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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Feb 13. 2019

복을 빌면 안 되나요_법륜스님 즉문즉설

84화

복을 빌면
안 되나요



신앙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희 집안은 다 기독교인데 저 혼자 절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한테 빌면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고, 가족들이 강요하는 것도 싫어서 교회에서 등을 돌렸어요. 그런데 저 역시 염원이 있으면 부처님께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런 기복적인 면이 불교 이치상 어긋난다고 아까 말씀하셔서 지금 혼란스럽습니다. 


“이치로 따지면 기복신앙은 기독교나 불교의 가르침에 다 어긋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복을 받고 싶어 해요. 남의 복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나 부처님께 복 달란다고 해서 복을 주는지 안 주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그걸 굳이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복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인연과보의 법칙’에도 어긋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복을 받으려 들기보다는 복을 지어야 해요. 원래 기독교 가르침에 따르면 복을 짓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아야죠. 좋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대가로 받은 상은 작지만, 천국에 가서 받은 상은 매우 크다고 하잖아요. 이 말의 핵심은 복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에 있지 않아요. 좋은 일을 하고도 이 세상에서 칭찬받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서 나중에 천국에 오면 큰 상을 내릴 테니 이 세상에서 작은 칭찬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와 같아요. ‘내가 복을 짓고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다’ 이걸 무루복無漏福이라고 합니다. 표현 방법이 좀 다를 뿐 가르침의 내용은 같아요. 

복 달라고 빌면서 부르는 이름만 부처님,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 사람의 심리는 똑같아요. 그러니 복 빌려고 굳이 교회 다니다 절에 올 필요가 있겠어요? 개인적으로 교회가 싫어서 절에 오는 것은 괜찮지만, 와놓고 하는 행동이 똑같다면 굳이 올 필요가 없잖아요.(청중 웃음) 


‘하나님, 복 주세요’, ‘부처님, 복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사람들은 되면 ‘가피 입었다’, ‘은혜 입었다’ 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면 ‘기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믿어봐야 소용 없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 신앙을 스스로 부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나를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 부리듯이 부리려드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내놔라, 안 내놓으면 너를 안 믿겠다,’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복을 비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속내를 살펴보면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독교 신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 속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죠. 


감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복을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이미 받았기 때문에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복을 한량없이 받은 거예요. 


이미 복을 받았으니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감사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분은 모든 걸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 마음도 이미 다 아시거든요. 


성경에, ‘기도할 때 은밀히 하라’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이크 대놓고 큰 소리로 기도해요. 그분이 전지전능하다는 걸 못 믿어서 조목조목 이야기 안 하면 잊어버리고,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나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그러나 그분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전지한 분이시잖아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눈이 천 개라서 다 보시고, 손이 천 개라서 다 구제하십니다.(청중 웃음) 


그런 분이 왜 내 요구를 안 들어주실까요? 쥐가 쥐약 든 고구마를 먹고 싶어 안달하는데, 입이 안 닿아서 ‘하나님, 부처님, 이거 좀 먹게 해 주세요’ 하고 빌면 저렇게 간절히 원하니까 먹도록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때로는 안 이루어지는 편이 좋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간절히 빌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결혼 생활로 골치 아프고, 간절히 빌어서 애 낳았는데 지금 애 때문에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기도할 때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보셔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나으면 그리 해주시고, 안 이루어지는 게 나으면 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도 감사하고 안 이루어져도 감사하니 신앙에 어긋날 이유가 없어요. 절과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전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게 신앙 고백이에요. 질문자도 교회 가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든지, 절에 가서 절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계속 행복해지고 고민도 줄어듭니다. 문화가 달라서 나는 교회보다 절이 좋다. 이런 건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교회는 사랑이라고들 말하는데 겪어보니 이중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서 싫어요.” 


“절에 가도 마찬가지예요.”(청중 웃음) 


“하나님의 가르침이 거짓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한다는 하나님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신자들을 불에 던져버리는 이야기를 듣고 환멸을 느꼈어요. 그 신이 과연 자비의 신인가 의문이 계속 들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믿는 종교가 불교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힌두교이고, 기독교라 하지만 대부분은 유대교에 가깝습니다. 질문자가 다닌 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일 뿐 유대교라고 생각하면 돼요.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천당에 갔을 때 스님도 와 있다면 반가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교도가 여기 어떻게 왔지? 안 믿어도 오는데 괜히 믿었나?’ 이러기 쉽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천국에서 저를 만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교도도 구원하시니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청중 웃음) 


크리스천들과 기독교가 그리 못 하는 건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원래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해요. 그러나 이건 인간의 문제이지,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문제는 아니에요. 예컨대 시어머니가 절에 지극정성으로 다니면서 정작 며느리 대하는 건 형편없다면 그 며느리는 절에 안 다닙니다. 반발심으로 교회에 가버려요. 질문자는 가족들이 교회에 극성이면서 실제 말이나 행동은 다른 걸 보고 실망했잖아요. 그건 인간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십니다. 질문자가 절에 좀 다닌다고 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벌주시지는 않아요. 


옛날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했어요. ‘스님, 하나 물어볼게요. 제가 고3손녀딸 때문에 입시 합격 기도를 하 는데 기도 성취가 안 될 것 같아요. 손녀딸이 사실은 교회에 다니거든요.’(청중 웃음)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아무렴 할머니 마음 같을까요?’ 고등학생이 교회 좀 다닌다고 해서 붙을 시험도 떨어지게 만드는 건 부처님이 아니에요. 그러면 대자대비하시다는 표현을 안 써야죠. 그러니 교회에 다니든 절에 다니든 그런 거 걱정하지 마시고, 질문자가 열심히 기도만 하세요.” 


“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복을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복을 한량없이 받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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