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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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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Jun 26. 2018

[법륜스님 즉문즉설] "남편이 자살했어요."

* 즉문즉설은 질문자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한 대화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질문자 “제 질문이 좀 무거운데요.”


법륜스님 “네.”

“지난달에 남편이 자살했습니다. 2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다가 작년 여름에 이혼하고, 저는 아이들과 살고, 남편은 혼자 살았어요. 남편은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려졌고 길러준 엄마에게 아동학대를 받고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그 외로움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발전되어서 만취한 날이면 남편은 어린 자녀들과 저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남편이 자살하기 3일 전에 서로 오해가 있어서 길에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서 중재했는데, 그게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3일 동안 매일 30통이 넘는 전화를 받으면서 정말 미친 듯이 싸웠습니다. 저는 ‘오해다. 미안하다’며 계속 빌고, 달래고, 얼렀는데도 남편은 분노해서는 ‘죽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늘 죽겠다는 소리를 했기 때문에 저는 그날도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 날 찾아갔더니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습니다. 3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아프다, 힘들다, 안아달라’고 했던 그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와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끝날 일’이라고 모질게 말했던 제 말이 귀를 맴돌아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도 돼요?”


“네.”


“그동안 애먹이다가 죽었으니까 속이 시원해야지요.”


“......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요.”


“불쌍하긴 불쌍하지요. 자라온 가정환경이나 이런, 저런 걸 생각하면 불쌍한 건 맞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그 ‘불쌍하다’는 마음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아, 저게 병이다. 정신질환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면 조금 더 같이 갈 수 있었겠지만, 질문자가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닌데, 질문자한테 그걸 요구할 순 없잖아요.


또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나한테 잘해 주면 좋고, 나한테 못하면 싫은, 그냥 세상의 보통 사람이란 말이에요. 남편한테 사랑받고 싶고, 남편한테 경제적으로 도움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데, 거꾸로 남편이 나한테 의지하고, 술 마시고 와서 행패 부리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니까 질문자도 삶이 힘들었단 말이에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남의 집 큰아들까지 내 아이처럼 키울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질문자가 자신을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에 기준을 두고 본다면 질문자는 성인이기에는 좀 부족한 사람이 맞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질문자가 그 이상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아니고, 약을 먹여서 죽인 것도 아니고, 떠밀어서 죽인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그랬다면 질문자는 잘못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니까 질문자도 악을 쓰고 말대꾸를 했는데 결국 남편이 가서 스스로 죽었다는 건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래서 질문자는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 예, 감사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오는 문제라는 거예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남편이 살아 돌아와서 다시 이전과 같은 생활이 반복된다면 질문자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못 견딜 것 같아요.”



남편이 자살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고 병 때문이지요. 


“질문자가 ‘잘했다’고 할 건 아니지만, 질문자도 그 이상 할 수는 없었던 일이에요. 그래서 질문자가 죄의식을 가질 건 아니에요. 그리고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은 특별한 병원치료를 받지 않으면 대부분 자살로 끝이 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자살하는 사람이 2016년 통계로 하루에 36명입니다. 매일매일 36명이 자살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조기 발견해서 조기에 치료하면 확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가입국 평균의 2.5배거든요. 자살률이 낮은 나라에 비해서는 5배, 10배도 될 수 있겠지요.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건 치료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우울증이 많이 발병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들 중에서 우울증 치료약 소비가 10분의 1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치료를 안 한다는 겁니다.”


“알코올중독을 위한 치료도 시도해 봤는데 남편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다니지를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난 거지요. 그래서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은 게 안타까운 건 이해가 되는데, 그게 적어도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예요. 병 때문이지요. 질문자는 지금 ‘남편이 좀 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도록 했더라면, 남편을 좀 더 포용해 줬더라면, 남편이 그런 말을 할 때 내가 좀 더 안아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맞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그 정도로 성인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재의 자기 수준에서는 지금 또 같은 일이 벌어져도 예전과 같은 대응밖에 못 할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고, 이 세상,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수준이에요. 그래도 알코올중독에 우울증인 남편한테 가정폭력 당하면서 20년 살았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아이들은 몇이에요?”


“둘이에요.”


“그런 중에 애를 둘이나 낳아 키웠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 자신을 조금이라도 학대하거나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돌아간 건 안타까운 일인 건 맞지만 질문자가 그 이상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예요. 20년 같이 산 것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여보, 건강 때문에 그동안 참 고생 많이 했지요. 이제 저 세상에 가서는 알코올 중독이니 우울증이니 어릴 때 받은 상처로 고생하지 마시고 편안히 행복하게 사세요. 안녕히 가세요. 두 아이는 제가 당신 몫까지 해서 잘 키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곳으로 가셨다가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사세요.’ 알았지요?”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이 여자분이 죄의식을 갖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남편에 대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그래! 당신은 죽었으니까 산 나는 아이들 데리고 잘 살아야지!’ 이렇게 씩씩하게 키우는 게 남편에 대한 사랑일까요?”


(대중들) "씩씩하게 살아야 해요.”


“남편이 자살했더라도 남은 아내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예. 그런데 여러분들은 괴로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같아요. ‘애가 이래서, 남편이 저래서, 누가 죽어서, 이래서, 저래서......’ 라고 하는데, 제가 듣기에는 ‘괴롭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요.(모두 웃음) 그렇게 생각하시면 죽을 때까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뭐할 권리가 있습니까?”


(대중들) "행복할 권리.”


“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행복할 권리가?”


(대중들) "있어요.”


“예,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픈 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은 행복해야지요. 몸도 아픈데 거기 끌려가서 마음마저 괴로우면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니까 손해잖아요. 여러분들이 돈을 빌려줬다가 못 받으면, 받을 수 있으면 악착같이 받고, 돈이 없어서 못 받겠다 싶으면 포기를 해야 해요. 돈은 잃었지만, 사람은 안 잃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사람과 관계를 터놓아야 나중에라도 받을 기회가 있을 것 아니에요. 돈은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가서 악을 써서 원수가 돼버리면 돈도 못 받고, 사람까지 잃게 되잖아요. 그러는 게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지혜롭지 못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늘 남 핑계 대고 괴롭게 사는 걸 합리화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런 데에 이제부터는 연연하지 말고 행복하게 사세요. 그게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에요.


이런 공부를 하는 곳이 ‘행복학교’입니다. 행복학교에 오시면 4주 동안 4번만 공부하시면 ‘관점 바꾸기’가 됩니다. 관점을 딱 바꾸면 훨씬 좋아져요. 그러다가 재미가 있으면 또 한 번 더해 보고, 그렇게 하셔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원본] https://goo.gl/6EFzby 2018.5.8. 행복한 대화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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