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 가는 길이다. 지하철을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아니면 비가 와서 그런지 8호선 안의 풍경들이 꽤나 이채롭다.
8호선 4-3번 칸 중앙에 앉아서 가는데 이십 대 후반의 남녀 커플이 바로 내 앞에 선다. 남자는 키가 작았고 여자는 키가 컸다. 고로 두 사람은 키가 얼추 비슷했다. 여자는 긴 머리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남자는 기억이 안 난다. 커플은 서로를 과도하게 밀착시킨 채 내 시선 위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시선을 노골적으로 주고받았다. 나는 점점 그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한쪽에서 귀여운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힘들게 서 있던 젊은 엄마는 내 옆에 빈자리가 나자 잽싸게 두 여자아이를 빈자리에 앉혔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도 앉을 수 있도록 옆으로 자리를 한 칸 옮겼다. 두 여자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내 앞의 커플은 서로를 더욱 밀착시켰고 급기야 내 시선 위에서 쪽쪽 거리기 시작했다.
"예쁘네, 과자 사 먹어"
바로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아이에게 이쁘게 생겼다며 용돈(동전)을 주려고 그녀의 한쪽 팔을 뻗었다. 여자 아이의 엄마는 당황스러워하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뻗은 채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을 아이에게 주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예상치 않았던 이 상황을 어쩔 줄 몰라한다.
내 앞에 있는 커플은 더욱 쪽쪽거린다.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하고 주변 사람들은 한두 번씩 흘깃거리더니 애써 그들에게서 시선을 피한다. 아이에게 뻗은 아주머니의 팔은 무쇠처럼 굳건했다. 아이의 엄마는 결국 아이가 아주머니에게서 용돈을 받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세 모녀는 다음 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자 황급히 내렸다.
방금 전까지 아이의 엄마가 앉았던 내 옆자리에 포니테일 한 머리를 한 여자가 바로 와서 앉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려 포니테일 한 긴 생머리를 좌우로 찰랑찰랑거리는데 그 긴 머리카락들이 내 한쪽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내 뺨을 찰싹거리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프진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핸드폰을 하던 그녀가 무언가를 찾는 듯 다시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찰싹, 찰싹.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다신 한번 내 뺨을 찰싹찰싹 때린다.
음. 이건 뭐지. 아직까지 살면서 여자에게 빰을 맞아본 적이 없었는데 머리카락으로 뺨을 맞는 기분이란 이런 거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앉아 있던 남자의 뺨을 때린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삼세번이다. 한 번만 더 그녀의 고운 빗자루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내 뺨을 어루만지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내 뺨을 두번이나 어루만졌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지 않았다. 다음 정류장 안내 음성이 나왔다.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갔다.
나 오늘 광화문 가는 지하철에서 생전 처음 만난 여자에게 싸대기를 두대나 맞았다. 그것도 포니테일 한 머리카락으로. 로또나 두 장 사자. 혹시 모르니.
2017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