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리뷰]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의! 이 기사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18년 3월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이상한 드라마다. 주연인 박동훈(고 이선균 분)이나 이지안(아이유 분)은 물론, 주연이나 조연 할 것 없이 저마다 삶에서 스며든 상처와 쓸쓸함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각자의 상처와 공백을 자신만의 책상에서, 구석에서, 그리고 어둑신한 거리의 골목에서 보여준다.
<나의 아저씨>는 삼안 E&C의 기업 내 권력싸움과 정치질, 그리고 박동훈과 형제, 그리고 따스하고 인간미 넘치는 후계동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힘겨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한 아저씨와 어릴 때부터 상처받고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고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다.
박동훈은 삼안 E&C의 부장이자 건축구조기술사다. 그는 홀어머니(고두심 분) 밑에서 삼 형제의 차남으로 자랐다. 한때는 촉망받는 영화감독이었지만 실패한 막냇동생 박기훈(송새벽 분), 퇴직 후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형 박기훈(박호산 분)이 있다. 동훈은 직장에서 능력은 있지만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고 정치질도 잘하지 못하여 매번 승진에서 밀린다. 대학교 후배인 도준영(김영민 분)이 회사의 사장이다. 더욱이 사장은 자신의 아내(이지아 분)와 불륜관계다.
이지안은 학생 시절 자신과 할머니를 괴롭히던 사채업자를 죽였다. 살인은 정당방위였고 지안은 수감생활을 통해 충분히 죄의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사회는 늘 지안에게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지안은 부모가 진 빚마저 모조리 떠안은 채 아르바이트와 각종 불법을 행하며 돈을 벌어 빚을 갚아 나간다. 동훈은 그런 지안을 자신의 부서에 계약직으로 뽑는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였다.
지안은 지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을 가차 없이 내버려 둔 비정한 세상을 향해 항상 냉소를 보내고 그렇기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도 항상 거리를 둔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냉대한다. 하지만 동훈은 그런 지안의 상처를 이해하고 안타까워 하며 잘해준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나의 아저씨> 4화
동훈의 퇴근길은 언제나 쓸쓸하다. 축 처진 어깨로 밤길을 터벅터벅 걷는 그의 모습이 이 드라마가 풍기는 어둡고 선득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동훈과 지안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들은 애잔하고 서글프다. 하지만 이상하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삶이 지치거나 쓸쓸하고 외로울 때 이 드라마를 떠올리게 된다. 한동안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면 스미듯이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인정이 넘치는 후계동 주민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냥 좋기만 하지도, 또 싫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삼십년 가까이 살고 있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곳을 달동네라고 하지만 나는 언덕이 높은 이 동네가 참 좋다. 퇴근길 헉헉거리며 고개를 올라올 때는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 줘."
<나의 아저씨> 7화, 최유라
내게는 동훈과 그의 형제, 그리고 정 많고 살가운 친구들이 살던 후계동이 무릉도원이자 유토피아였다. 주말이면 함께 공을 차고, 후계동 사람들의 아지트인 정희네(오나라 분) 호프집에서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싶은 유토피아다. 그리고 달리기를 잘해서 삼안 E&C의 3개월짜리 계약직이 된 지안은 그 유토피아의 수혜자였다.
지안 할머니의 장례식... 동생의 장례식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회에서 나온 지안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이다. 동훈은 지안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지안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훈에게 연락을 했다. 동훈과 형제들은 지안 할머니의 장례식을 함께 치러준다. 조문객 하나 없는 지안 할머니의 쓸쓸한 장례식장이 안타까웠던 동훈의 형 호산은 그동안 청소일을 하며 모아 두었던 돈으로 화환을 사서 할머니의 장례식장 복도에 나란히 세운다. 후계동 주민들도 장례식장을 지키며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해 준다. 이 장면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난 막내 동생의 장례식과 겹쳐졌다.
동훈처럼 우리도 삼형제였다. 내가 둘째다. 2014년 9월, 오랜기간 마음의 병을 앓던 막내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식구가 많지 않던 우리 가족은 막내의 죽음을 슬퍼할 경황도 없었다. 홀어머니와 삼 형제였던 우리는 사는동안 집안 행사가 없었고 더욱이 장례식은 성인이 된 후로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장례식 비용도 얼마나 들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보내주고 싶었다. 황망한 슬픔과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장례식 준비를 하고 회사와 지인들에게 동생의 부고를 알렸다.
첫째 날 막내의 빈소는 한산했다. 소식을 접한 회사의 동료들이 오전부터 조문을 와주었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조문을 왔다. 그럼에도 빈소는 쓸쓸하고 휑했다. 그런데 둘째 날 오후가 되자 빈소에 낯선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단지 안면만 조금 있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문하러 와주셨다. 법인 대표가 동생의 부고를 함께 활동하던 이들에게 회람을 돌렸던 것이다. 조문객 중 일부는 빈소에서 선잠을 자고 발인하는 날 운구부터 화장장까지 함께 해주셨다. 큰 슬픔을 겪으니 작은 위로 한마디에도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언제쯤 평안함에 이를까, 우리는
사람들이 시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이유는 한가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고 궁극엔 평안함에 이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오랜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드라마를 잊지 않고 찾아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보다. 다 죽어가는 나 살려 놓은게
너야."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이제 진짜 행복하자."
<나의 아저씨> 16화
동훈은 도준영 사장의 갖은 음모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안의 도움으로 상무로 승진을 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던 직원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다. 지안은 삼안 E&C회장의 소개로 지방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다.
"지안, 평안함에 이르렀나?"
"네."
두 사람은 악수를 청하고 헤어진다. 지안은 동훈에게 '밥 살게요'라고 한다. 항상 그랬던 '밥 사주세요'가 아닌 '밥 살게요'는 지안의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동훈은 지안을 향해 뒤돌아 보며 선한 미소를 짓는다. 지안도 동훈을 향해 뒤돌아 보며 평안함에 이른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