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여행학교 넷째 날(2016년 9월 7일)
여행학교 마지막 날이다. 귀국은 내일이지만 아침에 바로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일정이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은 다른 날의 아침과 달리 비교적 느긋했다. 여섯 시쯤 일어났다. 새벽에 들어온 듯 D는 아직 자고 있다. 체크아웃은 아침 9시다. 침대에 누운 채 서두를 필요가 없는 타국에서의 아침의 시간을 차분히 즐겼다.
객실 창밖 커튼 사이로 보이는 건물의 한글 간판이 이질적이다. 여행 내내 내 시선은 그랬다. 조선족이 사는 곳은 어디를 가든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간판들이 보였다. 두음법칙과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는 한글식 간판은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고국을 등지고 버려진 땅을 개간해야 했던 조선족의 역사는 많은 지점들이 같은 듯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민족의 말과 글이지만 이질화되어버린 언어와 문자는 그 차이를 말해준다.
아침은 호텔식이다. 쌀밥과 삶은 계란, 그리고 밍밍한 꽃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 주요 일정은 발해 유적지 탐방이다. 숙소에서 목적지인 목단강까지는 4시간 정도 거리다. 그런데 중간에 휴게소가 없다. 숙소를 같이 썼던 D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길 한복판에서 버스를 세워달란다. 아! 화장실. 휴게소처럼 생긴 기념품 매장이 보인다. 오픈된 화장실이다. 바닥을 본 아이들 몇이 기겁을 한다. 가이드는 중간에 옥수수 밭 체험(?)을 시켜줄 생각이었단다.
목단강으로 가던 중 첫날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첫 번째 장소인 발해 유적지를 들렀다. 동경성 발해 유적지인 '상경 용천부'의 흥룡사다.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수도인 오경중 하나로 발해가 멸망하기 전까지의 수도였다. 흥룡사는 궁궐 안에 있던 절이다. 두 번의 화재로 인해 흥룡사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지는 별로 없었다.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입적한 스님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석돌 몇 개와 우물이 전부였다.
발해 박물관 안에 있는 발해 상경 용천부의 궁궐 모형이다. 궁궐은 가로세로 길이가 4킬로씩 총 16킬로미터나 된다. 해동성국 발해답게 궁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박물관 중앙에 중국 당국이 한자로 발해의 역사를 쓴 안내문이 있었다. 한자를 모르는 나는 답답했다. 가이드가 한자를 읽어주며 중국의 '동북공정'이야기를 설명해준다. 발해를 하나의 국가가 아닌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의 역사 중 하나로 폄하시켰다는 내용이다.
통일신라시대?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신라는 완전한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국사나 역사시간에 배운 삼국통일은 발해를 인정하지 않는 역사다. 고씨에서 대씨로 바뀌긴 했지만 발해는 분명히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역사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만든 나라였다. 민족이 두 개였고 그 역사적 근거가 취약한 탓에 지금은 발해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어 버리는 곡절을 겪고 있지만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시대'로 바라봐야 한다.
여행학교 마지막 날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동방명주 호텔)로 이동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에 야시장이 열렸다. 야시장 뒤쪽으로 우리나라의 이마트와 비슷한 쇼핑몰이 있었다. 청소년들도 모둠별로 자유시간을 가졌다. 야시장을 잠깐 둘러본 후 다른 인솔교사들과 함께 기념품을 사러 쇼핑몰에 들렀다. 무얼 살까 고민하다. 결국 만만한 술을 두병 구입했다. 하나는 50위안,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위안이다.
다음날 아침 호텔 객실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룸메이트 D가 객실을 나가면서 카드키를 가지고 나갔는데 열쇠가 고장이 났는지 객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안내데스크에 전화를 했는데 중국말이라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Door was broken" "can you speak~" 혹시나 싶어 영어로 물었는데 돌아오는 건 중국말이다. 나 지금 호텔에서 갇힌 거야. 사실 기다리는 동안 쫌 겁이 나기도 했다. 8층이라 무슨 일이 난다 해도 뛰어내릴 수도 없다.
문밖에 있던 D에게 가이드 객실 번호를 알려주며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잠시 후 가이드가 와서 상황을 살피더니 호텔 직원을 데려온다. 문은 제대로 고장이 났는지 열리지 않는다. 가이드와 직원이 중국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무슨 4성 호텔이 이러냐고? 급기야 호텔 직원은 망치를 가져와서 열쇠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첫날엔 객실 전기가 나가고 씻는 도중 물이 안 나오더니 마지막 날엔 문이 고장 나서 갇히는 신세라니.
아침 여덟 시경 체크아웃을 하고 목단강 공항으로 이동했다. 버스 터미널 같은 목단강 공항은 흡사 시간여행자라도 된 느낌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들르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출발 시간은 11시 45분 비행기다. 환전한 돈이 많이 남았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학생들은 남은 위안화로 사탕이며 과자를 샀다. 나도 월병 몇 개를 구입했다.
오후 세 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여행 소감을 짧게 나눈 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4박 5일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목단강, 이도백하 백두산, 용정 대성중학교, 연변박물관, 연변대학교, 두만강 조중 국경지대, 동경성 상경 용천부의 발해 유적지, 그리고 다시 목단강.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경사진 역삼각형 구조의 여정이다. 여행 내내 버스만 탔는데 한반도 면적의 세배가 넘는, 만주 벌판의 한쪽 끝부분만 밟았다. 해외로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얼큰한 한국음식과 열리지 않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했을 뿐.
여행지가 민족의 애환이 서린 만주였던 탓일까?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여행 내내 설렘보다는 몸속에 무거운 주머니를 하나 들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주머니는 점점 무거워졌고 어디선가 풍선처럼 터뜨려야만 했다. 부모세대와 달리 빠르게 동화되어가는 조선족 청년들의 중국화. 통일시대를 대비한 조선족의 중국 내에서의 역할.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의 역사를 알고 교류를 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내 이야기 주머니는 가득 찼고 부풀어 오르던 풍선은 마침내 터진다.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