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무인가게... '신뢰자본'과 '공권력'에만?

이익은 사유화 하고, 위험과 관리 비용은 공공의 비용으로?

by 김인철

우리 집 근처에는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가게가 네 곳이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편의점, 무인 세탁소, 무인 카페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어느덧 주변에서 가게를 지키는 직원이나 주인이 없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무인가게는 편의점처럼 24시간 열려 있다. 편의점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하다. 나 역시 집에서 가까운 무인세탁소와 무인가게를 종종 이용한다.


IE003569131_STD.jpg ▲요즘 동네에서 흔히 볼수 있는 무인가게다. 글에서 다룬 재판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 김인철


무인가게가 늘어나는 이유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무인가게는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존 편의점도 무인점포가 늘고 있고 아이스크림, 빨래방 등 무인점포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인가게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우선 무인가게는 소액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인건비, 임대료 상승, 관리비용 부담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 무인점포는 지난해 말 기준 3310개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55.8% 급증한 수치다. 이밖에 아이스크림·빨래방 등 다른 무인점포들도 지난해 3월 기준 6323곳으로 조사(소방청 '2023년 다중이용업소 화재위험평가' 자료)됐다.

-중앙일보, 2024. 2. 5-


여기에 기술 발전도 한몫한다. CCTV와 모바이 결제 시스템만으로도 직원이 상주하지 않아도 웬만한 절도는 예방할 수 있다. 공권력의 감시라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 역시 무인가게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젊은 세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키오스크와 모바일 결제에 익숙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무인가게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신뢰자본'에 있다.


한국사회의 신뢰자본


한국 사회의 신뢰자본은 유럽이나 북미 등 이른바 경제·기술·문화적으로 발전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에 속한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가 페이스북에 썼듯이 새벽배송 기사가 택배 상자를 주택이나 아파트 문 앞에 두고 갈 수 있는 사회는 타인의 재산을 함부로 탐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 믿음 위에서 작동한다. 우리 사회에 축적된 신뢰가 있었기에 쿠팡의 새벽배송 역시 가능했다.


카페 테이블 위에 휴대폰만 올려 놓거나 상점 바깥에 상품을 진열하거나 집 밖에 택배물건을 놔둬도 괜찮은 현대 한국 문화는 한국인들 스스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것이지, 쿠팡이 만든게 아닙니다.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


무인가게 역시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자본이 있기에 가능한 운영 방식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장면 중 하나가 카페나 식당에서 스마트폰이나 지갑 같은 개인 물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자리를 비우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카페에서 빈 테이블 위에 지갑이나 노트북이 놓여 있으면 외국인은 물건을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 '자리'를 탐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한국 사회의 신뢰자본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무인가게 역시 이러한 신뢰자본 위에서 가능해졌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익은 사유화, 부담은 공공으로


무인가게의 가장 큰 장점은 운영자가 인건비와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인가게가 점점 늘어 날수록 이전에는 없던 문제도 발생한다. 무인가게는 단순히 한 국가나 사회의 신뢰자본만으로 지속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아무리 한국 사회가 높은 신뢰자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양심을 지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인가게 운영과 관련한 피해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무인점포가 많아지면서 경찰이 속을 끓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서울 한 지구대 경찰관은 "1000~2000원 짜리 소액절도 사건 신고가 늘고 심지어 2시간마다 가게를 순찰해달라고 요구하는 업주까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 무인가게 앞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심야시간(00:00~06:00)에 수시로 경찰 순찰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했다.

-중앙일보, 2024. 2. 5-


그 양심을 지키지 않는 비용을 운영자 대신 소비자나 국가 공권력으로 이전될 뿐이다. 일반 가게는 절도나 파손을 막기 위해 자체적인 인력을 두거나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비용을 점주가 부담한다. 반면 무인가게는 이러한 관리 비용을 구매자나 국가 시스템에 의존한다.


결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나 기물 파손의 책임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무인가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경찰이 출동하고 경우에 따라 사법 절차로 이어진다. 이는 원래 점주가 감당해야 할 사적 비용을 공적 시스템에 얹는 방식이다. 점주의 비용 절감이 시민이 낸 세금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7월 경기 지역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 다섯 개를 고른 뒤, 아이스크림 네 개와 비닐봉지 값 3,050원만 결제하고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는 결제하지 않은 채 가져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경기 지역의 한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과자 1봉지와 아이스크림 5개를 골랐다. 이후 아이스크림 4개와 비닐봉지값 3,050원만 결제한 뒤, 1,500원어치 과자 1봉지는 결제 없이 봉투에 넣어 가져갔다. (중략) 김씨는 피해자에게 합의금 10만원을 변상하기도 했다. 피해자 측은 "알고 보니 김씨가 친구의 자녀였고, 김씨로부터 사과를 받았으니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경찰에 합의서를 제출했다.

-경향신문, 2026년 1월 5일-


신뢰자본과 공권력은 공짜가 아니다


검찰은 김씨를 절도죄로 기소유예 처분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를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절도의 경중보다 무인가게 운영자가 김씨의 결제 실수를 고소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았는가 하는 점이다. 무인점포에서 발생한 사건을 유인 가게에서의 절도와 동일하게 볼 수 있을까.


가게에 직원이나 사장이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결제 실수를 절도로 보는게 타당한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검찰·헌법재판소까지 동원돼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인지 의문이 생긴다.


무인가게는 점주와 소비자 모두에게 편리한 시스템이다. 점주는 인건비와 관리비용을 아낄수 있고 소비자는 언제든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수 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위험과 비용이 공적 시스템에 얹은 결과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대가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하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사회적 신뢰자본을 활용하고, 그 위험과 관리 비용을 공적 시스템과 처벌로 메우는 방식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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