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장 생활... 처음 '출근길의 설렘'을 알았다

월급 적고 3개월 계약직이지만.... '공공근로의 맛'을 제대로 알았다

by 김인철

https://omn.kr/2hyb4


지난 23일 올해 1분기 공공근로 계약이 끝났다. 이곳에서 일한 기간은 약 3개월이었다. 짧지만 보람된 일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설레었고 일을 하는 동안도 즐거웠다. 2분기 공공근로도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선정되지 않았다. 작년 3분기부터 참여했으니 두 번 참여했기에 세 번째는 선정되기가 쉽지 않다. 공공 일자리인 만큼 보다 많은 분들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공공근로는 지난해 3분기에 처음 신청하고 참여했다. 궁금했다. 공공근로는 어떤 세상일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업무를 할까? 신청하려니 망설여졌다. 고민은 길었지만 선택은 한순간이었다. 공공근로를 해보니 이곳도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일하는 곳이었다. 수십년을 존재를 모른채 살아오다가 이곳에서 잠시 인연이 된 사람들이다. (백수로 지낸 지 1년 반 만에 공공근로를 시작했다https://omn.kr/2fe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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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미니 화단에 물주기 ⓒ 김인철


하루 5시간 근무에 급여는 최저시급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라 많지는 않았다. 한 달 급여는 약 120만 원 전후로 나와 같은 1인 가구가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일 자체는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다. 본업인 사회복지사 일을 할 때와 비교하면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고 일을 마친 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점도 좋았다.


폐기물 처리, 정원에 물주기


작년 3분기와 올해 1분기 공공근로를 두 번 참여 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다. 웃기지만 슬플 때도 있었고, 납득이 안가기도 하고, 업무 방식이 다른 동료들간에 버럭도 하는 등 갈등이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었다.


"내가, 나이가 칠십이 넘었어. 이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욕먹어가면서까지 일 못 하겠어.

"내가 언제 욕했어. 난 한 적 없어."

"그만둘 거야."


내일 당장 그만두겠다던 큰 형님을 달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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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폐기물 처리 민원이 들어오면 대형 공공용 쓰레기 봉투를 가지고 가서 봉투에 담은후 대로변이나 지정된 장소에 내놓으면 수거 차량이 가지고 간다 ⓒ 김인철


올 1분기 공공근로에 참여한 행복센터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3분기에 근무했던 곳보다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다. 1~2월은 얼어붙은 도로에 염화캄슘 뿌리는 작업 위주로 했다. 무단 폐기물 처리, 정원 물주기, 풀 뽑기, 우유 팩과 전단지 묶음 수량 확인, 강아지 배변 처리 등 다양한 민원을 처리했다. 가끔은 무단 폐기물과 함께 양심도 함께 버린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다. 민원이 없을 때는 동네 환경정비를 했다. 골목을 다니며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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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눈이내린 후 얼어버린 빙판길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있다. 특히 ?내가 올 1분기 공공근로로 참여한 지역은 경사진 언덕길이 많아서 곳곳에 염화칼슘을 뿌려야 했다. ⓒ 김인철


공공근로의 맛


지난 23일, 공공근로 마지막 날 담당 주무관이 고생했다며 점심을 사주었다. 식사하며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그동안의 소회를 짧게 나누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한 분이 공공근로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은퇴 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우울증 걸리고 무기력했는데, 이렇게라도 일을 할 수 있으니 월매나 좋아."

"그러게 말이에요."

"어떡해요. 공공근로의 맛을 알아버렸어요."


나도 그분의 말에 공감했다. 돌이켜 보니 지난 삼십 년 가까이 여러 곳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출근길이 설레거나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회사 앞에서 서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김치, 치즈, 스마일'을 몇 번 외치고서야 사무실 문을 열곤 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자기 암시였다. 그런데 두 차례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그런 스트레스나 압박이 없었다. 아침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공공근로의 맛을 알아버렸다.


본업에 대한 고민


내 본업은 사회복지사다. 아동 돌봄 영역은 내가 가장 오래 했고 잘할 수 있는 업무다. 사회에서의 이미지도 긍정적이다. 사회복지사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도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감정 소모가 크다. 클라이언트의 욕구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정 소모,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나이와 체력을 생각하면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더욱 현실적인 고민이 된다. 특히 이전 직장에서 겪었던 상사의 갑질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서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일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보스톤 다이나믹스의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나 테슬라의 옵티머스처럼 인간의 고유 영역이던 노동을 대체할 기술은 이미 눈앞까지 와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해 더 고민하고 그 영역을 넓히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소설은 나의 또 다른 자아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글을 쓴다는, 소설을 쓴다는 정체성과 자긍심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난 두 번의 공공근로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 하나를 쓸 생각이다. 일을 하면서 코미디와 스릴러, 서스펜스를 경험했다. 제목도 정해 두었다. 공공근로의 맛. 당분간 저 세계의 틈 속에서 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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