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 “황혼 재혼을 준비 중입니다. 곧 할 것 같은데요. 스님 보시기에 앞으로 재혼해서 같이 살 때 제일 중요한 점이 무엇일까요?”
법륜스님 “질문자의 자녀는 결혼을 했습니까? 아직 안했습니까?”
“애들은 결혼 적령기고 상대도 있습니다.”
“자녀들은 언제쯤 결혼 할 계획인가요?”
“하기는 할 건데 당장 빠듯하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대도 그런 생각이고 직장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상황 되는대로 하려나 봐요.”
“재혼할 상대의 자녀들은 다 결혼 했어요?”
“상대방도 자녀가 둘 있는데요. 제 자식과 거의 똑같아요. 직장은 좋은데 결혼을 아직 못했습니다.”
첫째 ,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 이것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서로 요구가 너무 많으면 안 돼요. 첫 결혼 때는 내 남편, 내 부인한테 ‘이래라, 저래라’ 합니다. 부인도 남편한테 요구가 너무 많고, 남편도 부인한테 요구가 너무 많아요.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서로 요구가 너무 많아서 그래요. 사실 서로에게 요구가 없으면 다툴 일이 없어요.
그렇게 또 요구하는 관점을 가지고 재혼을 하면 실패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각자의 생활을 인정하고, 공동의 생활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한테 ‘나를 자유롭게 살도록 놔둬라’ 하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자유를 속박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혼이 아니라 ‘졸혼(卒婚)’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어요. 이혼은 헤어지는 것이고, 졸혼은 ‘결혼을 졸업한다’라는 것입니다.(모두 웃음)
나이가 들어서 퇴직을 했는데도 아내는 남편만, 남편은 아내만 보고 사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는 거예요. 이제 늙어서 각자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취향도 살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꼭 다른 여자나 남자를 만나자는 게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서로를 너무 옭아매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요즘 한국 남자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은퇴하면 시골 가서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하는데, 부인은 시골로 가고 싶지 않거든요. 시골 가면 고생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시설도 없는데다가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남편은 가고 싶어 하고, 부인은 절대로 안 가려 해서 갈등이 많습니다. 부인은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배운다든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든지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두 사람이 합의해서 ‘결혼을 졸업’하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은 고향에서 전원 생활하면서 농사짓고 싶으면 농사짓고, 부인은 도시에 있고 싶으면 있으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든지, 두 달에 일주일씩 같이 지내든지 하는 방식으로 협의합니다.
이렇게 각자 자기 일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하는 것을 ‘졸혼’이라 한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렇게 하고 싶은가요? (모두 웃음)
또, 프랑스의 경우가 있어요.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할 때 재산을 반드시 반반씩 나눠야 합니다. 결혼의 의무를 법률적으로 너무 강하게 만들어 놓으니까 서로 헤어지고 싶을 때 두 사람의 의사로 헤어지지 못해요. 원래 법이란 결혼한 당사자들을 보호하려고 만든 것인데 법률적인 제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현재 결혼하려는 사람의 절반이 ‘계약 결혼’이라는 형태를 선호합니다.
‘계약 결혼’이란 이 사람하고 조금 살다가 저 사람하고 조금 산다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살다가 서로 합의해서 헤어질 때, 법에서 정해놓은 기준으로 다투지 말자, 법정 투쟁하지 말자고 합의하는 거예요. ‘서로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헤어지자.’라는 겁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조차도 계약 결혼했다는 사실은 다 아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계약 결혼한 가정이 일반 우리들의 가정과 다를까요? 똑같습니다. 계약결혼한 부부도 애들 키우고 여느 가족처럼 살아요.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에 의해서 가족을 유지하는 겁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한국의 결혼 풍속은 서로 상대를 너무 조이고 속박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는 그런 속에서도 밖에서 자유롭게 살며 답답한 걸 풀지요. 여자는 꼼짝 못하게 묶어 놓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개선이 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게 필요하지만, 가능한 이제는 꽉 조여 맨 속박의 끈을 조금 풀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황혼 재혼을 한다고 할 때, 기존의 결혼 풍속과 같은 생각으로 결혼 한다면 그건 시대에도 안 맞고 두 사람에게도 안 맞습니다. 공통분모는 최소한으로 두고, 거의 친구 수준으로 생각하여 각자 자유를 인정하는 관점을 가져야 재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 자녀들하고 먼저 얘기해서 교통정리 하기
두 번째는 재혼을 권유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가족들의 관계가 좀 복잡해진다는 겁니다. 이게 제일 문제예요. 아버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고, 어머니 아닌 사람을 어머니라 불러야 하지요. 어머니도 둘이고 아버지도 둘이에요. 또 일가친척의 관계도 있는데, 이렇게 현실에서는 고려할 것이 많이 생겨서 좀 복잡합니다.
제가 질문자에게 자녀들이 결혼했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결혼식 할 때, 부모 석에 누가 앉아야 하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즉문즉설에서 ‘부모님이 재혼하셨는데, 저희 결혼식에는 생모를 모셔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되어서 결혼식하기 괴롭습니다.’ 하는 청년들의 질문이 많습니다.”
“저희 자식도 그 경우는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생모를 앉히겠다고 하니까 양모는 ‘어릴 때부터 내가 너희를 키웠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 그 여자가 앉느냐? 그 여자는 낳은 거 밖에 더 했나.’ 하고, 또 생모는 ‘내가 널 낳아 내 품에서 젖 먹여가며 키웠는데 적어도 결혼식 할 때는 엄마노릇 해야 하지 않나’ 하니 정작 아이들은 갈등이 되어서 결혼식을 안 하겠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사전에 자녀들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합의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가 스무 살이 넘었으면 부모가 재혼하는 것에 대해서 자녀의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스무 살 이하일 때는 재혼에 대해서 반드시 자녀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자녀가 스무 살이 넘으면 굳이 자녀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자녀들과 합의하지 않으면 부모 자식 사이가 멀어지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복잡한 게 많아지거든요.
재혼을 할 때도 반드시 자녀들하고 먼저 이야기해서 교통정리를 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죽으면 무덤은 ‘원래 남편 옆으로 한다’ 라든지, 아이들 결혼식에는 ‘원래 부부가 간다’ 라든지 교통정리를 해야 합니다.
자녀가 커서는 괜찮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재혼하여 같이 살게 되면, 남편의 입장에서는 재혼한 아내가 자기 자식을 더 편애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섭섭해집니다. 애들이 불만하면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 친엄마한테 애들이 이르면 친엄마가 전화를 해서 또 뭐라 그러지요.
황혼 결혼을 하면 아무리 두 부부가 친해도 내 자식보다 다음 순위가 되지요. 자식이 더 우선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서로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자식과 부부사이의 관계가 갈등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 전 남편 전 아내 질투하지 않기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상대가 상대의 전 남편, 혹은 전 아내와 연락하는 것에 대해 질투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혹시 원래 같이 살았던 사람이니까 괜히 긴장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다보면 나중에 머리가 너무 아파집니다. 그래서 결혼할 아내, 남편이 전 아내, 전 남편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 남편, 전 아내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엄마이고, 내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마음에 의심을 품거나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세 가지 정도를 질문자가 검토해 보세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재혼하지 말고 친구로 지내세요. 엄마 친구, 아빠 친구, 그러니까 남친, 여친으로 지내도 괜찮아요.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재혼을 하면 재혼에 성공합니다. 첫 결혼이 시끄러웠던 것은 처음 해 봐서 여러 가지 실수가 있었지만 이젠 한 번 해봤으니까 실수 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잘 조절해서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