아무도 듣지 않고, 처절하게 무시당했다. 그렇게 패피의 꿈은 사라졌다.
카오스 로드 – 방콕
박준작가가 쓴 ‘온 더 로드(on the road)’라는 책을 우연히 접했다.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난 해외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기존 제도권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 보였으며, 보헤미안적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2008년 무작정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통장 잔고까지 탈탈 털어서 말이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갖고 출발했고,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방콕 카오산 로드 한복판은 무질서에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 후 카오산 로드를 세 번이나 가게 되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해밀턴 호텔을 기준으로 앞과 뒤에 형성된 이태원 상권은 카오산 로드와 사뭇 비슷하다. 물론 연세가 지극하신 분들이 봤을 때, 이태원은 망나니들의 천지로 보일게 분명하다.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게다가 온몸에 뭐 그리 낙서(타투)들을 하고 다니는지.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이 점지해 주신 성(性)을 무시한 채 활보하는 사람들 천지가 바로 이태원이다.
2020년 초가을 이태원은 코로나 19로 인해 홍역을 앓았다. 언론을 통해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 19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코로나 19에 아랑곳할 것 같지 않던 청춘들도 이번에는 걱정이 되었는지, 발길을 끊었다. 유명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고, 몇몇 펍(pub)도 음악만 들릴 뿐 텅 빈 공간에 남녀 청춘들은 보이지 않았다.
방콕의 카오산로드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이라면, 한 번은 꼭 방문해야 하는 그곳. 내게 먼저 인사를 걸어오는 사람이 없기에 멋대로 다녀도 상관없는 자유로움. 낮부터 카페 테라스에 앉아 창(Chang: 태국 맥주)을 몇 명씩 마시며 지나가는 배낭여행객들을 멍 때리며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공간. 하지만 밤에는 국적불문 함께 춤추며 젊어질 수 있는 도시. You know what I saying. 유남...생...
서울에서 대낮부터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와 다름이 아닌 네가 틀렸음을 강조하는 요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곳은 카오산로드와 이태원이다.
20여 년 전에는 주둔한 미군들이 가득했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래피티들이 가득했기에 이태원은 서울의 할렘으로 비치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지만 과거 이태원은 말 그대로 OOO 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태원의 정체성(identity)일 것이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떠난 이들이 있고, 코로나 19로 인해 바이러스 천지로 오해받고 있는 지금의 이태원은 원주민들에게 어떤 공간일까? 매년 10월 말 할로윈 파티 때 온갖 귀신과 악령들이 모이는 이태원이지만 2020년 할로윈은 어떨까?
여기서 또 만났네? 시카고에서 온 거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휴가 혹은 방학을 이용해 가깝게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가는 것은 이제 특별한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었다.
얼마 전 국내 항공사에서 ‘목적지 없는 항공편’이 운행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수속을 거친 후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조여 매는 설렘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하기에 섣불리 나갈 수 없다. 언택트 시대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실제의 공간에서 온 몸으로 그 공간을 경험하고 싶다.
종로 익석동에서 만났던 거위를 이태원 언덕길에서 재회했다. 이 거위의 고향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라고 하니 참 멀리서도 왔다. 이 녀석은 컵(CUBS)이 아니라 흰 양말(white sox) 팬인 것 같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소개해주는 서울의 저녁과 밤
흔히들 서울 야경을 보려면 가는 곳이 있다. 남산에 있는 서울 타워와 북악 스카이웨이다. 하지만 가끔은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에서 서울 야경을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클럽 음악으로 시끄러운 이태원 뒷골목을 열심히 걷다 보면 유관순로(도로명)에 접어들게 된다. 열심히 언덕을 올라보자. 오르고 오르다 보면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보게 될 것이다.
이태원과 유관순 열사... 퍼즐이 안 맞춰진다. 마주한 유관순 열사 추모비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부지런히 걷다 보면, 뜻밖의 서울 야경이 마주한다. 아주 조용히, 그리고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이.
많은 이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한다. 경제, 문화, 그리고 교육 때문에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은 예전보다 콧대가 높아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서울에 살기를 갈망한다. 매우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가 서울이다.
과거 유관순 열사가 기대했던 서울의 모습과 지금의 서울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은 조용하다. 군데군데 옥탑방이 보이고, 옥탑방 사이사이로 서울의 모습이 비친다. 불과 몇 미터만 내려가면 늦은 시간까지 화려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청춘들이 활보하는 이태원이 있다. 전혀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언덕 끝자락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되는 이태원의 밤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19를 하염없이 버텨야 상황에 놓인 것이다. 골목식당 주인은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 주문하던 어르신이 그립고, 청년들은 여전히 텅 빈 구인 소식에 애가 탄다. 국내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인 프로야구 선수들은 관중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으며, 대학교 캠퍼스는 스무 살 청년들의 수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태원도 그렇다. 내일은 없는 그래서 오늘 하루만 즐겁게 살기 위해 밤늦은 시간 이태원에 모였던 청춘들이 그립다. 낮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바람직한 모습은 잠시 버리고 오늘 이 밤만큼은 지독하게 타락한 모습들로 가득 채워졌던 이태원 골목길이 그립다.
오로지 선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는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개인이 아닌 집단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전체주의가 뿌리내리기 쉽다. 개인적‧사회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의 일탈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주관적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태원에 위치한 일부 공간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보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 되는 것이다. 낯선 이태원의 텅 빈 밤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