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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숭이 May 04. 2022

소 귀에 경 읽기

오 마이 아이 #36




일기를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쓰는 첫째.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난 시간과 순서, 아침 점심 저녁 메뉴까지,

티끌 같은 일상까지 모두 담다 보면 두 세장은 가뿐히 넘어간다. 

바라보면서 한번도 답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는 데에야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자신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

쓰는 내내 온 가족을 들볶는다.

"아빠, 오늘 누가 제일 먼저 일어났어?'

"엄마, 오늘 점심이 뭐였지?"

"정아, 오늘 나가서 제일 처음 만난 게 누구지?"


"몰라!"

급기야 모두에게 외면당한 첫째는

새하얀 일기장 앞에서 텅 빈 머리를 감싸쥐고 고뇌에 빠졌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 은근히 말을 붙였다.

"있잖아. 네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일지야."

"일지가 뭔데?"

"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빼놓지 않고 다 기록하는 거."

"그럼 일기는 뭔데?"

"일기는, 그날의 인상깊었던 기억과 느낌을 적는 거야."

"..."

"알겠지? 이제부터 그렇게 한번 써볼까?"

"응! 그래서 엄마, 오늘 누가 제일 먼저 일어났어?"


내가 소를 키웠네.

나무 관세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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