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식생활의 러시안 룰렛

강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by 사과나무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식생활은 스릴 넘친다. 지뢰밭을 겉는 기분이랄까. 6연발 리볼버에 총알을 3개쯤 넣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먹을거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든, 마트에서든 매한가지다. 이곳에서 한국 기준의 식품 위생이나 안전 수준을 고수한다면,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홧병이 나서 죽거나, 굶어 죽거나.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거리 위생과 안전에 대해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다가스카르 초심자들의 통과의례는 배앓이다.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다. 미세 모래가 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노후화된 수도관 문제가 더 크다. 집에서야 생수를 사서 쓰면 된다지만, 식당은 수질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식당을 찾은 초심자들에게 샐러드 같은 생식을 피하도록 권한다. 하지만 배앓이쯤은 험지의 성인식 같은 것이라,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 수질에도 적응을 한다. 일반 식당에서 뭘 먹어도 괜찮은 수준이 되었다면, 축하할 일이다. 초심자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뜻이니까.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해도, 완벽한 안전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마트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 식품들이 즐비하다. 마다가스카르는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나라다. 게다가 오지게 큰 땅덩어리(한국의 6배)에 비해 도로 수준은 열악하여, 육로 이동이 고행 수준이다. 유통에 있어서는 최악의 구조라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차를 타고, 이 더운 날씨를 헤치며 마트에 도착한 상품들에는 그 피로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은 당연한 일.


비스켓 봉지를 열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바삭함이 생명인 과자는 눅지지 않았기를 기도하고, 초코는 하얗게 분리되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기도는 가끔은 승인, 가끔은 기각된다. 그럴 때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돈을 걸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만 같다. 언젠가 비닐 없이 상자에 담긴 프랑스산 압착 오트밀을 샀을 때는 무슨 마술쇼를 하는 줄 알았다. 뚜껑을 열자 나방들이 푸스스 날아올랐다. 오트밀 속에서 부화한 애벌레들이 성체가 된 듯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마술쇼를 겪다보면, 당첨 확률이 낮은 식품과 높은 식품을 구분하게 된다. 감자칩이나 나초칩은 성공 확률이 99%에 가깝지만, 초코가 발린 과자는 65% 이상의 확률로 하얗게 분리되어 있다. 퍼먹는 아이스크림은 70%의 확률로 얼음이 서걱거리고, 맛살이나 잠봉은 약 50%의 확률로 끈적거린다. 병아리콩은 대부분 성공이지만, 좀먹은 곳이 많아 꼼꼼히 골라내야 하고, 5%의 확률로 파스타에 정체 모를 까만 벌레들이 부화해 있다.


수입 제품이 아닌, 현지 생산 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마트에서 두부와 숙주를 사지 않는다. 이건 100%의 확률로 포장을 벗기자마자 쉰내가 풀풀 난다. 진실로, 단 한 번도, 상하지 않은 제품을 사 본적이 없다. 6연발 리볼버에 6개 탄창이 다 들어있는 건 솔직히 사기 아니냐고 처음엔 분개했지만, 점차 포기하게 되었다. 지저분한 계란이나 시커먼 털이 박혀있는 삼겹살, 씻어도 씻어도 끝도 없이 까만 벌레가 나오는 브로콜리 같은 것에도 더 이상 화내지 않는다.


가끔 한국에 돌아가 마트에 갈 때면, 100% 당첨을 확신하며 장을 보는 사람들이 경이로워 보인다. 무엇을 집어 들든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 위에서 사람들은 당연스레 일상을 이어간다. 이 당연함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 깨달았다. 다행인 건 이 식생활의 러시안 룰렛 게임에서 패배를 거듭할수록, 위생과 질병에 대한 면역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건 불행일까, 행운일까. 안전망 없는 식탁 위, 당첨을 기도하며 오늘도 나는 방아쇠를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