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내 마음, 그러니까 장하다고 칭찬해 주시기를.
며칠 전, 가족 휴가를 다녀오면서 안동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반가운 거리를 마주쳤다. 2019년 첫 해에 안동에 혼자 여행을 와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뚜벅거리며 구경했던 시장, 벤치 위 드리워진 나무 그늘을 위로 삼아 누워있던 초등학교. 눈에 익은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앞서면서도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안동에 뛰쳐 왔었는지 또렷하게 떠오르니 순간 살짝 마음이 아려왔다.
1. 이것은 내 모습
안동에 간 건 2019년 끝자락. 첫 해에 너무 바짝 힘을 들인 나머지 초보 교사인 나는 눈에 띄게 소진되어 있었다. 계획도 없이 혼자 훌쩍 떠난 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탁 트인 곳에서 숨을 쉬고 싶어 불현듯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간 것. 힘이 쭉 빠져 너덜너덜한 상태였던 나는 온전한 휴식과 충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첫 해뿐이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1년 차보다는 덜했을지 몰라도, 나는 2년 차에도 힘들었고, 올해 1학기만 해도 몇 번이나 너덜너덜해졌었는가. 길게 볼 필요도 없이 하루하루만 떠올려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늘 금방 소진되는 것만 같은 기분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학급 경영도, 우리 반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도, 아이들과 맺는 찰나의 관계마저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썼던 논문도, 시험공부도 모두 ….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어제와 오늘 받은 운전 연수만 해도 그랬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게 무엇이든 금세 기가 쭈욱 빨리고 그것이 끝나면 이내 진이 빠져 누워버리는 내 모습은 흔한 모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쉽게 쉽게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큼 힘들이지 않고도 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왜 나만 진땀을 빼다가 녹초가 되어 있는 거냐고.
2. 이것도 내 모습
무언가를 할 때면, 설령 그것이 내 손에 처음 잡히는 분야의 것일지라도, 평균 이상은 해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중간 이상은 한달까. 그래서 두루두루 잘하는 게 적지는 않은 편이다.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게 하는 편이고, 저것도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다. 오늘 한 운전도 마찬가지였다. 운전 강사님이 무심히 건넨 칭찬에 '내가 못하는 편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슬몃 좋아졌다. 생각해보면 이런 기분도 오늘만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가 못하지는 않네?'라는 생각과 함께 찾아오는 기분 또한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3. 1과 2를 더하면
강사님께 칭찬은 받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멍하니 누워있어야 했다. 운동한 것마냥 온몸에 힘도 없고 진이 쭉 빠져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크게 힘들일 필요 없는 생각 풍선 떠올리기 뿐.
'다들 운전하고 나면 이렇게 힘드나? 내가 초보라서 좀 더 그런 거겠지?'
'아니.. 그래도 무슨.. 운전하고 왔는데 운동한 것보다 더 힘드냐..'
'나름 잘한 것 같긴 한데 아오.. 너무 힘들다..'
칭찬받았던 것을 생각하며 쓰러져 있다 보니 문득 '쉽게 지치는 내 모습'과 '무언가를 하든 곧잘 해내는 내 모습'의 교차점이 보였다. 그것은 이내 길이 되어 '힘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여태 유난히 힘들어하는 것 같았던 내 모습이 처음으로 달리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잘하기 위해서 힘을 잔뜩 들였기 때문에 그만큼 힘든 거였고, 내가 무언가를 할 때 항상 힘든 이유는 잘 해내고 싶어서 한껏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힘들다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잘했다는 증거였음을 말이다.
혹시나 자신이 무언가를 할 때 유난히 힘이 드는 것 같다면, 무언가를 하고 나서 지쳐버렸다면 그것은 잘 해내고 싶은 내 마음이 내가 가진 힘을 있는 힘껏 쏟았기 때문이니 칭찬해주시면 좋겠다. 어제까지의 나처럼 스트레스받고 답답해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