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봄날의 책, 2018)에서
모델은 매혹적인 긴 로브를 걸친 채 겸손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강요나 허세를 완전히 배제한 몸짓이다. 여기에 어떤 아이러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성상의 대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림 전체에 걸쳐 두루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펫의 희미한 광채, 커튼의 주름, 그리고 창문을 통해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대리석 바닥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최성은 옮김, 봄날의 책, 2018)에서 읽은 구절이다.
여기에 나오는 요하네스 페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회화의 기술(The Art of Painting, 1666)」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에 소장 중인 작품으로, 페르메이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그림을 화가의 작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일종의 알레고리로 보기에 「회화의 알레고리(The Allegory of Painting)」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페르메이르 작품 중 보기 드문 대작이다.
이 작품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한 미술평론가는 “자연주의적 기법, 밝게 빛나는 공간, 복잡하지만 완벽하게 짜인 구성이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흠 없이 통합되어 있다”고 격찬한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방문하는 고객들한테 보여줄 작품으로 그렸다. 하지만 화가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 되었으며, 페르메이르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을 평생 팔지 않았다.
화가는 중앙 오른쪽에 등을 돌린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당연히 페르메이르 자신일 것이다. 당시의 최신 유행에 따라 절개된 상의를 걸치고, 하의는 붉은색 내의를 받쳐 입었다. 실제의 페르메이르는 열한 자녀를 먹여 살리느라 아주 가난했지만, 그림 속에서는 멋을 아는 신사로 연출된 것이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자리,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 앞에 어린 모델이 눈을 감은 채 서 있다. 소녀는 페르메이의 아내 또는 딸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진짜 현실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풍기도록 연출되어 있다.
뒤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다. 살짝 주름진 모습이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지도의 장식봉과 모델의 오른손 아래쪽에 핀 자국이 살짝 보이는데, 페르메이르는 이곳에 핀을 꽂아서 소실점을 만들고 분필로 먹줄을 쳐서 원급법을 구현했다.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소녀에게 집중된다.
거기에 더해서, 왼쪽에 늘어진 커튼, 그 아래쪽 의자 등에 어두운 색깔을 부여함으로써 원근법을 강화하는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모델로 이끄는 르푸수아(repoussoir) 기법을 썼다.
커튼으로 살짝 가려진 탁자 위에는 석고 마스크, 옷감 한 무더기, 책 하나, 가죽 조각들이 놓여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각의 질감을 확실히 살리고 있다. 화가와 모델은 아주 선명한 반면에 이 사물들은 흐릿하다.
바닥에는 대리석 타일이 깔려 있고, 줄무늬 천장이 그림 위쪽을 살짝 가로지르는 가운데, 황금색으로 빛나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샹들리에는 아마도 화가의 고매한 예술정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모델은 머리에 월계수 화관을 쓰고, 왼손에는 트럼펫을, 오른쪽에는 책을 든 채 눈을 아래로 깔고 있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눈길을 끈다. 월계관은 승리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 트럼펫은 명성을 뜻한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은 헤르도투스 또는 투키디데스의 책으로, 역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델은 화가의 승리를 가져다줄 ‘역사의 여신’, 즉 클리오(Clio)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많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베르메르는 믿었던 것이다. 역사가 기어이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 영예롭게 할 것임을. 화판에 그려진 월계수는 이를 상징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