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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un 20. 2024

주부 레벨업

저의 일기를 정리하고 공개합니다 2023년 12월

2023.12.16. 토요일


남편과 살며 언제나 40~50년 후의 정답을 열어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이 그때까지 사이좋게 행복한 노부부가 되어있는지. 시간이 빨리 가길 원한다면 오직 그것뿐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다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산 지 꽤 오래됐음을 알았다. 가계부앱을 확인해 보니 45일 정도 지났다. 그 시간을 나의 요리로 버텼다고? 굉장하다.



어제 과탄산소다+뜨끈한 물에 담가놓은 베개커버가 말끔히 깨끗해졌다. 보람차다. 누레졌길래 귀찮아서 버린 남편의 티셔츠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는 티셔츠를 평생 입을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있어, 몇 장 버린 걸로는 전혀 타격이 없다. 나는 늘 짐을 줄이고 싶다.



점심, 김치순두부찌개를 끓였다. 순두부 유통기한이 12월 4일까지였다. 한 입 먹어보고 망설임 없이 냄비에 투하했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적힌 비닐을 똘똘 싸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증거를 은닉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무리 순두부가 순결하게 말짱해도 남편은 찜찜함에 배탈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치즈(고양이 2호)가 계속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울었다. 안아도 주고 달래도 줘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답을 발견했다. 코타츠 이불이 제대로 코타츠를 덮고 있지 않았다. 이불을 정리해서 내려주자 치즈는 우다다를 크게 한 번 뛰고는 코타츠 아래로 쏙 들어갔다.



어렸을 때 어떤 에세이를 읽다가 페르시안 고양이가 아주 우아한 줄 알았는데 엉덩이에 똥을 붙이고 태연히 앉아 있는 걸 보고 놀랐다는 내용을 봤다. 화자가 아주 질색했고, 나 또한 한 마음이었으나... 지금은 가끔 엉덩이 털에 똥을 달고 오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발생하는데 정말 기특하다. 이렇게 길고 북실북실한 털 사이로 똥이 내려오는데 매번 붙지 않는 게 더 굉장하지 않은가! 궁팡을 해주다가 늘 후추의 똥꼬를 확인하는데 똥꼬조차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여행짐을 싸고 또 싸다가 수영을 다녀왔다. 떡튀순을 먹고 또 여행짐을 쌌다. 남편이 자꾸 자기 물건들을 주섬주섬 가져온다. 이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은 뭐가 좋고, 이 캠코더는 유튜버처럼 이런저런 영상을 찍을 수 있고, 이 방검가방은 카드복제를 막을 수 있고, 애플뮤직에 자기 음악목록을 보면 비행하며 듣기 좋은 노래들이 있고 등등... 그리고 자꾸 혼자 나흘 동안 어떻게 지내냐고 슬퍼한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는 후추와 치즈 없이 어떻게 지내나 슬퍼했다.



동생이 물었다. 사이판 가서 옷 어떻게 입지? 

나는 답했다. 거기 한여름이야. 29도. 안 찾아봤어?

동생이 답했다. 여름이라는 것만 봤어.

나는 말했다. 나도 남편 찾아준 거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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