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 발을 딛고 나니 인간 관계가 더 넓어지는 듯하면서도 좁아지는 듯하다. 사회에서 맡은 역할로 인해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에 따른 관계가 형성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관계의 망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관계에 경계를 긋고 싶은 욕구를 느끼곤 한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은 회사에서 알게 된 좀 가까운 사람', '그 사람은 그냥 적당히 친한 사람', '이 중에서 진짜 친한 사람은 이 정도?'와 같은 구분이 시작되면서 '내 사람'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꼽는다.
나는 내가 만나는 이들이 다 내 사람이 되기를 바랐었다. 관계지향적인 성향 탓일까. 각각 다른 모양일지라도 모두와 나름의 각별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신규 교사 연수의 한 장면 중, 선생님들께 예쁨 받는 신규가 될 수 있는 팁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령, 부장님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연배가 있으신 선생님께는 호칭을 부장님으로 하기, 교무실에서 공동으로 쓰는 전기 포트에 일찍이 물을 채워 넣기, 모르는 것은 적극적으로 여쭤 보기 등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선생님들께서 좋아하시고 교무실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것들을 다 실천해 보리라는 다짐과 함께 교무실에서 예쁨 받는 신규가 되겠노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게다가 임용이 되기 이전에도 여러 방면에서 사회 생활을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며있었다.
임용이 된 첫 해 1학기, 좋은 첫인상을 심어드리며 선생님들의 눈에 들고자 애썼다. 잘해보려 애쓰는 사람은 설령 잘하지 못하더라도 나름 귀엽지 않은가. 예쁨 받고 싶어 버둥거리는 신규를 선생님들께서는 귀엽게 봐주셨다. 그분들의 다독임이 따스해질수록 더 잘하고 싶어, 인사는 기본이요, 배우려는 반짝이는 눈빛, 리액션, 환한 웃음, 칭찬 등을 항상 장착하고 다녔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도 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우스운 생각이긴 하지만, 교무실을 둘러보니 나만큼 친분 관계가 넓은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이 선생님과도 나름대로, 저 선생님과도 나름대로 친한 관계를 쌓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내가, 사회 생활을 잘하는 듯한 내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뿌듯함과 자만 사이의 그 아슬아슬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인간 관계에 대하여 경험치가 덜 쌓인 초급자가 품은 자만이었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인간 관계에 대한 면역도 약하게 하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좋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옥죄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때는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되뇌기도 했다. '방금 한 말이 혹시 이렇게 들리지는 않았을까?'와 같은. 때로는 무리해서 다른 분이 할 일을 내게 끌어와 할 때도 있었다. 좋은 이미지를 더 좋게, 그 이미지에 티끌 같은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다.
의견 충돌이 생길 때에도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 분명하게 내 의견을 밝히기가 어려웠다.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제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되곤 했다. 실제로 업무로 인해 몇몇 사람들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느껴지는 쌀쌀한 기운이 너무 신경 쓰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지금 뭐라고 생각할까' 등 이제 더 이상 내가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괜스레 심술마저 났다. 면역 체계가 약했던 나는 유치하게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사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심이 내 마음을 옹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기가 바뀌자 나의 인내심이 무한대가 아닌 탓에 많이 내려놓았지만, 우리 반을 포함한 몇몇 아이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잘못된 것을 단호하게 혼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는데. 학기 말 즈음 우리 반 아이들이 뒤에서 나를 욕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순 없는 건데. 아이들은 더더욱.
언젠가 연극은 끝난다고 했던가.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님을 몰랐기 때문이었던가. 항상 좋은 사람 모드로 있으려니 힘에 부쳐 때로는 가면을 벗고 쉬는 날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점이었다. 가면을 벗은 내 모습이 어색했다. 괜히 잘못한 것만 같고, 잘못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힘에 부칠 때 생글생글 웃으며 최선을 다해보려는 모습 대신 힘이 들다고 티를 낼 때면 내가 하면 안 되는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때 견디다 못해 그 불편함이 새어 나올 때에도.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만 같았다. '나는 언제나 밝고 싹싹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나는 '좋은 이미지'가 나인 양 착각한 채로 나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을 규정해놓고는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스스로 못 견뎠던 것이다.
이런 마음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실컷 애쓰다 보니, 제 풀에 지쳐 못하는 날이 생기다 보니,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없다는 삶의 이치를 경험해 보니 이제 알겠다. 나는 완벽한 사람일 수도 없고,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나를 가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내 하루에서 더 중요한 건, 순간순간 내가 어떤 마음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지 바라보고 내가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임을. 즉, 타인에게 사랑받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사랑해주려 해야 했음을.
하지만 그토록 사랑받으려고 애썼던 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래서 함부로 그 마음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다. 누구나 품고 있는 애틋하고 순박한 마음인데, 단지 불가능한 것이기에 '욕심'이 되어 버리는 마음일 테니. 다만, 그 욕심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 진짜 내 얼굴을 가리지 않을 수 있도록,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