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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Dec 31. 2020

위플래시

[리뷰]두 천재의 예술과 한계,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모욕'에 관하여

'비난이나 모욕'은 때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채찍일까? 영화 '위플래시'를 보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세이퍼 대학교의 신입생 앤드류. 천재지만 성격은 지랄 맞은 플랫쳐 교수. 영화는 두 천재의 '예술과 한계'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모욕'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광기 어린 두 열정이 충돌하는 장면을 수없이 보여준다.


"그만하면 잘했어"


라는 말은 천재에게는 가장 쓸데없는 말이지만 나처럼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무난한 표현이다.


'찰리 카파'에게는 '조 존스'가 있었다. 조 존스는 연습 도중 찰리 카파에게 심벌을 날렸다. 그리고 찰리 카파는 재즈의 전설이 되었다. 플랫쳐는 앤드류를 제2의 찰리 카파로 만들고 싶어 한다. 후반부를 보면 과연 그랬을 나 싶기도 하지만. 플랫쳐 교수의 수련 방식은 매우 혹독하다. 인간적 모멸감, 잔인할 정도의 폭력성, 그리고 툭하면 앤드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진다.


플랫쳐 교수는 앤드류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한다. "그만하면 잘했어"는 가장 쓸데없는 말이라며. 아니, 조 존스의 찰리 카파처럼 앤드류 같은 천재에게 그것은 가장 모욕적인 말이다. 하지만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 앤드류는 여자 친구에게도 이별을 고하며 플래쳐 교수의 혹독한 수련 방식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악마성을 집요하게 천착한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이 영화 확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긴장감과 몰입도는 최고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는 시쳇말로 쩐다. 영화 제목이 위플래시 <채찍질> 인지도 저절로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졸업생 선배의 자살로 인해 플랫쳐 교수의 혹독한 수련 방식이 학교에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공연을 망친 자신을 비난하던 플랫쳐 교수와 무대에서 한 몸으로 뒤엉키던 앤드류의 증언으로 플랫쳐 교수는 학교에서 해고된다. 그 사건으로 앤드류 또한 드러머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어느 날 재즈카페에서 플랫쳐 교수를 만나고 자신이 맡고 있는 밴드의 드러머가 '똥'이라는 그의 제안에 앤드류는 다시 드럼을 꺼낸다. 하지만 앤드류는 무대에서 다시 한번 플랫쳐 교수에 의해서 모욕을 당한다. 그는 참을수 없는 모욕을 느끼며 무대를 뛰쳐나간다. 하지만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난다. 영화는 앤드류의 한계를 넘어서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는 있다. 플래쳐 교수의 말처럼 자각이나 하면 다행일 한계. 그래서 <일만 시간의 법칙>이나 <연습만이 살길이다>라는 평소의 신념은 두 천재의 광기 수준의 열정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질과 양 두 가지 모두 다. 이것은 내게 다른 형태의 모욕이다. 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누군가의 모욕을 나는 참을 수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내가 경험했던 대부분의 분야에서 나는 천재가 아니었으니까. 스물한 살, 드럼 좀 배우겠다고 좁은 지하실의 타이어 앞에서 밤 열두시까지 연습하다가 열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천재가 아니었구나'라고. 그러니까 '그만하면 잘했어'는 내게 비난이나 모욕이라기보다는 가장 훌륭한 칭찬이다.


플랫쳐 교수의 혹독한 수련 방식은 앤드류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지만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혹자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것이다. 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의 진정성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 했다. 그는 단지 앤드류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가장 비겁한 방식으로. 하지만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나의 두 눈과 귀는 즐거운 모욕(?)에 젖어 있었다. 평균 이하는 아니지만 둔재인 나는.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올해 '당신도 그만하면 잘했어'라고.


그게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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