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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Mar 18. 2022

'혐오한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김혜수의 냉정한 위로

소년심판은 '촉법소년 연령을 낮출수 있을까?

지난 2월 25일 김혜수가 주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이 안방 시청자들을 찾았다. 드라마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촉법소년'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관할법원의 소년부로 송치되어, 소년부 판사의 판결<10호-1호>에 따라 <감호 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그리고 <보호관찰>등을 처분받는다. 

           

▲ 소년심판 유능한 판사 김혜수는(심은석, 분) 가슴 아픈 가족 사가 있다. 그녀는 모두가 기피하는 소년부 판사로 자원한다. ⓒ 넷플릭스


유능한 판사 김혜수(심은석 분)는 모두가 기피하는 지방법원 소년부 판사를 자원한다. 그녀는 가슴 아픈 가정사가 있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녀의 상처는 드라마 주제인 소년범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재판정과 범죄현장을 넘나들며 시종일관 냉철함을 유지하던 그녀도 자신의 아픔이 드러나는 장면에선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극 중 다른 인물인 김무열(차태주 분)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고, 이성민(강원중, 부장판사 분) 또한 불법을 저지른 가족과 공정해야 할 판사 사이에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다.

        

▲ 소년심판 자신의 야망과 가족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강원중 판사에게 김혜수는 일침을 날린다. ⓒ 소년심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이 교화와 갱생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소년법은 현재의 정서와 맞지 않다. 촉법소년들의 범죄는 잔혹해진다. 살인, 왕따, 성폭력, 성적조작 등 반성이나 죄의식도 없다. 무엇보다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소년범죄가 일반 범죄와 다른 점은 그 범죄의 대상이 대부분 동생이나 친구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처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래서 내가 너희들을 혐오하는 거야, 갱생이 안 돼서."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에게 교화와 갱생은 가능한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이지안, 분)'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번 타고난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을 혐오한다.'는 판사 김혜수(심은석 분)의 일갈은 점점 잔인해지는 소년범죄와 그 판결의 정당성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이들은 순수하다'라는 금기를 넘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심은석의 단호한 목소리를 통해 모든 아이들이 그럴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모든 아이가 순수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거짓말의 신화다. 동네 놀이터의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한정된 공간을 유심히 관찰하면 아이들만의 작은 서열과 권력이 존재한다. 놀이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따르고,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터의 작은 권력은, 학교로, 동네로, 회사로 더 큰 조직과 집단으로 확대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차태주는 김혜수와 생각이 다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있다면 충분히 교화, 갱생될 수 있다, 라는 목소리를 더한다. 하지만 연출자나 작가의 시선은 김혜수의 차가운 시선에 무게를 더한다. 


법과 원칙의 소년부 판사, 돌봄과 헌신의 사회복지사


드라마는 내내 어둡고 차갑다. 재판정에 앉은 심은석의 차가운 말투와 냉철한 이미지가 살얼음 위를 걷는듯한 드라마를 더욱 차갑게 만든다. 차태주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의 배려가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주는 그에게서, 지난날 아동 시설의 사회복지사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이고 싶었던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 소년심판 소년부 판결에서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입소하는 '푸름청소년회복센터'다. 처벌보다는 환경조정을 통해 갱생을 유도하는 시설이다. ⓒ 넷플릭스


소년 심판 4화에서는 청소년회복센터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비리 제보를 받은 판사들이 점검차 시설을 방문한다. 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아이들과 원장의 시점을 달리하며 사건을 해석한다. 원장의 시선, 아이들의 시선에 따라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진실은 하나지만 시선에 따라 사실은 여러개다. 결국 드러난 진실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돌봄시설의 사회복지사도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끔은 형사나 탐정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의 갈등은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겐 감당할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그렇기에 돌봄시설의 사회복지사는 벌어진 상황을 다양하게 바라봐야 하며 아이들과 상담을 할때는 말투. 시선, 표정조차도 신중해야 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통해서 본 교화와 갱생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는 소년심판과 소년범죄에 관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원작을 쓴 작가의 가슴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인간의 악마성에 천착하며 김혜수의 일갈처럼 '악은 어떤 형벌을 주어도 감화되지 않는다' 고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돌봄시설에서 만났던 아이들과의 아찔했던 상황들이 몇차례 오버랩되었다. 시설 책임자로서, 파출소와 경찰서를 가야 할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가 누워있는 병원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와 만나서 힘겹게 합의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감정싸움이 몸싸움으로 벌어졌다. 상황은 복잡해졌고 피해자는 6주 진단을 받았다. 가해 학생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만 14세가 안되어 훈방조치 되었다. 촉법소년이라는 용어를 그때 처음 알았다.


'혐오한다.'라는 김혜수의 말 속에 숨겨진 냉정한 위로


김혜수는 반성할 줄 모르는 소년범에게 서슴없이 '혐오한다'라는 일갈을 날린다. 가해자에게 날리는 그녀의 독설이 통쾌하고 시원했다. 김혜수의 독설은 일방향이다. 가해자를 향해서는 거침없고 단호하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냉정한 공감과 차가운 위로다. 


"이것 하나만 명심하고 가, 니가 잘못한 게 아니야. 고개 들고. 당당히."


김혜수는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학생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고개를 들고 당당하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은 냉정하다. 하지만 그 냉정함이 오히려 피해 학생에게 힘을 주고 가해자 앞에 당당히 나서게 한다. 


"내 인생을 예전처럼 돌려주세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는 소년을 법과 원칙에 맞게 단죄 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찜찜한 통쾌함을 주었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그렇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 드라마는 소년범죄 판타지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가 아동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일명 '도가니법')을 이끌어 냈던 것처럼, 이 드라마도 김혜수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교화와 갱생, 인권존중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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