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게 포상휴가를 준다

오늘의 시간만은 내 마음대로 천천히 흘리겠다

by 그리여

연휴 내내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손님을 치르고 숨 쉴 새도 없이 반복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명절을 보냈더랬다. 즐거웠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명절이 아니었고, 일하느라 지쳐서 몸이 고단하였었다. 시간이 흐르고 반백이 넘어서 이제야 명절이 즐거운 날이 되었다.

명절이 길어서 장을 보고 잠시 쉬고, 음식을 하고 휴식을 하고, 이렇게 여유롭게 설날 준비를 한다. 예전 같으면 꿈도 꿀 수 없었던 명절준비였다.


예쁜 딸이 만두도 예쁘게 빚는다고 내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예쁘게 빚은 만두와 찰랑찰랑하게 쑨 묵을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며 먹는 즐거움을 같이 했다.



시간 맞추기 힘든 아이들이 발 탈출을 하자고 했다.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는 남편이 고마웠다. 방탈출을 하려면 강남대로를 탈출해야 하는 한다는 걸 알지 못하였기에 조급함에 맘이 쫄리기도 했다. 강남대로가 이렇게 막힐 줄 예상하지 못했다.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야 하고, 15분 이상 지각하면 환불 없이 취소가 되기 때문이다. 첫째가 먼저 도착하여 접수를 하고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강남대로를 탈출하였다.

어렵게 도착하여 방탈출하러 들어갔는데 게임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리바리 문제를 찾고 게임방식을 인지하기도 전에 시작한지라 적응하는 동안 힌트를 찾아보고, 그렇게 가족들이 분주하게 탈출을 위한 문제를 풀었다. 처음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즐긴 게임이라 이 시간이 무척 즐거웠고, 방탈출을 무사히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동안 명절마다 일속에 파묻혀 탈출하지 못했던 날들이 생각나며 명절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2026년 넓고 풍요한 하나의 산을 넘었다. 설날이 지나면 봄이 오고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급한 시간의 흐름을 잡아두고픈 충동이 일기도 한다.

설날이 다가옴을 인지하기도 전에 아프고, 넘기고도 아프고, 오랜 시간 습관처럼 길들여졌던 행동들이 통증이라는 경고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된다. 장거리를 달려서 시골을 다녀오고, 알차게 명절을 보낸 뒤에 오는 몸의 고단함과 끊어질 듯 아픈 허리는 아마도 시간의 무게겠지


일상으로 돌아온 나와 둘째는 내일의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서로에게 포상휴가를 주기로 했다.

남들과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는 시간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느긋하게 하루를 붙잡아두고, 서로에게 한가해도 된다는 사인을 받고 충분한 시간을 선사한다.


청량리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았더니 가평이란다. 하마터면 내리지 못하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내려서 아침밥을 먹으러 딸이 맛집이라고 검색해 둔 곳으로 갔다.

시골은 아침 일찍 가면 문 연 곳이 없어서 밥집 찾기가 싶지 않아서 힘든데 다행히 열린 집이 있다고 좋아하면서 들어갔는데, "오늘까지 쉬어요 죄송해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문은 왜 열어놓으신 거지 하면서 둘째와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곳을 찾고 있는데, 주인이 문을 열고 아침밥 드시려고 그러시냐고 물어보더니 조금 더 내려가면 문 연 집이 있을 거라고 알려 준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남이섬까지 200m 정도라고 하니 걸어가다가 문 열은 집이 있으면 들어가기로 하고, 차갑고 상큼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걸었다. 쿨럭 기침이 나온다. 이런 아직도 몸이 성치가 않군.


"엄마 나 이런 상상을 했어, 우리 둘이 아침밥을 못 먹고 섬에 들어갔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굶는 거야 으으"

"뭐 그런 상상을 해. 관광지라 하다못해 군것질거리라도 있겠지. 비싸겠지만"


문 연 집이 있어 물어보니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니 락스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음식을 시켜 먹는다. 그렇게 무사히 굶지 않고 남이섬에 들어갔다.


평일인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물론 거의 관광객이라 우리가 되려 남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딸은 먼저 검색해 둔 곳을 하나씩 가보자고 했다. 여기저기 단장하느라 통제된 곳이 있어서 아쉬웠다. 제일가고 싶었던 곳이 아쉽게도 새롭게 정비 중이라 못 들어가고, 그림 전시와 흙으로 빚은 예술품들을 관람하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가다가 보니 토끼가 여기저기서 먹이를 먹고 있는데 딸은 자연친화적인 곳이구나! 하고 좋아했다. 토끼 먹이도 주고 느긋하게 걸으며 마음껏 하루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휴식이 목적이었기에 피곤한 몸을 쉬기로 하고, 북카페를 찾아들어가서 풍경을 감상하면서 글도 보고 딸은 숙면을 취했다.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 이런 시간을 가지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우린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공작과 오리와 토끼들이 가는 곳마다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아한 공작이 최면을 접어두고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질 간식을 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강가와 나무밑을 걸으며 우린 조용히 손을 잡고 걸었다. 토끼가 또다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서 한참을 보다가 다시 걷는다.

섬에서 빠져나오고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돌아오며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포상휴가에 만족했다.


이런 명절연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명절문화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힘이 들더라도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명절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더니 허리통증도 나아졌고, 이제 또 일상을 바쁘게 살아갈 몸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내 몸아! 오늘도 수고했어 또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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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딸 #공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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