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다음에 오는 아삭아삭
오늘도 새벽 2시에 깼다. 일주일 연속 내란성 불면증이다. 어젯밤 9시와 새벽 2시, 약 5시간 사이 무의식의 심연을 헤메고 난후 깨어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행위는 한달이 넘게 숨어 있는 용산의 돼지 한마리를 포획했다는 소식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과 유투브를 검색 해도 포획된 돼지를 썸네일로 하는 기쁜 소식은 없다. 목이 마르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투명한 유리컵에 가득 담았다. 물이건 맥주건 소주건 나는 항상 유리컵에 가득 담는다. 모자란 삶 투성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멋진 선택이다.
시린 겨우내 갈라진 입술과 건조한 입을 벌리고 유리컵에 가득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하다. 아니 시원하지 않다. 찬물이 들어간 육신은 그런데 삭막한 정신이 그렇지 않다. 요즘 내 마음의 삼분의 일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다.
밤 열 시와 열두 시 사이가 되면 가끔 맥주와 소주가 생각난다. 500CC 투명한 유리컵에 소주와 맥주가 만나 소용돌이를 친후 식도를 지나 위장을 시작으로 오장육부에 퍼지면 환희나 열락은 아니어도 기분이 삼삼해진다. 심지가 연약한, 처음부터는 아니고 마흔이 넘어서부터, 나는 매일밤 오분에서 십분 정도 내 버석하고 건조한 몸을 촉촉이 적셔줄 알코올을 향한 갈등을 반복하다가, 종국엔 얇은 상의를 걸치고 계절에 상관없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서 어둡고 좁은 골몰을 터벅터벅 거닐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로등에 움츠리고 있던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붉은 담장위로 솟구치더니 사라진다.
고양이 두 마리가 매일 붉은 담벼락 아래에서 흘레붙기를 시도하는 내 집 주변은 좁고 어둡고 허름하지만 잠 못 드는, 혹은 이른 잠에서 깬 나를 유혹하는 상점들은 네온을 밝힌다. 나는 여름에 입던 엷은 재킷의 옷깃을 한차례 여민후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가로등이 꺼진 골목을 갈지자로 걷다가 24시간 편의점이나 늦게까지 문을 여는 슈퍼의 문을 연다. 삼년째 야간 알바를 하는 편의점 청년은 귀에 들릴듯 말듯 인사를 한다. 나는 청년의 투명한 눈을 봤을뿐 완전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소주한병과 캔맥주 한개, 그리고 새우깡이나 양파링이 양 손에 들려있다.
하지만 요즘은 새벽의 편의점 마실마저도 내 의지와 몸이 유리된 채, 초저녁 혼미함에 빠졌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느닷없는 새벽을 맞는다. 다시 목이 탄다. 얼음을 가득 담은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긴 밤을 버텨야 한다. 목을 축이니 허기가 진다. 새벽의 허기는 새벽의 한기다. 냉장고엔 달포전 아버지 제사상에 올렸던 곶감이 있고 찬밥 두 덩이가 있고 며칠 전 쿠팡에서 주문한 사과가 다섯 알이 있다. 사과 한 알을 꺼냈다. 사각사각 다음에 오는 아삭아삭. 새벽에 아삭 아삭 씹어 먹는 사과가 새콤달콤 맛나다.
미루고 쟁여둔 소설이나 써야겠다. 파우스트적 고민, 삼십 대 초반 자전적 경험의 중편 소설이다. 오래전 써두고 묵혔던 소설이다. 초입부터 성긴 문장과 어색한 묘사들이 손을 오글거리게 한다. 하지만 나와 친구와 여린 마음을 파괴해 버릴것만 같았던 당시의 소름과 섬뜩함이 아득한 기억의 먼 곳으로 던져두었던 것들이 생생히 살아난다.
CHAT GPT의 감수가 소설을 완성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파우스트적 고민.
소설 속 경수는 소진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간밤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진은 경수의 사고소식에 가장 먼저 K를 떠올렸다. 소진은 자신과 경수의 한참 선배인 K와 관계가 있음을 짐작했다. 소진과 경수의 친구들이 새벽에 병원으로 향했다. K는 21세기의 파우스트?
방 안이 건조하다. 가습기를 최대한 틀어도 방 안의 습도는 60 이하다. 입술이 쩌걱쩌걱 갈라진다. 겨울이 되면 내 붉은 입술은 사막이 된다. 무식하게, 아니 무의식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를 집게로 삼아 뜯었더니 피가 난다. 피맛은 밋밋하다. 그 상처에 소금을 치면 따갑겠지. 불면이 밤으로 미친 건가? 책상에 미니 가습기를 하나 더 구입해서 올려놓은 건 잘한 것 같다. 내일은 안드로메다의 태양 신들 중 하나가 빛으로 날아와 하마터면 망할뻔한 대한민국과 키세스단들에게 구원의 손짓을 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