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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백하 Jun 21. 2024

어느 민족주의자 이야기 - 황현필과 뉴라이트

한국 민주 진영의 민족주의

(2024년 6월 21일 추신: 이 글은 아래의 황현필 강사의 영상이 공개돼 있던 6월 11일에 작성됐습니다. 지금은 해당 영상이 비공개 처리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의 모든 부분이 없더라도 이 글이 주장하는 핵심 요지에는 큰 영향이 없으며, 또한 다른 영상에서도 그가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는 판단 하에 이 글을 해당 브런치에 업로드합니다.)


  일본을 추종하는 개병신 머저리 뉴라이트와 싸우느라 바쁜 황현필이라는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한 역사 강사가 있습니다. 대선 시즌부터 당시 야당 현 여당인 모 보수 정당의 역사관을 지적하고 《건국전쟁》이라는 희대의 자칭 보수 영화에 맞서는 등... 아주 바쁘신 강사입니다.


 말로는 아닌 척 한마디를 덧붙이고들 있지만 뉴라이트라는 작자들의 최종 목표는 일제시대에 대한 한국 대중의 비판적 의식을 해체시키는 것에 있겠지요. 상병신들이고 그들이 말하는 일제시대가 조선시대보다 더 살만했다는 유치찬란한 문제 제기가 뭐 그리 심각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얼핏보기에는 그럴싸한 서술이기에 교과서적인 역사 관념에 반감을 지닌 이가 이런 논의을 접하게 된다면 어떠한 종류의 식민지 수혜론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놈들과 싸우려 한다 이것만 놓고 보면 사실 칭찬을 해줘야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최근 영상 중 상당히 이상한 주장이 있습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가 살기 좋았다? - 황현필 한국사 中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됐다고 하면 60년대 70년대 박정희 근대화는 대체 뭐야? 해방 직후의 우리의 가난은 뭐야?"


 나는 이 문장만큼 뉴라이트에 싸운다고 자처하는 민주 진영의 자칭 민족주의자들의 실체를 드러내는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근대화가 어느 한 정권의 존재 시기만을 가리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냐 하면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란 일제 시기만을 가리켜, 박정희 시대만을 가리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닌 매우 오랜 시간을 요구로 하는 거대한 사회의 변혁입니다. 이 근대화가 끝난 시기를 언제로 잡을 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겠지만 확실한 건 황현필 강사가 말하는 "일제시대에는 근대화가 없었다." 이런 서술은 말도 안되는 것이죠.


 한국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알겠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국어 과목에서 일제시대에 쓰여진 소설들을 몇 접했을 겁니다. 일제시대 당시 근대화가 없었다는 신화와 달리 교과서에는 일본과 맞서는 피지배 민족의 서러움과 저항의식을 담은 소설이 있는가 하면 당시의 근대화로 인해 발생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 버젓이 실려있습니다. 의식주의 서구화, 일본을 거친 서구 관념의 대량 유입, 도시화 등의 총체. 이게 근대화를 전제하지 않고 전개될 수 있는 내용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정작 국사 교육 과정에서는 일제의 근대화를 철저하게 부정까지는 아니지만 은근 슬쩍 숨기려고 한다는 겁니다. 황현필과 비슷한 문제지요.


 그렇다면 황현필의 문제는 일제 시대의 근대화를 부정함에 있느냐 하면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리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황현필의 가장 문제는 근대화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에 있습니다. 물론 현 시대 어느 민족이 근대화를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근대화가 시대적 필연이었던 건 사실이고 조선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구화와 파괴 역시 어느 정도는 감내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민족주의자라면 근대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근대화가 파괴한 것들에 대해 최소한 관심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민족주의자 애국자임을 자처하는 그는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에게 '근대화'는 마냥 좋은 삶을 의미하는 일종의 도식으로 여겨지는 걸까요. 이 시점에서 그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탄생하게 됩니다.


 황현필이라는 강사가 한민족에 기초한 반일적 정체성을 띄고 있고 우리 민족의 고구려, 고려, 조선 같은 선대의 나라에 자부심을 품고 있음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그 담론이 끊기게 된다는 건 그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가 말하는 일제 시대 우리 문화의 파괴란 우리 민족의 전통을 파괴한 '근대화'에 대한 경계가 아닌 우리 민족의 전통을 파괴한 '일본'에 대한 반감일 뿐입니다. 일본이 강조될 수는 있겠습니다. 자국이 스스로 자체 근대화 개혁을 펼쳐도 필연적으로 전통과의 충돌이 발생할 터인데, 그것을 반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외국의 사람들이 행했으니 그 파괴력과 부작용은 매우 강해집니다. 식민지배의 부당성과 그로 인한 인명 피해도 있겠으나 민족 가치를 내세운다면 이 지점을 분명히 경유함이 당연지사입니다.


 중요한 논의를 빗나간 이 反뉴라이트 세력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부당하게 탄압한 일본에 맞서 싸우라는 단 하나의 명령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반박도 똑같이 유치해지는 겁니다.


"일본 제국 덕분에 살기 좋아졌다고? 1인당 GDP가 더 떨어졌는데."


"조선시대가 일제시대보다 더 살기 좋았다고? 민중을 착취하는 봉건적 노비 제도가 있었는데?"


"노비 제도 때문에 조선이 살기 힘들었다고? 동시기 일본 양민들은 세금 때문에 더 살기 힘들었는데?"



 결국에는 이런 논의로 수렴하는 이 촌극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그들이 박정희를 욕함이 상당히 우스워지게 됩니다. 박정희는 친일파 출신이 맞고, 다까끼 마사오가 맞고 일본군 중위 출신도 남로당 출신도 맞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일본 제국의 황도파를 흠모하고 그들을 자신 이념의 주축으로 삼았습니다. 10월 유신이라는 이름도 황도파의 쇼와 유신에서 따온 거겠지요. 그런 그는 5.16 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정부를 뒤엎고 대통령이 돼 각종 산업화 정책을 매우 강력하게, 그리고 난폭하고 급진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의 전통은 또다시 급격한 파괴 속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스스로 이것을 알았나 봅니다. 박정희 개인의 욕심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체제겠지만 박정희는 '한국식 민주주의'를 외치며 10월 유신이라는 민족적 대안을 나름대로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총체적인 민족의 파괴 속에서 한줄기 빛, 재건을 꿈꿔보자는 확실한 믿음. 그런 사람이니 주한미군 철수까지 각오하고 핵무기 무장을 진행할 수 있었겠지요.


 그의 일본군 경력에 대해 변호를 하자면 변호를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친일파, 반민족적 행보다 이리 말해버리면 그 자체에는 찬성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민족의 파괴에 대한 뚜렷한 문제 의식이 없는 이들이 박정희를 민족주의적인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일입니다. 박정희보다 민족주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민주 진영에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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