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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Jun 04. 2024

"성진씨, 진짜 좋은 사람 만났다"... 노무현도 칭찬

[리뷰] <어른 김장하> 꼰대로 가득한 이 시대... 진짜 어른, 김장하

오늘도 마트에서, 식당에서,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손님에게 폭언과 갑질을 당했다는 하소연들이 언론과 S.N.S에서 넘쳐난다. 손님은 사장에게, 사장은 직원에게, 직원은 부하직원에게 갑질을 한다. 갈수록 갑질과 꼰대가 넘쳐난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가 잘 아는 슈바이처, 헬렌켈러, 그리고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삶은 위대하지만 이제는 너무 과소비된 위인들이다. 먼지 쌓인 책 속에 박제된 위인들을 벗어나 우리 주변에서 존경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을 만날 수 없을까? 

'어른 김장하'가 있었다

김장하 이사장(아래 김장하)은 경남 진주에서 지난 60여 년 동안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한 지역의 어른이다. 또한 김장하는 명신고등학교를 지어 8년간 운영 후 국가에 헌납했다. 100억 대가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김장하는 인터뷰나 방송은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문화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를 공동취재한 MBC경남과 김주원 기자 또한 김장하의 허락 없이 촬영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장하 선생은 화를 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락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겠다', '몰래 찍지 않겠다.' 몇가지를 통보(허락이 아니니 통보다)하고 김주완 기자를 앞세워 카메라를 들고 김장하 선생을 만나러 갔다. 행사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취재 사실이 알려지니 사람들이 모임에 끼워줬다.

- <방송작가> 2023년 3월호



▲ 어른 김장하 스틸컷 ⓒ 넷플릭스


국민학교 졸업식과 '사랑의 장학금, 7만 원'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엄마에게 말해서 증명서 한 통을 떼오라고 하셨다. 오래전이라 그게 무슨 서류였는지 잘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 말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서류를 전해 드렸다.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성적이 형편이 어렵고 우수한 도내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사랑의 장학금' 수혜자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증명서였다.


나는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이 되었다. 졸업식 며칠 전 전라북도 교육청에 가서 장학증서와 장학금 7만 원을 받았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팔백 원이었으니 7만 원은 큰 금액이었다. 졸업식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단상으로 향했다. 조금 떨렸지만, 한편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니는 그때 받았던 장학금으로 책가방과 학용품 등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주셨다.        


재판하는 사람, 재판받는사람


김장하에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의 현재 모습과 뒷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지금은 유명한 교수나 판사가 되었다. 안타깝게 죄를 짓고 감옥을 간 사람도 있다. 우스개 소리로 재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재판을 받는 사람도 있다. 속세를 벗어나 스님이 된 사람도 있다.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자영업자도 있다.


"도움을 받았음에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거다."


▲ 어른 김장하 스틸컷 ⓒ 넷플릭스


너도 나도 인터뷰를 자처했다. 인터뷰를 할수록 미담은 계속 나왔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고 환하다. 그들은 김장하 이사장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학창 시절 김장하에게 받은 장학금이 없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노무현, 어른 김장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도 나온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김장하를 만나기 위해 사전 연락도 없이 한약방을 불쑥 찾아간다. 김장하는 무작정 찾아온 노무현 후보에게 기왕 오셨으니 차나 한 잔하고 가시라며 그를 대한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좌관이었던 김성진씨는 노무현 후보가 김장하를 만나고 나서 이렇게 평가했다고 했다.


▲ 어른 김장하 스틸컷 ⓒ 넷플릭스


"아, 성진 씨 진짜 좋은 사람 만났다. 사람을 만나러 가면 항상 가르치려고 하고 훈수두고 잘난체 하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너무 좋은 분을 만난 것 같다. 참 좋았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나서 김장하에게 식사를 초대했지만 그는 한방에 사양을 했다.  


불편한 시선, 세월이 증명한 선의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법이다. 김장하의 이런 선의를 마냥 좋게민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다큐가 끝날때쯤 한 보수 우익 인사가 김장하에게 전화로 거세게 비난을 한다. 


"돈 있다고 말이야 돈X랄 하고 다녀? 당신같은 빨갱이들이 설치는 세상을 만들었어, 왜? 어이, 김장하씨 엄한소리 하지 말고. 국가에 반성문 써서 제출해, 어?"


김장하는 자신을 비난하는 말들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는다. 불편한 시선과 비난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런 듣기 힘든 비난에도 김장하는 묵묵히 참고 견디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담담한 표정으로 세월이 자신의 선의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눔과 헌신의 선순환


사회복지사를 오래 하다 보니 김장하처럼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기자가 속했던 시설에서도 개인후원과 기업후원이 많았다.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이것도 직업병일까? 순수하지 않은 나눔이나 기부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김장하의 조건 없는 나눔과 헌신은 내 각박해진 마음을 따습게 부순다. 


국민학교 졸업식 때 받았던 장학금 7만 원이 내 삶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잠시 잊고 있었지만, 김장하에게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들이 나눔의 삶을 살고 있듯이, 그때 받았던 장학금이 나를 사회복지사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소액이지만 지역 단체와 사회복지시설에 후원을 하고 있다. 가까운 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에서 배식(세척)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 어른 김장하 김장하 선생님은 2022년 6월에 60여 년간 운영해온 남성당한약방의 문을 닫았다. ⓒ 넷플릭스


꼰대로 가득한 시대 만난 진짜 어른


갑질과 꼰대가 만연한 시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갑질과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기사들이 다양한 경로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 갑질은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선정적이다. <어른 김장하>는 날로 각박해지는 이 시대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 준다. 갑질과 꼰대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본받고 싶은 진짜 어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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