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는 정말 조용한 동네다. 평소에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날도 많다. 이곳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서울에 갈 때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하며 놀라곤 한다. (나는 30년 이상을 서울에서만 산 사람인데도!)
어느날, 사람이 없는 동양가배관 공간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 공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도 공간이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이제 공간이 있는데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약 1년여의 시간, 우리는 지역에서 받은 영감을 새롭게 전하는 우리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하고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때 했던 실험들이 이후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중요한 씨앗이 되어 주었다.
'동양가배관 1층의 전시대를 활용해서 작은 팝업을 해보면 어떨까? 팝업이 꼭 커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 생각으로 추진한 첫번째 프로젝트가 '태국 문방구' 팝업이었다. 배다리에는 문구점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도매 위주의 문구점이다 보니 흥미로운 옛날 물건들을 디깅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문구나 독립 브랜드의 제품을 만나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아쉬웠다.
문구 거리에서 재미난 문구 경험을 새롭게 제안해 보고 싶던 생각을 하던 차에 독립출판사 '소장각'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아름다운 책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문화를 알리는 '소장각'의 『태국 문방구』펀딩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책 속의 이야기를 경험으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논의하게 되었고, 그 시작을 배다리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태국 문방구』책과 함께 책 속에 등장하는 태국 문구들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로 했다.
선반 두 칸을 비워 준비한 작은 팝업을 차렸다. 나름 팝업이니까, 유리창에 시트지도 붙였다. 사실은 자주 들르시는 손님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 차린 행사였는데, 미디어에서 이 소식을 다루어 주기도 하고 이것을 보기 위해 멀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즐거워하며 문구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선반 두 칸짜리 팝업을 보러 와주었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어, 두번째 팝업은 선반 세 칸을 비워 보기로 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갑자기 놀러온 마케터이자 크리에이터인 친구 융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재미있는 거 해볼까?"하고 벌이게 된 기획이었다.
둘 다 오래된 것, 아날로그 문화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을 디깅하고 각자 발견한 헌책을 전시하고 판매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빈티지 소품들도 플리마켓으로 팔아보기로 했다. 기념으로 인천의 노포에 가서 밥을 먹고 근대건축물 앞에서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었다. 너무 재미있게 했던 작업인데 지금 봐도 우리가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이 팝업 역시 빈티지 소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정도로 (물론 1~2명 정도였지만) 반응이 있었다. 역시나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콘텐츠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공간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에도 헌책방과 플리마켓, 골동품점만 투어할 정도로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헌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헌책방, 왠지 들어가기 무서워요...'라는 말에 함께 헌책방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마침 인천 스펙타클에서 동네 산책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한 차였다.
내가 먼저 배다리의 헌책방 5곳에 대한 해설을 진행한 후, 모두 '헌책 큐레이터'가 되어 자기만의 시선으로 헌책을 고르고, 그 책을 고른 이유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낯선 헌책방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뿐 아니라 '헌책방에서 노는 법'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무렵, 배다리에서 북토크를 진행한 것을 계기로 부쩍 가까워진 슈퍼소닉 스튜디오의 영진·주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zine)'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거진 아니고 진(zine)은 종이를 손으로 접거나 오려서 간단하게 만드는, 책등이 없는 형태의 독립출판물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해외에서는 진(zine)만을 위한 라이브러리나 상점, 페어가 열리기도 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우리도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워크숍을 열어 보았다. 우리도 처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개념보다는 '함께 해보자!'라는 것에 가까웠는데 신기하게도 정원을 초과할만큼 사람들이 모였다. 내 마음대로 찢고 자르고 붙이며 독립적으로 창작물을 만드는 방식에 모두가 열광했다. 동양가배관 2층이 각종 종이 쪼가리들로 뒤덮였다.
진 메이킹의 매력에 빠져든 우리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을 선생님으로 초대했고 창작자들은 "예? 제가요? 이걸요?"하면서도 한번도 해본적 없는 수업을 이끌며 다같이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 메이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말 신기한 유형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을 '진(zine) 유학생'이라 불렀다. 광주, 전주, 제주 등 진짜 먼 지역에서 3~4시간 이상을 이동해서 여기까지 진을 만들러 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실 배다리는 진 메이킹하기 최적의 장소다. 창작자에게 영감이 되는 소재가 도처에 널려 있는데다가 헌책방과 문구점이 바로 곁에 있어 재료를 구하기 쉽다. 작업하다가 지칠 때 마실 수 있는 좋은 로스터리도 있다! 어느 순간,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장르인 진(zine)을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 그러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존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감각할 수 있었다. '요즘 배다리에서 재밌는 일들이 일어난다던데?'하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어느 북페어 현장에서는 '제가 인천 배다리에서 활동하는데요.'라고 말을 꺼내자 '어? 거기 들어봤어요!' 하며 반기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스갯소리로 배다리를 '진 메이커의 성지'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콘텐츠는 사람들을 불러온다는 것을. '문화'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탄생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