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들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내가 사랑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발견하는 그 시대가 바로 황금기

by 폼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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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지루했달까, 감흥이 딱히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뻤던 영화', '잔잔했던 영화', '딱히 스토리는 없는 영화'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당시의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겠다.


정확히 이 영화를 왜 꺼내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그리워할 과거가 없어서였나, 지금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기점을 밟고 지나는 중이기 때문일까. 한낮에, 정말 대뜸, 이 영화가 나를 끌어당겼다.



앞을 바라보며 빠르게 달려 나가는 시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일정 거리를 달리고 나면 뒤를 돌아보다가 거꾸로 걸어가게 되어있는 듯하다. 많은 부분에서 레트로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고, 한 때를 풍미했던 뮤지션이 TV에 나타나자 반가움을 느끼며, 패션 트렌드는 결국 돌고 돈다. 이처럼 현대의 구성원들은 때때로, 꾸준히 과거를 그리워하며 소중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나 또한 현재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며 자주 과거를 추억하고 동경하는 한 사람이다. 오늘날 중독성 있는 가요 트렌드보다는 옛날 노래 가사의 촉촉한 감성을, 편리함이 자리 잡은 도시의 길보다는 사람의 손이 덜 닿은 시골길을, 하나가 뜨면 우후죽순처럼 따라 나오는 같은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보다 촌스럽지만 하나하나 개성 있었던 옛날의 예능이 더 좋다. 현재와 과거를 서술하는 지금도 내 마음이 과거에 좀 더 기울어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1시간 30분가량 되는 러닝타임이 어찌 지나가는 줄도 모른 채 길 펜더의 과거 여행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가 휘둥그레 한 눈으로 감격에 겨워하는 마음이 어떤 것일지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자신이 사랑하던 분야에서의 과거 여행이라니,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아드리아나가 길 펜더를 파리의 벨에포크 시대로 이끌려는 찰나, 길 펜더는 과거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길 펜더가 아드리아나에게 했던 말로 인해 나 또한 꾸준히 과거를 향한 막연한 시선을 잠시 거두게 되었다.


길 펜더가 황금기라 여기는 그 시대를,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따분하다고 말하며 그 이전의 시대를 황금기라 말한다. 길 펜더의 말을 곱씹어보고 영화의 몇 장면을 다시 재생해보니 왜 내가, 나아가 우리가 꾸준히 과거를 향해 시선을 두어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제 그것을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리워만 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대상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언제든 만나서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게 되고 만다. 현재가 따분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간들 그 감격은 잠시뿐일 것.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시간은 이내 또 따분한 현재가 되고 말 테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현재를 사랑하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면 길 펜더가 각성하고 현재로 돌아와 현재의 삶을 열정적으로 사는 결말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자락에서 길 펜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파리를 사랑하고 비 오는 파리를 걷길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걷는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길 펜더의 삶은 대강 짐작이 된다. 그는 영화 내내 얼굴에 묻어났던 불안함을 벗어버리고 과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거둔 채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함께할 수 있게 된 지금이 황금기(Golden age)라고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는 곳이, 그 시대가 바로
나의 황금기(Golden age)이다.

내가 푹 빠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내주어도 망설임 없을 그런 것을 만났을 때 그 시대가 내게 가치 있는 시대, 즉 황금기(Golden age)가 된다. 이것이 내가 무엇을 가치롭게 여기고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찾아나가며 발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재가 황금기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현재가 나의 황금기가 될 수 있도록, 공허함에 나도 모르게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지지 않도록 내게 가치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고 추구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과거(꼭 과거가 아니더라도 내가 막연히 환상을 가진 지점)를 향한 막연한 시선을 멈출 수 있도록 돕지만, 거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통해 느낀 바로는 그 시선을 '내가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곳이 현재라면 더더욱 좋겠다. 사실 언제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내 시선에 이유가 분명하다면. 내가 가치를 느끼고 사랑하는 것이 있는 곳이 맞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당신이 어떤 곳에 꾸준히 시선을 두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이유를 발견하고 내가 황금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만한 행운이 없을 것이다. 혹시 그 시선에 대한 이유가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면 시선을 거두고 내게 가치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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