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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화제를 마치며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Apr 20. 2021

드디어 푸른학교 문화제를 끝으로 2016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번이 푸른학교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문화제다. 이번 문화제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자원봉사 및 현장 안전요원 배치와 관리였다. 휠리스를 신고 시청 로비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몇몇 아이들에게 염려 섞인 시선과 차분한 음성으로 주의를 주는 걸 제외하면 이번 문화제 진행은 차분하고 무난했다.

바자회가 끝나고 푸학 문화제 기획단이 구성되면 대략 한 달 정도 문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한다. 그해 기획단 주체를 맡은 선생님의 첫마디는 항상 같은 고민으로 시작된다.


"이번 문화제는 주제를 뭘로 할까요?"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요?"

문화제 기획은 항상 어렵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세월호처럼 전 국민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문화제의 품으로 끌어 안기도 한다. 때로는 지인들에게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우려의 목소리들에 당당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만들어 온 그 이야기의 중심엔 언제나 우리의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푸학 열두 달 이야기 '립덥 영상'

푸학의 시작과 역사를 5분으로 압축한 '그림자 연극'

염치를 아는 교사와 아이들의 기부 프로그램이었던 '수면양말 프로젝트'


내가 문화제 기획단장을 맡아서 기획했던 주요 꼭지들이다.

졸업생 영상을 찍기 위해 눈발 휘날리는 1월 어느 날 상대원에서 정자동까지 낡은 캠코더 한대를 걸쳐 메고 성남 전역을 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서 하루 종일 돌고 나면 온몸은 꽁꽁 얼어붙었다. 촬영을 마치면 편집이 문제다. 매번 사람들에게 영상편집을 부탁하기가 번거로워 아예 독학으로 영상편집을 배워버렸다.

무대 진행, 졸업생 영상 촬영 및 편집, 당일 공연 총괄, 음향, 조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맡았던 자원봉사 관리까지 다양한 문화제 역할 중 딱 한 가지(?)만 안 해보고 다 해봤다. 푸학 교사가 되기 전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설픈 콩글리쉬 영어 하나였는데 교사생활 십 년이 넘고 보니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

지난 십 년간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었고 푸학은 내게 학교 밖 선생님이었다.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고 "선생님 저 대학생 됐어요. 저 군대 가요. 저 취업 나왔어요. 제가 쏠게요. 우리 술 한잔 해요"라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결혼은 언제 해요?라는 말과 함께.


작년 뜻하지 않은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의 장례식장에서 멈추지 않던 눈물은 말랐지만 동생이 안치된 자리의 시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무자격(?) 교사로 5년. 사회복지사로 6년. 합해서 십일 년이다. 아이들은 자랐고 모든 것이 변했다. 하지만 나의 신상과 주변은 처음 푸학과 인연을 맺었던 그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거나 변한 게 없다. 파릇파릇했던 서른 살의 총각이 마흔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랄까.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고 변화하지 못해서 싫은 점도 있다.

변화해야 되는 것과 간직해야만 했던 것들 사이에서 숱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처럼 '모든 날들이 좋았고 모든 것들이 행복했다.'

그 드라마의 멋진 남자 주인공처럼 내 빈약한 가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이 하나 박혀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뽑히겠지. 내 가슴에 박힌 검을 볼 수 있는 도깨비 신부에게. 나는 전생에 한 번도 나라를 구하지 못했나? 인간적으로 900년은 너무 긴 것 같아.

사람들이 떠나고 떠나고 떠난다. 그들이 머물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떠나보내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 그렇게 십 년을 넘게 아이들을 떠나보냈고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도 떠나보냈다. 나는 익숙해지는 게 서툰 탓으로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푸른 학교의 졸업식/문화제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공식적으로 포장하는 멋진 다큐이자 영화이며 드라마다.

아이들, 학부모, 후원인, 자원봉사자들. 축하받아야 할 주인공들은 많지만. 이 자리를 빌려, 꽃다발이나 케이크는 없지만, 스스로를 더해서 무한한 영광과 축복을 돌린다. 푸학 선생님들! 모두들 문화제 준비하고 진행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2017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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