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83]사주팔자나 운명이 있나요?
* 즉문즉설은 질문자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한 대화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질문자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작년에 건강 문제로 갑자기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어머니가 점을 봤더니 제가 그때쯤에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껏 점 같은 데 의지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사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게 인생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삶의 신조가 흔들리고 한 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앞길이 답답하다 보니 저도 거기서 점을 보게 됐습니다. 제 사주가 공무원에 잘 맞고 꼭 합격할 거라고 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사주팔자나 운명이 정말 있나 싶고 혼란스럽습니다.
인생이 정해진 운명대로만 살아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네. 혼란스러우시군요. 한 번 살펴봅시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코끼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면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고, 꼬리만 만져보면 빗자루 같이 생겼다고 하고, 코만 만져보면 뱀처럼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 모든 말이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지요? 이렇게 세상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고 전해 내려온 풍습이나 이념이 있다면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가 없었겠죠.
가변성 있는 삶
일리가 있다고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 30분쯤 이야기하는 동안 그 사람이 담배를 3대 피웠습니다. 제가 그에게 “어제도 담배 피웠죠?”라고 물었다면 그 말이 맞을 확률은 거의 100%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내일도 담배를 피울 겁니다.” 했다면 그 말은 얼마나 맞을까요? 99% 맞으리라 예상할 수는 있지만 100%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로 담배를 끊을 수도 있고,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하루 정도는 안 피울 수도 있으니까요. 삶에는 가변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미래는 100%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정해진 운명대로만 살아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필연과 우연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의 말처럼 인생이 언제나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은 크고 길게 보면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움직입니다. 순간순간의 짧은 시간만을 보면 우연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고 다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필연론보다는 약간의 가변성,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편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하겠죠.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자세는 노력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결과는 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질문자가 기독교 신자라면, 모든 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니 매사가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믿어야하겠죠. 내가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고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시험에 붙는 게 좋은 일이면 붙게 해줄 거고 시험에 떨어지는 게 좋은 일이면 떨어지게 해줄 겁니다. 그래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지요? 지금 당장 시험에 붙는 게 나와 세상에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니까요. 같은 이치를 불교적으로는 ‘다만 인연을 따른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믿음은 서로 다를 뿐
물론 점을 보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질문자도 공무원시험을 보면 꼭 합격한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지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일종의 심리적인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아들을 위해 굿을 하는데 무당이 물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건져내어 태우면서 아들의 영혼이 물속에서 나와 천당으로 갔다고 하면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부모 마음에는 훨씬 위로가 됩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요.
어쩌다 한 번 신년 운세 보고 위안 삼는 정도는 큰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100% 믿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어요.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논할 게 아니라 다만 그 믿음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늘을 믿든 나무를 믿든 돌멩이를 믿든, 믿음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진위를 따질 수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노력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결과는 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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