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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아주 괜찮은 날이었다. 모처럼 잠을 늘어지게 잤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 동네에서 제일 힙한 카페에 갔다. 산미나는 커피를 마시며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다. 그리고 저녁,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모듬회를 야무지게 떴다. 용산을 지나 남영으로 항했다.
그날 저녁 삼각지역부터 숙대입구로 이어지는 길에는 경찰들이 좀 많았다. 평소같지 않았다. 집회는 크지 않았다. 듬성듬성 모인 행렬, 공허하게 울리는 외침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창문 너머의 영상을 기록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의심은 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진 못했다.
집들이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합정역에서 페이스페인팅을 한 사람들을 봤다. 핼로윈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정확히는, 평소에 그런걸 즐겨본적이 없다보니 이미 핼로윈이 시작됐다는 건 몰랐다. 10월 31일 하루만 핼로윈이라 생각했던거다. 사실 나도 30년만에 처음으로 그 축제 속에 들어가보려고 했던 참이었다. 월요일에 이태원에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했다. 급하게 의상을 구하기 어려워서 쿠팡 로켓배송으로 검은 망토도 주문했다. 10월 29일 오후에말이다.
집에 돌아온 이후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다. 모든 순간이 분단위로 생각난다. 카톡방에서 오갔던 대화들이. 걱정과 우려, 불안감이 최악의 모습으로 현실화됐던 게 온전히 기억난다. 그냥 생각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그곳에 갔을지 모르는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전화를 걸었다. 두번, 세번 전화를 해도 통화대기음만 나오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순전한 공포였다. 입에서는 이미 기도같은 문구를 읊조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 1시 20분, 걸려오는 전화를 1초만에 받았다. 참담한 호출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장례식장을 돌기 시작했다. 미처 지우지 못한 페이스페인팅이 눈물로 번져가는 젊은이들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 없었다. 심경이 어떠세요, 같은 말을 혀 끝까지도 운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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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9일.
꼭 1년이 지났다. 오늘도 나는 친구를 만났다. 작년의 오늘 만났던 친구였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기됐다. 또 용산에 갔다. 녹사평역에서 굽이치는 언덕을 올라 해방촌에 갔다. 뷰가 좋은 식당에서 까마득한 시내를 내려다보며 밥을 먹었다. 날이 참 좋았다. 햇볕도 원없이 쬐었고, 작년만큼이나 좋은 날이었다.
저녁에는 나무막대기를 깎아 구멍을 메우는 영화를 봤다. 한번엔 잘 안되니까 몇번을 반복해서 결국 구멍을 막더라고. 내 가슴에도 구멍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언젠간 나도 이 구멍을 막을 막대기를 깎아낼 수 있겠지. 온전하게 행복한 10월 29일도 맞이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