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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un 18. 2024

문득 어딘가에 내가 둔 것들, 한 일

저의 일기를 정리하고 공개합니다 2023년 12월

2023.12.14. 목요일


어제 성심당 빵이 도착했다. 곱게 포장된 슈톨렌을 열어서 썰며, 얼굴 모를 누군가들의 노동을 생각했다. 남들은 '손길'을 말하지만, 난 '노동'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힘들어서 하기 싫었겠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덤이다.) 그 물결에 자연스럽게 편입해야 하는데 현실은 데쳐져서 축 늘어진 배추다. 


성심당 슈톨렌(대, 32000원)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오월의 종'에서 샀던 슈톨렌의 감동은 아니었다. 심지어 '오월의 종'에서 사도 안 돌아오는데 어찌 다시 만나겠는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자잘한 집안일을 하다가 또 헐레벌떡 수영을 하러 뛰쳐나갔다. 지금까지의 세 번 모두 여유 있게 나가야지, 해놓고 할래발딱 할래발딱이다. 강사님이 수경의 종류와 장단점, 관리법을 설명해 주고 내 수경에 달린 귀마개를 가리키며 더듬이라 말했다. 코가 매운 것도,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다 익숙해진다며 귀마개는 나약한 자나 하는 것이라 하였다(당연히 이렇게 그대로는 표현 안 함). 그러면서 귀에서 물을 빨리 빼는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난 이미 귀마개의 노예였다.




비가 계속 왔다. 똥차 상태라서 세차하려고 했는데 어정쩡하게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면서 마르면 무지 더러울 상태가 됐다. 트렁크 어딘가에 들어있을 발수코팅제와 유리세정제를 생각했다. 처음 차를 샀을 때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소화기, 청소기, 차량용 해머, 삼각대, 점프케이블, 컴파운드, 붓페인트, 각종 세차용품 등등. 아마 나 없이 그것들은 트렁크 안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트렁크 안을 들여다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뭐가 들어있고 뭐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 꺼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있으려니.




여행 준비를 아주 간헐적으로 하고 있다. 문득 생각나서 투어를 예약하고, 문득 생각나서 환전하자고 말하고, 문득 생각나서 주차를 예약하고, 문득 생각나서 스노클링 장비를 사고, 문득 생각나서 코트 보관 서비스를 찾는 식이다. 시차도, 기온도, 보안이 좋은 가방도 남편이 물어오면, 꾸물렁거리며 챙긴다. 나는 떠난다는 감이 없는데, 남편은 몇 번이나 "아내가 없으면..."을 말한다. 여행 가는 사람이 뒤바뀐 것 같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먹으면 점점 속에 있는 것들이 뒤로 밀려나가서 나중엔 패티와 야채 위에 앙증맞은 빵조각만 남는다. 손은 소스 범벅. 그걸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재정비를 하면 야채가 후두두둑 흩어진다. 주섬주섬 주워 먹는다. 모양 빠진다. 이 나이까지 햄버거를 제대로 못 먹다니. 햄버거 먹기 수업이라도 들어야 하나. 앞접시 더럽게 쓰지 않기 수업도 필요하다. 올바른 젓가락 잡기 수업도.




미용실에 또 갔다. 오늘의 목표는 염색. 검은 버섯에서 갈색 버섯이 되었다.




읽어봐야 할 책으로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을 기록했다. 안 읽을 거면서...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33409




샐러드를 싫어해 은근슬쩍 안 먹으려 드는 남편을 위해, 저녁 식사 때 샐러드를 그의 것 따로 내 것 따로 나누어 그릇에 할당했다. 샐러드(=맛없는 것)를 먼저 먹고 크림스튜를 먹는 남편.




광기의 주방청소를 했다.


광기의 욕실청소를 했다.


광기.. 는 아니고 평범한 세탁기 청소를 했다. 



수영과 광기의 청소로 지금 또 비몽사몽이다. 넥스트투노멀 노래를 속으로 부르다 떠오른 생각들을 쓰려고 했는데 또 미룬다. 그래도 이건 써야지...




요즘 시체관극의 근원지로 꼽히는 '쓰릴미'. 여기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구절은 "널 이용하고 속이기나 하는 병신들과 놀아났지만-"이랑 "날 좀 봐! 병신 같은 내 모습. 화가 나 더 이상 못 참겠어."다. 요즘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한 번 보러 가야 하나 보다. 2023년에 안 올렸으니 2024엔 올라오겠지. 


난 시체관극 좀 좋아한다. 배우님을 흠모하는 남미새라서가 아니라 표값 때문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표값이 20만 원의 뺨을 때릴 기세인데, 내 관극에 그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 평론가, 장애인 등등에게는 관용을 가지되, 빠스락거리지 말고 대화하지 말고 반딧불이 하지 말자. 하. 만원의 행복으로 보러 갔던 '스팸 어랏'에서 미친 듯이 자기 배우(아이돌이었음)를 대포로 찍던 미친 X가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그녀를 극장직원에게 신고했다. 일산까지 갔는데 모 배우의 제자들이 극 내내 떠들었던 것도 생각났다. 갑자기 또 빡침.


좋아하는 극 업데이트가 안 되어 슬프다. 회전문을 돌 만한 극이 필요하다. 맨날 늙은 오타쿠처럼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들만 곱씹을 순 없다. 렌트를 보러 갈까, 컴프롬어웨이를 보러 갈까. 작년에 하데스타운을 보았어야 했다. '디어 에반 핸슨'에서 'sincerely me'를 듣고 크나큰 의욕과 기대가 생겼었지만, 영화를 보고 다시 심드렁하니 드러누웠다. 'sincerely me' 빼고 내 취향과 백만광년 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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