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예술을 더했다.

엠아트 센터 '그림산책' 회원전, 오는 11일까지

by 김인철

브런치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s://omn.kr/2hndp


토요일 아침이다. 스르륵 잠에서 깨니 창 밖에선 봄을 알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어제 잠들기 전, 아니 꿈속에서 봄의 정령사들에게 비 소식을 들은 것 같다. 미몽에서 헤매던 중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리더니 익숙한 음성이 봄비 소식을 전한다.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틈이 벌어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더니 녹색 암막 커튼이 살랑거린다.


몽롱한 의식을 부여잡으며 오늘 중요한 일정 하나가 떠올랐다. 서울이다. 버스나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곳이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다닥다닥 붙은 일상의 공간에서 고개를 올려다봐야 하는 거대한 공간이 펼쳐지는 곳.


시청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성남에는 주말이면 시청에서 산책을 하거나 가족이나 연인들이 나들이를 한다. 우리 모임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모임 이름도 시청파(성남시청에서 산책하는 사람들)다. 나를 포함한 시청파 회원 네 명은 시와 소설, 그림을 좋아한다. 한 달 전 시청파 멤버인 홍만화 작가가 활동하는 그림산책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이 몇 번째 전시회인가요?"

"대학교 졸업 후 처음이에요."


홍만화 작가에게 이번이 몇 번째 전시회냐고 물으니, 대학교 졸업 후 처음이라고 한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고 묻자 차분한 목소리로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1인가구 회원 11명이 공저 <별의별 삶의 온도>를 출간한 경험을 떠올리니, 홍 작가도 전시회를 준비하며 느꼈을 어려움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졸업 후 오랜 기간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강점이 있음에도 어반스케치를 선택하게 된 고민까지. 그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 같다.


IE003602565_STD.jpg ▲그림산책 회원전엠아트 센터 그림산책 회원전 전시 일정 ⓒ 김인철


전시회 장소는 엠아트센터 전시관 2층이다. 엠아트센터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복합 미술 전시 공간이다. 요즘 '갤러리 타운' 형태로 여러 갤러리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 공간이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기존의 미술관이나 전시회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폐쇄된 곳이 아닌, 열려 있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만큼 부스 형태와 구성이 다양하다. 엄숙하기보다 가볍고 열린 느낌이다.


그림산책 회원전 전시 기간은 2026년 4월 1(월)일부터 4월 11(토)일까지다. 입장료는 무료다. 평일과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하며, 일요일은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홍만화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어반스케치 5점을 출품했다.


IE003602566_STD.jpg ▲그림산책그림산책 회원인 홍만화 작가의 어반스케치다. 작년에 시청파 멤버들과 갔던 카페 사진을 어반스케치로 담았다. ⓒ 김인철


그중 눈에 익은 작품이 하나 있다. 다른 멤버들도 단번에 그 장소를 알아봤다. 우리가 작년에 방문했던 서울의 한 카페를 수채화로 그렸다고 한다. 우리가 잠시 공유했던 공간이 한 사람의 시선에 포착되어 작품이 되어 눈앞에 서 있는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새롭다.


"인철 샘, 방명록 하나만 써주세요."


홍 작가의 요청에 전시실 한쪽에 놓인 방명록을 펼쳤다. 흰 종이를 마주하자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선 속에 품었던 문장들이 휘발되어 버린다. 앞선 사람들의 방명록을 슬쩍 훑어보며, 텅 빈 머릿속에서 세상에 없던 멋진 표현을 꺼내보려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결국 가장 무난하고 익숙한 단어를 골라 펜 끝에 힘을 주고 흰 백지에 꾹꾹 눌러 적었다.


IE003602797_STD.jpg ▲전시그림산책 회원전에 전시된 작품 ⓒ 김인철


당신의 일상을 예술로


엠아트센터에서는 그림산책 회원들의 작품뿐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르면서도 안전한 방법이다.


전시 공간을 따라 걷다 보니 각 부스마다 작가만의 작풍과 세계관이 결핍된 마음을 조금씩 채워준다. 정교한 선과 과감한 터치들이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시선까지 붙잡는다. 관람객들은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IE003602567_STD.jpg ▲엠아트센터엠아트센터에서는 그림산책 회원전뿐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 김인철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려 했지만, 작품을 보니 물질적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작품 하단에 적힌 가격에 눈길이 간다. 몇몇 작품에는 "SOLD"가 붙어 있다.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일은 생필품이나 소비재를 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십여 년 전, 단 한 번 특별한 소비를 한 적이 있다. 전시가 끝난 그림을 구매해 달라며 작품값을 할인해 주겠다던 학생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금강산도 식후경


전시회 관람을 마치니 슬슬 허기가 진다. 인간이 허기를 채우는 건 멋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성남시청으로 이동했다. 시청 근처 식당에서 정갈한 정식으로 식사를 한 뒤 시청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IE003602618_STD.jpg ▲성남시청시청 정원에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홍만화


해사한 봄기운을 만끽한다. 시청 정원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옅은 푸른빛이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공기는 상쾌하다. 정원을 거닐때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시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봄을 만끽하려는 4월의 상춘객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행복한 순간을 담아낸다.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흰 꽃잎이 사방으로 나부낀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리는 듯하다.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바닥에 두 발을 붙이지 않는다. 붉은 혀를 내민 슈나우저 한 마리가 컹컹 짖는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마다의 드라마를 찍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들의 일상에 예술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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