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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읓 May 19. 2023

전라남도 담양, 대나무 응달진 고을

(1) 남산리 오층석탑, 객사리 석당간, 그리고 죽녹원과 죽순빵

어느 순간 가고 싶어 참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작년에는 순천이었고, 연초에는 목포였으며, 올봄에는 홋카이도였다. 또 이번에는 담양이 그런 곳이었다. 바다 건너 먼 타지의 아름다움을 좇고 싶다가도 국내여행을 찾게 되는 때도 주기로 찾아온다.


고백하자면 청소년 시절에는 국내여행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다 통하는 여행은 재미없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볼 게 뭐 있다고 가는지 몰랐다. 차라리 돈을 더 모아서 해외로 가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물론 해외에는 관광하기 좋게 잘 다듬어진 곳이 많다. 옆나라 일본만 봐도 지역마다 대표하는 토산품이나 역 도시락, 지역한정 제품 등으로 홍보하는 데다 고장마다 전통적인 특색도 있고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있다. 또 태국은 어떤가? 방콕만 해도 큰 관광도시다. 이국적인 문화와 특산물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그런 관광산업이 활성화된 해외에 비해 국내여행은 초라하기만 했다. 전통적인 상품들은 너무 비싸거나 아니면 중국산 싸구려 제품이었다. 간혹 관광 스탬프 같은 게 있다면 핸드폰 어플로 깔아서 찍는 방식이었고, 직접 찍는 스탬프가 아닌 이상은 할 맛이 안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편리함보단 비용 절약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한국의 관광산업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점이었고,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면 다닐수록 그곳만이 품은 자원이 있었다. 이건 마치 모두 차려진 밥상이 아닌 무엇을 만들지 찾아내고 고민할 수 있는 미완성의 레시피인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어쩌면 또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이 가공되지 않은 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우리에게 앞으로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광주역 후문

[출발] 수원역 >>> [경유] 광주역 (약 4시간 소요) >>> [도착] 담양 담양군청 (약 1시간 소요)


담양의 이미지는 대나무골이었다. 담양의 죽녹원은 일본 교토의 아라시야마嵐山 대나무숲에 비견됐다. 조선시대의 정원인 소쇄원瀟灑園, 연못 위에 지어진 모현관慕賢館 같은 문화유산들도 가득 품고 있었다. 또 지역 명물 빵인 죽순빵이 호평일색이었다.


담양은 수도권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광주를 경유해 시외버스로 갈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 5시간가량 걸려서 아침 일찍 광주행 첫차를 타고 이동했다. 미리 예매는 안 해둬서 입석 칸이었다.

기차를 타고 정읍역을 지나는 중에 기차역에서 산 빵을 먹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아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가 다가오셔서 초콜릿을 하나 주셨던 기억이 난다.


담양읍으로 가는 버스는 광주역 후문으로 가면 바로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목적지를 먼저 말한 뒤 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이었다. 광주 시외로 가는 만큼 요금은 3,000원이 넘게 나왔다. 담양군청에서 내려서 동쪽으로 쭉 갈수록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오색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한적한 도로에 줄줄이 심어진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푸르렀다. 담양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潭陽 南山理 五層石塔 (보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342번지

시대 - 고려시대

◎안내판 설명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은 기단부의 높이가 다른 탑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다. 기단부의 형식 등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을 모방한 탑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절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으나 이 탑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들판 가운데에 세워져 있으며,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2000년, 2012~2013년에 탑 주변 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목사木寺, 대사大寺, 만卍자 등이 적힌 기와가 발견되어 이곳이 절터와 관련성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남산을 병풍 삼고 푸르른 들판에 세워진 오층석탑이 자연과 어우러져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붕의 네 귀퉁이는 위로 조금씩 솟아 있었고, 탑신은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졌다.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한 백제계 양식인 만큼 미려했다. 하지만 이곳에 원래 있었을 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이 불탑과 도로 건너편의 석당간만 덩그러니 터를 지키고 있었다. 이 드넓은 들판에 지어졌던 절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도로 바로 건너편에는 객사리 석당간이 있었다. 전봇대와 가로수 사이에 숨어 있던 석당간은 대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담양 객사리 석당간

◎담양 객사리 석당간 潭陽 客舍理 石幢竿 (보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45번지

시대 - 고려시대

◎안내판 설명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내걸었던 깃발을 '당幢'이라 하고, 그 깃발을 매다는 깃대를 '당간幢竿'이라 한다. 담양 객사리 석당간은 고려 시대 당간지주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당간 옆에 세워진 비석에 따르면 큰 바람이 불어 쓰러진 것을 조선 헌종 5년에 현재의 모습대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당간 높이는 15m이며, 지주支柱의 높이는 2.5m이다. 담양의 지형이 배가 떠다니는 모양이라 풍수지리상 돛대가 필요하여 당간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종대 또는 장대라고 부른다.


당간을 양옆에서 지지하고 있는 두 쌍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보통 절이나 절터에 당간 없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는 흔하게 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가운데에 당간이 세워져 있는 모습은 담양에서 처음 만났다. 돌기둥 여러 개를 철 띠로 감싸 고정시켰고, 상층부는 쇠로 되어 튼튼해 보였다. 나무로 된 당간들은 썩어 없어졌지만 돌로 만들어진 석당간은 이렇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석당간은 전라남도 나주나 경상남도 양산에도 있다고 하는데, 담양의 석당간처럼 끝부분에 바퀴 모양의 보륜寶輪 장식이 있는 건 없는 듯했다.

담양의 보물인 석탑과 석당간 구경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죽녹원으로 향했다. 담양천을 넘으면 곧 죽녹원 입구였다.

담양 죽순빵

향교교鄕校橋를 넘어가서 왼쪽 향교길로 들어가면 특산품 가게가 소소하게 모여 있었다. 댓잎 아이스크림이나 댓잎 도넛, 댓잎 핫도그처럼 대나무를 활용한 주전부리들이 있었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담양의 명물 빵인 죽순빵을 파는 가게가 나왔다. 18개에 9,000원이었다.

현미 반죽에다 소는 흑임자와 죽순, 아몬드로 만들었다고 했다. 까끌까끌한 질감에 죽순빵은 죽순 맛보단 흑임자 맛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죽순을 통째로 넣었다면 이질적이었을 것 같고, 팥소였다면 진부하지 않았을까? 여러 고안 끝에 만들어졌다는 소는 꽤 특이하고 맛있었다.

죽녹원 입구의 홍살문

■입장료

성인 3,000원 (전남사랑 도민증 소지시 50% 할인)

중고생/군인 1,500원

초등학생 1,000원

담양군민, 만 65세 이상 경로자, 만 6세 이하 미취학아동, 국가유공자, 장애인(6급 이하) 입장료 무료

■영업시간

오전 9:00 ~ 오후 6:00

죽녹원의 대나무숲

울창한 대숲에 대나무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마음이 싱그러워졌다. 굵고 싱싱한 대나무에는 이따금 놀러 온 사람들이 새긴 낙서들도 보였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잔잔했고, 대나무 그늘 아래선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대나무골인 담양의 이미지처럼 푸릇푸릇한 죽녹원의 대나무숲은 인파로 북적이며 시끌벅적하지 않았고 고즈넉한 정취가 있었다.





2023.05.08 가다

2023.05.11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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