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무너질지모르는 시골집,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이 글은 오래전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현재 시골집은 밭이 되었고 어머니는 전셋집을 얻어 도시로 올라오셨습니다.
지난 추석 하루 전날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었다. "언제 올 거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차마 이번에도 못 내려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향! 나에게 고향이란 이미지는 몇 가지 것들로 규정된다.
그것은 명절 당일 9시 뉴스에 나오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송편을 빚는 단란한 가족처럼 정겨운 모습이 아니다. 일 년이면 두세 번 다녀오는 곳. 그렇게 가서도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않는 곳. 당신도 굳이 하루 더 머물다 가라 만류하지 않는 곳. 여덟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곳이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단편들이다.
가장 오래되고 낡은 시골집, 그곳의 어머니
터미널에서 내린 뒤 택시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 바닷가 쪽으로 십여분 정도 달리면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동생은 몸이 좋지 않아 꽤 오래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집이다. 사시사철 습기 가득한 천장과 눅눅한 벽지, 흐릿한 형광등, 부서지는 슬레이트 담장. 조금씩 허물어지는 그 낡은 시골집은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내가 어디에 있든 고향은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프게 지배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공을 차며 신나게 뛰어놀았던, 추억할 만한 것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곳을 생각할 때면 그립다거나 애절하기보다는 몹시 시리고 아프다. 그러한 감정은 여전히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는 낡은 집을 생각할 때면 더욱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구미로 유학(?)을 가기 전부터 나의 낡은 시골집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근교 대도시에 실습생으로 취업을 나올 때도 시골집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어쩌냐? 간밤에 부엌 한쪽이 무너져 버렸다."
"수리는 할 수 있어요?"
"웃집 고모부가 인부들 사서 해 준단다."
"돈은 얼마나?"
"한 백만 원…."
"칠십만 원 부쳐 드릴게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늘어놓는 것은 당신의 작은 기쁨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당신의 둘째 아들은 통과의례처럼 침묵 속에서 당신의 소소한 일상을 듣는다. 추석 전날의 통과의례는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둘째 사위가 집 지으라고 몇천만 원 해줬단다."
"저기 저 집은 아들들이 은행 대출받아서 조립식으로 집을 지었는디 삼천만원인가 얼만가 들었단다."
당신은, 은연중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리고 십 수년이 흐른 지금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새로 지었거나 최소한 조립식 주택으로 말끔하게 단장을 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이 하나둘씩 새로 지어지는 가운데 여전히 낡은 시골집을 마주하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비 온 뒤 힘없이 부서지는 담벼락의 슬레이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2천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빈 집 사기도 쉽지 않네."
몇 년 전에 한두 번쯤 어머니는 집을 살 계획을 했었다.
"윗 동네에 할마시 돌아가고 빈집이 하나 나왔는데…. 니 생각은 어떠냐?"
"얼마예요?"
"이천만 원 돌란다."
"한번 알아보세요."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재빨리 숫자를 더하고 뺐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에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더하면 잘하면 계약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어떻게 됐어요?"
"뭐가?"
"점빵 하던 아주머니네 집 말이에요?"
"글러 먹었다."
"왜요?"
"한 천 오백이면 살까 싶었는디 절대로 한푼도 깍을 수 없단다."
"다른 집 알아보세요."
"걍~ 좀 더 버텨볼란다."
"그러다 태풍에 집 무너지면요?"
"설마 죽기야 하겄냐. 그렇게 죽으면 팔자려니 해야지."
그렇게 집을 살 계획이 무산되던 날, 당신과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으레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하지만 나는 별 것 아닌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몇십 억도 아니고 단돈 이천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마당 넓은 시골집.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막내아들 그리고 당신의 둘째 아들이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한 달을 있어도 마음 든든할 수 있는 그런 집 한 칸 마련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가 않다.
이것저것 재다 보니 집을 사는 것은 다시 기약 없는 훗날로 미뤄둔다. 그 사소하지만, 긴 한숨으로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다 보면 지난 서른여섯 해 나의 삶은 무엇이었나? 하는 자괴감에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리고 집을 향한 당신과 나의 실랑이는 봄을 보내고 여름 장마가 시작될 때마다 한 번씩 반복된다.
"이제 그만 떠나자고요."
"어디로."
"방 두 칸짜리 전세방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어요."
"가면 뭐 뾰족한 수 있어? 아는 사람도 없구…."
"장마철만 되면 불안해 죽겠어요."
"애민들 안 불안하겄냐?"
눈이 쌓여도 걱정, 바람이 불어도 걱정. 행여 태풍 소식이라도 올라치면 당신은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신다. 나야 당신처럼 뜬 눈까지는 아니어도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세게 몰아붙이던 태풍이 물러간 새벽 당신과 당신의 둘째 아들은 그렇게 밤새 서로의 안녕을 묻는다. 아니 안부 전화는 항상 당신이 먼저다.
"밤새 별일 없었지?"
"여긴 암만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작은 방은 괜찮아요?"
"흙더미 조금 내려앉았다."
"…."
"바람이라도 조금만 불면 마을 회관에서 납작 엎드려 있을까 했는디…."
"그러니까. 이사 오시라고요."
"가면 뭐 뾰족한 수 있어?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당신, 그리고 당신의 막내아들은 아직 작은방의 담벼락 허물어지는 그 지랄 맞은 절망에서 벗어나기를 망설인다. 당신은 어느덧 그런 절망에 순응해 버린 것일까? 그것을 벗어버렸을 때의 새로운 세상은 그 지랄 맞은 절망보다도 더한 두려움이라서?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는 나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 하여 나는 여전히 당신과 당신의 짐(?)이 되어버린 막내아들에게 방관자일 뿐이다.
절대 무너지진 않는 시골집, 늘어나는 자조와 한숨
그런데 이상하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이십 년이다. 여름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걱정이던 집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고향에 있는 낡은 우리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태풍 '루사'가 올 때도 크레인은 넘어졌지만 우리 집은 멀쩡했다. 올여름엔 태풍 '곤파스'가 남쪽을 휩쓸고 지나갈 때도 흙만 조금 더 흘러내렸을 뿐 우리 집은 여전히 멀쩡했다. 조금씩 허물어지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집.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 해. 없이 살아도 정 붙이고 산 곳이 제일이지…."
당신은 입장이 난처해지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약점으로 화재를 돌린다.
"이놈 자식아! 애미 집 걱정은 말고 너나 어서 좋은 여자 만나서 데리고 와! 얼굴이 못났어 키가 작아. 자식 새끼들이 세 놈이나 되는디. 자식들 여의었냐고 동네 사람들이 물으면 챙피해 죽겄어."
돌아보면 깨진 유리 조각의 파편처럼 굴러온 삶이란 것은 지랄 맞다. 가뭄에 콩 나듯 정겨울 때도 있었지만 살아온 삶의 총량은 언제나 지난함이나 지랄 쪽으로 내리 꽂힌다.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형이나 몸이 좋지 않은 동생이나 삶이 고단하기는 매한가지다.
하물며 당신의 삶은 말해 무엇하랴! 당신의 삶은 삼 형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설이나 추석마다 풀어놓는, 몇 번이나 들어서 이제는 귀에 인이 박힌, 당신의 그 신산스럽던 삶은 시쳇말로 소설책 열 권으로도 모자란다. 에휴~에휴~ 당신의 자조와 한숨이 늘 그렇듯이.
"에휴~ 가면 뭐 뾰족한 수 있어?"
쓰러지고 허물어지지만 절대로 무너지지는 않는 집을 뒤로한 채 성남으로 향했다. 단 하루 머물고 돌아오는 버스 차창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답답한 마음은 깊은 터널 쪽으로 빨려 들고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터널보다 더 깊고 아득하다.
가면 뭐 뾰족한 수 있어?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 지랄 맞은 곳에서 벗어났으면. 당신의 염려처럼 뾰족한 수가 없어서 다시 허물어지는 낡은 집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 그곳을 벗어났으면 싶다.
그런데 요즘은 그 지랄 맞은 곳으로의 귀향을 꿈꾸는 까닭은 또 왜일까.
2010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