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원형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현대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방향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사적 지침이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세계 최초로 민주정치 체제를 제도화한 도시국가였다.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자유로운 토론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하나의 제도와 관행으로 확립되는 때였다. 즉, 그리스의 폴리스(Polis) 즉, 도시국가들의 운영 기본 원리는 자치(self-governance)였기에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주민들은 스스로의 법과 규범을 결정했다. 특히 아테네와 같은 민주정 폴리스는 도시국가들 중에서 소수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체제의 시초가 기원전 6세기말에서 5세기 초부터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테네와 같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처음부터 민주정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국가의 대부분은 혈통에 기반한 왕정(Monarchy)을 거쳐 귀족정(Aristocracy)으로 이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부상하면서 경제력이 왕에서 귀족으로 이동한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단순한 경제 권력을 넘어 정치권력까지 장악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왕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르콘(Archon)이었다.
아르콘의 도입은 왕정의 종식과 귀족정의 제도화를 의미했다. 또한 아르콘 임기를 마친 인물들이 참여한 아레오파고스 회의(Areopagus)는 고대 아테네의 실질적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서 기능하며 정책 결정, 사법 판단, 종교 의례 등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아레오파고스는 훗날 민주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회적 논의 구조의 기초를 형성한 중요한 정치적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아테네는 고위 행정관 아르콘과 아테네의 최고 의결기관인 아레오파고스 회의를 중심으로 소수 귀족이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Oligarchy)으로 변화하였다. 이에 솔론(Solon, 기원전 640~560)은 기원전 594년, 아테네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르콘으로 선출되자마자 개혁을 단행한다. 민주주의 아버지로 부르게 된 배경이 된 그 유명한 솔론의 개혁이다. 그는 종전에 아레오파고스 회의에서 귀족들이 독점으로 선출하던 방식을 바꾸어 소득에 따라서 시민 계층을 4등급으로 나누어 공직 후보 자격을 부여하고 일부 추첨제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 이를 현대 정치적 관점에서 부유층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금권정치(Timocracy)라 부르지만 당시로서는 아테네의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의 혈통 중심 귀족정치를 재산 기반의 티모크라시로의 전환은 상당히 진보적인 변화였다.
솔론의 개혁은 이를 통해 공직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권력 집중을 방지하며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솔론의 개혁은 민주적 원칙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때 아레오파고스는 주로 전직 최고 행정관 아르콘 출신의 귀족들로 이루어진 평의회로서 오늘날 의회처럼 민주적 대표성이나 입법기능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여러 구성원이 모여 집단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의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유사한 면이 있다. 아레오파고스도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 시대를 거치며 권한이 제한되고 주로 사법적 기능에 국한된다.
독일의 건축가이자 화가인 레오 폰 클렌체(Leo von Klenze, 1784~1864)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The Acropolis at Athens, 1846년작, 95 x 66 cm)"는 19세기 유럽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고대 그리스 문명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클렌체는 이 작품을 통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아레오파고스의 이상적인 재건을 구상하고, 고대 그리스 문명의 조화롭고 숭고한 미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클렌체에게 있어 아레오파고스는 초기 귀족 중심의 정치 기구이자 중요한 사법 기관으로서, 고대 아테네가 지닌 법과 정의의 전통, 그리고 합리성과 도덕적 이상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음을 이 그림은 보여준다. 클렌체가 이 그림을 그렸던 배경에는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1세(Ludwig I)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루트비히 1세는 자신의 왕국을 "이자르 강의 아테네(Athens on the Isar)"로 만들고자 했던 때문이었다.
그림의 상단에는 아크로폴리스와 도시를 내려다보며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상징하는 아테나 프로마코스(Athena Promachos) 상이 보인다. 아테네의 수호신으로 숭배받는 아테나가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 창을, 왼손에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전투태세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던 지혜와 도시 보호를 상징하는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상과는 다르다. 그러나 아테네에는 전쟁, 약탈, 화재, 종교적 변화 등으로 여러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완전히 소실되어 아테나 파르테노스 원본상이 없고 아테나 여신을 형상화한 다른 조각상들이 일부 남아 있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테네 국립학술원 앞에 있는 아테나상이다
클렌체는 그림에서와 같이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아레오파고스를 그렸다. 실제 아레오파고스는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낮은 언덕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이 두 곳의 공간을 위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아테네의 정치 체계가 아크로폴리스 아래 아레오파고스로 이어지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적·사회적 질서와 그 상징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레오파고스 광장 오론쪽에 있는 날개 달린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인 것으로 추정된다. 니케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의 승리와 성공을 상징한다. 또한 광장에 있는 시민들은 아레오파고스가 법정과 정치적 토론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묘사함으로써 당시의 이상화된 사회적 이상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아레오파고스는 고대 아테네의 초기 귀족 회의가 열렸던 장소를 말하기도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가장 오래된 의회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페리클레스 시대와 함께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되면서, 입법과 행정 권한은 민회(Ecclesia)와 불레 등으로 넘어가는 등 그 권한은 크게 축소되지만 아테네의 역사적 뿌리와 시민사회의 근본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아레오파고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초기 엘리트 중심 의사 결정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면서 의회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