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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4. 2017

홍콩 아트바젤 이야기

2017.03.23

3월의 홍콩은 덥지 않고 비도 많이 오지 않아 여행하기 좋다. 5년 전부터 홍콩에서도 시작된 아트바젤이 3월 말에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 달은 홍콩 전체가 기대감으로 들썩인다. 나는 쾌적한 날씨의 홍콩을 새롭게 즐길 방법을 찾다가 올해는 꼭 아트바젤을 구경하리라 마음먹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라는 수식어가 그리 와 닿진 않지만 몇 군데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미술작품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사실 아트페어는 작품을 직접 사 본 경험이 있거나 갤러리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겐 친숙하지 않은 행사일 수 있다. 나도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을 뿐 어떤 작가가 요즘 잘 나가는지,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모른다. 오히려 그림에는 문외한이었던 친구가 금융계에서 일을 하다 아트페어를 몇 번 갔다 오고 나서 신나게 떠드는 이야기를 들은 후 더 관심이 없어졌다. 꼭 잘 팔리는 그림이 좋은 작품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든 예술적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관습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싶다.


행사장 입구에서 배포중이었던 신문. 미술시장의 주요고객이 최상류층에서 중상류층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현대미술은 급격하게 양적으로 성장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옆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의 성향이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같은 지향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시장의 관점으로 보는 갤러리스트의 눈을 거친 작품들은 어떨까? 다양한 작품들을 이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미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볼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어떤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믿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관찰자로서 그 흐름을 약간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다.


2017년 홍콩 아트바젤은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다. 나는 몇 주 전에 인터넷(HK Ticketing)으로 미리 예매를 했고 가격은 현장 구매보다 약간 저렴했다.(1일권 265 홍콩달러) 홍콩 여행을 3일 남겨두고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을 때 24,25일 예매권이 모두 매진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물론 약간의 여유 표는 현장에서 구할 수 있지만 23일 현장표의 경우 2시간이 되지 않아 역시 매진되어서 지하철역부터 직원들이 매진 푯말을 들고 있었다. 예매표를 찾는 줄도 꽤 길기 때문에 표를 미리 찾으라는 조언이 있어서 나는 하루 전에 들러 표를 찾았다.


컨벤션 센터 주변이 공사로 매우 혼잡했다.


오픈 시간은 오후 1시부터 8시까지라 여유 있게 컨벤션센터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대해 팁을 남기자면, 일단 버스, 트램, 지하철 등으로 지하철 완차이 역에 도착하면 된다. 역 입구에 컨벤션 센터까지 몇 개의 빌딩을 거쳐 직선으로 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이동하면 VIP만 출입 가능한 게이트가 있고 표를 검사할 때 가방 크기를 매우 유심히 본다. 가방을 뒤로 메지 않고 부피가 크지 않으면 가지고 입장할 수 있지만 검사원에 따라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가방을 모두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홍콩 아트바젤에는 34개국의 242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는데 작품 수가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모든 작품을 꼼꼼히 볼 수 없을 것 같아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이 있다면 유심히 보고 나머지는 대충 넘어가면서 시간을 절약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층의 대략 반 정도를 보고 나자 2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1층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보게 된 <Putto> 올해 주요 작품(Encounters)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리히텐슈타인, 피카소, 마그리트, 워홀 등의 작품도 물론 있다.
언뜻 그림처럼 보이지만 빛이 투과해 규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왼쪽이 진짜 돌, 오른쪽이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짜 돌이다. 거울에 비춰보면 가짜가 진짜와 겹쳐 보인다.
가방안에 시대를 상징하는 작은 이미지들이 원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 작은 카메라가 이를 비추면 큰 스크린으로 생중계가 된다.
진품은 어떤 것?


현장에서 그림을 사는 광경을 혹시나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다. 각 갤러리 부스에 앉아있는 담당자는 이미 지친 표정으로 무심하게 관람객들을 응시하고 있다가 가끔 누군가 양복을 입고 나타나서 정중한 태도로 작가나 작품에 대해 물으면 갑자기 환한 미소를 띠고 열심히 자신들의 상품을 칭찬했다. (그 틈에 조각 작품을 만져보는 대담한 관람객도 있다.) 열심히 왔다 갔다 하는 샴페인 카트와 정확한 가격을 명시한 작품 설명을 빼면 아트바젤은 거대한 미술관과 다르지 않았다.


천안문을 소재로 한 이 시리즈를 보고 어떤 중국사람이 자신들의 상징을 망쳐놓았다고 마구 비난을 퍼부었다.


약 7시간 정도 돌아본 후 일반적인 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 느끼는 홍콩 아트바젤의 특징을 정리했다.


1. 큰 주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다.


행사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갤러리 섹션에서는 각 갤러리들이 가진 개성이 뚜렷했다. discovery섹션의 경우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라 신기한 작품이 많은 반면 갤러리의 이름을 내 건 부스에는 많이 알려졌거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작품이 많았다. 내가 접한 현대미술전시의 경우 개별적인 작품이 난해하거나 해석이 필요한 경우 큰 주제를 생각하며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나갔다면, 이 정도 규모의 아트페어는 작품의 개별적인 호감에만 집중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갤러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림을 따라가며 선택적으로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2. 하지만 체하는 기분이 든다.


볼게 너무 많다. 누구나 처음에 들어서면 하얀 벽에 엄청난 작품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꽤 흥분하는데 두 시간쯤 지나면 시큰둥해진다. 다리는 아프고 피곤하지만 사람은 점점 많아지니 빼곡히 들어선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하나라도 더 보려 노력하게 된다. 점점 집중도가 떨어져 모든 게 귀찮아지기 전에 빨리 전시장을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재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잠깐 쉬면서 충전을 하고 다시 들어가는 게 좋다. 물론 1층을 다 보았다고 끝이 아니다. 거의 비슷한 규모의 3층도 봐야 한다.

누워있는 카스트로가 조금 부러워지는 순간


3. 사진을 마음껏 찍고 얼굴을 마구 들이밀어도 된다.


관람객 대부분이 엄청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가로 세로 여백을 맞추어 사진을 찍다 보면 그림을 감상하기도 전에 관성적으로 카메라를 들게 된다. 아무도 사진을 찍는 것을 제지하지 않기 때문에 유명하거나 재미있는 작품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한 좋은 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또 포토라인도 없다. 그림의 돌출된 부분을 관찰하거나 표면의 붓질을 보기 위해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 작품에 손만 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감상해도 되지만 작품이 너무 많다 보니 자칫 위험해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한 설치작품의 기다란 통로에 어떤 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무엇인가를 넣었는데 바로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팔에 난 솜털, 눈동자도 아주 잘 보인다.
생생한 붓터치


4.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시각이 담긴 작품이 많다.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인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주제와 화풍이 담긴 작품이 많았다. 갤러리의 비중도 아시아가 반 이상 차지하는 것 같았고 한국의 경우 국제갤러리가 눈에 띄었다. 특히 최근 현대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했던 설치작품인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가 입구 가까이 자리 잡았다. 유럽을 여행 다닐 때는 동양적인 붓터치나 사회 주제를 담은 작품을 보면 왠지 뿌듯하고 더 많이 보편화되었으면 싶었는데 홍콩 아트바젤은 정말 우리들의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관람객의 국적은 보다 다양했는데 아시아의 역사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이 작품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행사장 이외에 홍콩의 상징인 트램에서 상영되는 작품이 있다. 25분~36분 정도 정차역 없이 센트럴을 기점으로 운영되는 트램을 타고 체험하는 "Twenty-Five Minutes Older"이라는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도 사전신청을 받았는데 금방 매진되는 바람에 추가 신청을 더 받았다. 나도 겨우 센트럴에서 셩완으로 가는 트램을 예약할 수 있었는데 이 체험기와 더불어 홍콩여행기를 더 써 볼 예정이다.

https://youtu.be/4YltmPTlN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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