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오늘은 입춘입니다.
예로부터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 해서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봄날 같은 좋은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입춘은 설날과 날짜가 거의 비슷합니다. 입춘 전후로 설이 있지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이라고 하는데 입춘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봄이 오는 입구에 있다는 말이지요.
사실 불교와 입춘 기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다른 종교에 서는 입춘 기도를 하지 않는데 왜 불가에서는 불교의 정통 문화가 아닌데도 입춘 기도를 하는 걸까요. 이것은 24절기 가운데 입춘과 동지는 계절적 절기를 표시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가 수행의 관점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입춘과 동지에 기도를 합니다.
인연과의 법칙에서 인과 연이 만나서 과가 나타나는 시기는 각기 다릅니다. 즉시 나타나는 것도 있고, 한 시간 후에 나 타나는 것도 있고, 한 달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1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10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50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또 이번 생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다음 생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다섯 생이 지난 뒤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열 생 뒤에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받는 것 중에 는 지금 내가 한 생각 잘못해서 받는 것도 있고 내 조상이 잘못해서 받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갖가지 어려움이 닥쳐도 이것은 다 옛날에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
빚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면 바로 쓸 수 있지만 빚이 있는 사람은 일단 빚부터 갚아야겠지요. 열심히 일해 봐야 빚쟁이들이 다 가져가 버립니다.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사라지니 이걸 뭐 때문에 하느냐 싶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빚쟁이로 살아 야 합니다. 인연 과보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내가 빚이 있어 갚는 중이라는 것을 압니다. 빚은 빨리 갚을수록 좋다는 걸 아니 지금 내 상황이 더없이 좋은 것임을 압니다.
이렇게 빚을 갚는 기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 조금 나아진 걸 느끼게 됩니다. 그때가 절기로 말하자면 입춘입니다. 아직 따뜻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추워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추위는 있지만 견딜 만한 겁니다.
이렇게 봄의 문턱에 들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입춘은 기도로 치면 기도를 시작한 지 100일쯤 지났을 때와 같습니다. 보통 100일쯤 기도하면 자기에 대해 조금 알게 됩니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삶이 변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입춘입니다. 입춘이 오면 이제 한겨울이 지나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꽃샘추위가 오지만 이미 온 봄을 꽃샘추위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수행에서도 뭔가 한 번 큰 고비를 넘어가면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는 않는 경지가 있습니다. 이런 단계를 수행의 계위로는 수다원須陀洹에 이른다고 합니다. 해탈의 길에 이미 들어왔다는 말이지요. 입춘은 어떤 면에서는 깨달음의 길에서 수다원에 든 것 과 같습니다.
그래서 입춘을 맞은 수행자는 입춘처럼 되기를 기원하며 기도를 하는 겁니다. 설령 앞으로 재앙이 오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아직은 추위가 남아 있지만 따뜻함이 온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입춘이 지나면 비가 한 번씩 올 때마다 얼음이 녹습니다. 입춘 뒤에 내리는 비가 구석진 곳의 눈을 녹이듯, 고비를 넘긴 수행자는 그 뒤로는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도리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입춘을 지난 수행자는 비록 화를 내고 실수를 해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수행이 덜 되었구나 해서 발심하는 계기가 됩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포기를 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크게 정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입춘 기도는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다잡는 정진의 계기가 되는 기도입니다.
입춘이 오면 이제 한겨울이 지나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꽃샘추위가 오지만
이미 온 봄을 꽃샘추위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고비를 넘긴 수행자는 그 뒤로는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도리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고비를 넘긴 수행자는 그 뒤로는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도리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고비를 넘긴 수행자는 그 뒤로는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도리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법륜스님 날마다 새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