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뭐 별 건가
언니 이게 뭐야 물을 안 내렸어!!
어 안 내렸나? 니가 내려 난 지쳤어
이건 아니지
왜 그래 강아지똥처럼 귀엽게 조그맣구먼
에고 고생했네!
엄마 그래도 물 안 내리는 건 아니지
그건 잘못했네 확인 잘해야지
언니. 자랑스러워서 물을 안 내리고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웅웅 미안해
나도 곧 자랑해 줄게
그래 성공하렴
다음에는 꼭 확인하고 물 잘 내려줘
알겠어 미안
내적갈등이 극에 달한 날. 뭐 귀한 거라고 품고 있는 건지, 불편한 괴로움에 진저리 친다.
애들이 직장 다니면서 제때 못 먹고 화장실 가기도 바쁠 정도로 일에 치여서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며칠 동안 볼일을 제대로 못 봐서 고생이다.
밖에서 들어오다가도 급하면 화장실 비우라고 톡부터 날린다. 왜 비어 있을 때는 아무도 안 가고 꼭 누가 들어가면 가만히 있다가 후다닥 들어간다고 난리인 건지.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은 항상 눈치작전이다. 귀찮으면 서로 들어가라고 미루고 최대한 뭉기적거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로 들어간다고 난리다. 재미로 그러는 건가 에휴
우리 집에서는 볼일 잘 보는 것이 제일 잘한 일이다! 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됐다.
아빠 내가 오늘 똥 쌌어
응
아빠 똥 쌌어
그래
아빠 똥 쌌어
알았다니까
아빠 똥 쌌어
잘했어 자랑하는 거지?
아빠 똥 쌌어
알았어 잘했어
듣고 있던 둘째가 "아빠는 다 대꾸해 주네. 쟤 장난치는 건데"
막내의 말장난을 대꾸해 주는 아빠에게 둘째가 엄지 척을 한다. 눈치 빠른 나는 단칼에 '응 잘했어' 하고 잘랐는데, 착한 내편은 알면서도 막내의 장난을 잘도 맞추어 주고 둘은 주거니 받거니 즐긴다. 술도 주거니 받거니 운동하라는 잔소리도 주거니 받거니, 건강지킴이로써 잔소리하는 아빠와 딸은 역시 천생연분이로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보면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라!'라고 아이의 건강을 빌어주는 덕담을 해주었더랬다
이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기본적인 것인데도 잘 못싸는 심정이야 오죽 불편할까
직장을 다니면서 근무 중 불편하여 화장실도 제 때 못 가고, 아침은 바쁘다고 거르고 이래저래 장과 위는 안녕을 할 수가 없는 지경. 항상 기본이 걸러진 대가로 불편을 호소한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항상 기본이 바탕에 든든하게 깔려 있으면 틀어질 게 없다.
약도 먹이고 유산균도 먹이고, 뭐든 많이 먹고 밀어내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누운 소 통 누듯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속이 차 있으면 어찌 먹누
엄마 그래도 배는 고파. 고픈데 입맛이 없어! 많이 먹는 건 힘들어. 근데 또 많이 먹게 돼
그러니까 비워야 하는데, 차있으니 더 힘이 드는 거지 어쩌냐
하루가 멀다 하고 나누는 대화는 오늘 볼일 잘 봤니? 였다.
내적 갈등을 밀어내려 버티는 화장실에서의 고독한 사투는 대신해 줄수도 없고, 맥없이 진땀만 흘리다가 항복하고 허탈하게 나오는 걸 보면 괜히 짠해진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에서는 똥 눈 걸 자랑하고 칭찬한다.
냄새나! 하면서도 깔깔거리고 웃는다.
오늘도 똥얘기로 집안이 떠들썩하다.
위와 장이 약하다. 하필 이런 안 좋은 것을 물려주어 미안하여 괜스레 '이제 속 편한가!'하고 위와 장의 안부를 묻고, 별일 없이 지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마음에 담고 안도한다.
오늘도 나는 속을 편하게 해주는 양질의 음식으로 아이들 위와 장을 AS 해준다.
* 무슨 일을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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