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분위기 : 좋은 게 좋은 걸까

둥글둥글한 내가 까칠해진 걸까, 점차 이렇게 변화하는 게 맞는 걸까

by 폼폼

우리 학교의 분위기는 대체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분위기이다. 내가 임용된 첫 해에는 지금과 구성원이 많이 달랐으므로 지금보다도 훨씬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분위기가 좋고 포근했다. 누군가가 조금 불편하게 굴어도, 문제가 생겨도, 불만을 담아 투덜대더라도, 조금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는 모든 것을 덮고 교무실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해에는 공교롭게도 구성원이 절반 정도 바뀌는 타이밍이었다.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지라 우리 학교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다른 리듬을 탔다. 새로 온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아닌 건 아니다,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강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공기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사람마다 지닌 고유한 성향이 다르다 보니 그분들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린 게 아님에도, 그때 나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공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냥 좀 참으면 되지',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꼭 저걸 그렇게까지 말씀하셔야 하나' 등의 생각을 품으며 약간의 낯섦을 거부하고 있었다.


새로 오신 분들로 인해 학교의 모습은 부분 부분 바뀌고 있었다. 굳이 불필요했던 것이 없어지기도 했고, 반대로 필요한 것을 갖추게 될 때도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만한 크기라 감당해왔던 부당함도 그분들께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인지라 그분들의 목소리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때때로 그분들께서 개진한 의견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을 위한 것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필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나의 가치관에도 점차 스며들었다. 어느샌가 내가 조용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말씀해주실 때면 그 의견이 전달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시원함,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때론 간이 조그마한 나 대신 내 의견 좀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몰래 품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학교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 편이 낫다는 쪽을 선택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이 눈에 보일 때면 이젠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고민 된다. (여담이지만 이런 변화를 경험하니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는 게 얼마나 섣부른 일이었나 싶다. 약 30년을 동그란 모양이라 확신하고 살아왔는데 길지 않은 순간에 세모 모양을 갖게 되다니.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후천적 요인들에 의해 빚어지겠지.)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상황의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이다. 요직에 계신 분이 해야 할 일은 뒷전인 채 개인적인 스펙(?)을 쌓는 일에만 열중하고 계신다. 그분이 해야 할 일은 학교가 돌아가려면 기한 내에 행해져야 하는 일인지라 불안함을 느낀 여러 선생님들께서 좋게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그분은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시느라 해야 할 일을 기한 내에 끝내는 법이 거의 없으시다. 결국 그 일은 다른 부서가 골고루 나눠 갖게 된다. 그럼에도 그분은 2년째 요직에 있기를 고집하신다.

이 경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이 다른 자리에 가실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만일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그분이 하지 않은 일을 다른 부서에서 대신 수습해주는 일은 없어야 상황이 바뀌지 않을까. 연차에 대한 예우라든가 피할 수 없을 갈등에 대한 불편함을 내세우며 계속 감수하기엔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다.


저번 주에는 동 교과 신규 선생님의 공개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의 수업은 군더더기 없이 훌륭했지만, 나를 포함한 누구나의 수업이 그렇듯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있었다. 느낀 대로 수업 평가지를 작성하려는데 10점 만점인 항목에 8-9점에 체크를 하려니 8점까지 줘도 되나, 싶은 마음에 내 손이 멈칫했다. 내 손은 얼마 동안 평가지 위에서 방황하다가 9점 위에 앉았다. 공개수업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만점 또는 만점에서 아주 약간 모자란 점수를 주는 분위기인지라 8점을 주는 게 어쩐지 틀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협의회 자리에서도 개선점과 보완할 점에 대한 이야기가 설 자리는 없었다. 좋은 점과 격려만 잔뜩 펼쳐진 상황에서 나는 한 가지의 보완점을 최대한 둥글게 말했는데, 분위기에 못 이겨 그마저도 애매한 말로 포장하고 말았다.


협의회가 끝난 뒤, 공개 수업 및 동료 장학의 의미와 취지가 무얼까,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 안에는 교사를 향한 격려와 응원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사의 수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좋은 말만 늘어놓아서는 그 취지를 달성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형식적이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로 이런 과정을 거칠 거라면 수업을 애써 준비하는 수고로움과 내 수업을 보여주는 심적 부담을 견뎌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굳이 날을 세우는 건가, 싶기도 해서 어쩐지 기가 죽는다. 다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쪽을 선택하는 데에는 아직 내가 체득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덮지 않아야 할 것을 덮어버리는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좋은 변화도 막는 것 같아 낡은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하고 소심히 마음속으로나마 반기를 들고 있긴 하지만. 나는 먼 훗날 어느 쪽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