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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Oct 01. 2018

나는 어디서 왔을까?_법륜스님 즉문즉설

"하늘이 열린 날” 


오늘은 우리나라가 처음 시작된 날인 ‘개천절’입니다. 개천절을 맞이해 오늘은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추적해서 올라가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상해 임시정부에서 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그럼 대한제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청의 속국인 상태에서 자주독립임을 선포할 때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바꾼 것입니다. 그럼 조선왕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조선왕조는 나라를 새로 세운 것이 아니에요. 역성혁명, 즉 왕의 성만 바꾸어서 고려에서 조선으로 개명을 한 것입니다. 


그럼 고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려를 창건한 세력들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건국을 했습니다. 그럼 고구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구려를 창시한 주몽이 자신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한 점을 보면 부여를 계승한 것입니다. 이것은 광개토대왕비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부여를 건국한 해모수는 ‘나는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은 자신이 환웅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배달나라를 건국한 환웅은 ‘나는 환인의 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환인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 위로는 역사기록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시원은 ‘한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인’입니다. 그 다음은 ‘배달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웅’입니다. 그다음은 ‘조선 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단군’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작을 ‘한나라’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문명이 발달한 한나라가 있었는데, 한나라 왕의 아들 중에 한 명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해서 그곳의 토착세력과 결합해 세운 새 나라가 배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뿌리인 원시조는 환인의 ‘한나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거기서 3천 명이 떠나와서 토착세력과 어울러가면서 세운 나라가 배달나라이기 때문에 이것이 ‘신시 개천’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달나라가 우리나라의 첫 번째 나라라고 볼 수 있고, 그 뿌리가 한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주해 온 세력과 토착 세력이 결혼해서 낳은 단군이 왕위에 오르는 단군조선부터는 더욱 확실하게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작은 배달나라이고, 그 연원은 한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 요녕성의 서쪽과 내몽고 자치구의 남쪽 요하 상류 지역 초원 지대에서 엄청난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천년 내지 2천 년 앞선 유물이 나오니까 중국이 지금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문명이라는 단일 기원설에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 문명과 요하 문명이고 이 두 문명은 상호 교류를 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입니다. 


그런데 중국에 있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만리장성 밖 동북지역에 대한 6천 년 된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6천 년 전 배달나라의 역사 기록과 요하 상류에서 발견된 이 유물이 같이 연구된다면 굉장한 일이 될 텐데, 중국은 유물만 있고 역사 기록이 없고, 우리는 역사 기록만 있고 유물이 없으니 그동안 신화나 전설처럼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유물들 중에는 9천 년 된 유물도 있습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었습니다. 요하 문명에서 황하 문명으로 문명이 흘러갔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고대 문명은 동시에 오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앞선 문명에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웅의 배달나라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만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지역이 우리 민족이 처음 이주해서 살게 된 첫 본거지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발해의 역사뿐만 아니라 배달 문명을 찾아서 요하 지역의 역사도 앞으로 연구해야 하는데, 아직 논쟁이 많고 한참 발굴 중에 있는 상황입니다.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이주해 왔으나 여기에는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우면서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 재세이화(洪益人間 在世理化)’를 내세웠습니다. 이것을 문명사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주민들이 토착 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해서 노예로 부리는 것이 대부분의 인류 역사입니다. 그러나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을 내세웠다는 것은 원주민들에게 선진 문명을 전해서 원주민들을 이롭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시 개천의 건국이념입니다. 선진 문명의 사람들이 후진 문명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 선진 문명을 전해서 이익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한 것이 ‘홍익인간’입니다. 


‘재세이화’는 하늘의 이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는 이것을 한문으로 고치면 ‘재세이화’가 됩니다. 후진 지역도 선진 지역과 같은 문명사회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로 가서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것과 같은 일이죠. 그러나 그들도 막상 가서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학대했죠. 그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국가 이념으로 이보다 더 좋은 이념이 있을 수 없고, 종교 이념으로도 이만한 종교 이념을 가진 종교가 없습니다.  그것도 6천 년 전에 이런 사상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든 기독교든 유교든 그 어떤 외래에서 들어온 종교보다도 모자라지 않은 사상입니다.


그럼 단군 설화에서 호랑이는 동굴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들 나름대로는 토착민에게 선정을 베푼다고 했지만 토착 세력의 입장에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에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호랑이족 입장에서는 선진 이주민에 대해 저항을 했고, 곰족은 협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곰족은 협력을 하니까 곰족 하고는 혼혈이 생긴 겁니다. 즉 천손 세력이 곰족의 추장 딸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단군이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환웅이 갖고 온 천부인 3가지는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 검이었는데요. 이것은 환인의 한나라에서 이주해서 내려올 때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6천 년 전에 벌써 청동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 흔적은 지금도 남아서 무당이 굿을 할 때는 방울을 흔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렇다면 개천절은 어떤 날일까요? 단군왕검이 즉위한 날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환웅 천왕이 이 땅에 와서 나라를 처음 연 날이 개천절입니다. 그 도시 이름이 ‘신시’이고, 그 나라 이름이 ‘배달’이고, 나중에는 그 수도가 ‘아사달’이라 했습니다. ‘아시’는 ‘첫’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사달’은 ‘처음으로 세운 도시’라는 의미가 되죠. 


최근에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BC 4,500년 ~ BC 3,000년 경 유물들 중에서 정교한 옥기들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배달나라의 기록과 이 유물들이 거의 근접합니다. 또 5천 년 전에 쌓아진 산성도 발굴되었습니다. 더구나 치가 있는 성도 발견되었습니다. 피라미드형 무덤도 나왔습니다. 크기가 광개토대왕릉 만합니다. 이와 같은 무덤 양식을 갖고 있는 민족은  고구려 밖에 없습니다. 거란 족도 없고, 여진족도 없고, 몽골족도 없고, 한족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고구려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던 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한 무덤과 축성법이 고구려보다 3천 년 앞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배달 문명을 계승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홍산 문명’입니다. 처음 홍산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중국에서는 요하 상류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명에 우리 이름을 붙인다면 ‘배달 문명’입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고로 앞선 문명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달 문명을 전설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패배의식이나 열등의식은 극복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월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역사의식을 가지면 전 세계 어디를 가서 어떤 문명을 봐도 열등의식은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미국을 가든 유럽을 가든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 가면 기가 죽고 위축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민족사에 대한 당당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고사는 잘 몰라 중국의 아류로 인식하고, 근대사는 일본에 패배해서 그렇고, 현대사는 서구 문명의 모방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부분에서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열등의식을 극복하려면 고대사는 사실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근대사는 독립운동사를 좌우로 나누지 말고 실제로 어떻게 싸웠는지 복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대사는 앞으로 우리가 창조성을 키울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개천절을 맞이해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생각하면서 자긍심을 좀 가져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출처 : 스님의 하루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6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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