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성격도 만들어진 그대로 죽을 때까지 살아가보자.
“널 보면 언제나 너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여. 뭐랄까, ‘준비된 쌈닭’ 같달까? 풍기는 분위기에서부터 ‘나 건들이기만 해봐!’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쉬운 인상은 아니라는거지.”
“우리 딸은 왜 이렇게 맨날 새침데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웃어요 웃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괜히 있겠어? 안 되더라도 거울 보면서 하루에 1분이라도 웃는 연습을 좀 해 봐!”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들었던 종류의 말들이다. 쌍꺼풀 없이 작은 눈에 더해 눈꼬리마저 올라간 탓에 아이라이너로 매일 눈매를 순하게 교정해야 하는, 코와 입마저 오목조목 작게 박힌 얼굴. 간단하게 묘사한 내 얼굴은 글로만 봐도 썩 예쁜 얼굴은 아니다. 간혹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는다면 ‘나름 귀엽다’라는 애매모호한 표현 정도? 이러나 저러나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여배우상으로 예쁘장하게 생기지 않은 외모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썩 접근하기 쉽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덕에 살아오면서 잦은 오해를 받아왔다.
여기에 덧붙여 성격은 또 어떤가? 잘 웃고 까르르 빵! 터지는 발랄한 성격이나 사근사근한 성격도 아닌, 극도로 내향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얼마나 내향적인지, 카페에 가면 종업원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그놈의 메뉴판만 쳐다보며 주문을 할 정도이다. 또 낯가림은 어찌나 심한지, 업무상 미팅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3일 전부터 예상 질문지를 뽑아 집에서 혼자 시뮬레이션을 하곤 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해나가는 연차가 오래 될수록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 더욱 쉽게 적응해야 하는게 맞는 일임에도 도무지 이 내향적이고 불편한 성격은 바뀌질 않으니… 이럴 때마다 외향적인 사람,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 인간 비타민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다시 한 번 <성격 개조 프로젝트>에 돌입할까 고민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성격 개조 프로젝트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매년 반복되었다. 매년 3월, 새학기가 되어 반이 바뀌면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같이 있어줄 친구를 만들고자 고군분투 했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도 물어보고 좋아하는 간식을 몇 개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뽐내느라 바쁜 새학기에 나처럼 우물쭈물 하는 아이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나름대로는 용기를 낸 것이었지만 외향적인 아이들 사이에서 이 정도의 용기는 눈에 차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소심한 첫 며칠을 보내다 보면 착한 친구들 몇몇이 먼저 다가와줬고, 그들과 어울리며 1년을 보냈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초, 중,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 대학생이 되니 이제는 정말 바뀌고 싶었다. 절실하게 바뀌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세상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진실을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스스로 흔쾌히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함께 할 무언가’를 찾았고, 친구의 권유로 대학생 연합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서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막상 3월 개강 시즌이 되자 친구는 학과 내 학회 활동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친구의 말에 나 또한 동아리 가입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앞으로도 영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갈 것만 같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생에 최소 한 번 쯤은 터닝 포인트가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동아리에 혼자 가입해서 열심히, 꿋꿋하게 활동하기!’를 목표로 세웠고 이것이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인터넷으로 동아리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고 OT날이 다가왔다. 막상 당일이 되니 호기롭게 마음 먹었던 것과는 달리, 약속된 장소에 나갈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OT 시작 직전에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들과 함께 친해져서 대학 생활 4년 내내 재미있게 동아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친해진 친구들과 졸업, 취업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문득 한 번씩 생각한다. 내가 저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저 때의 나는 정말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 때의 간절함이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20살의 패기에 미치지 못하는, 오히려 퇴보한 듯한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그 때의 간절함은 희미하게라도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되돌아보면 20살에 보였던 나의 패기 넘치는, 너무나도 외향적이었던 그 모습은 24살에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연합 동아리에서 한 자리 차지해 무사히 안착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여대에 다니면서 ‘주체성’을 주입 당하다시피 한 덕에 한동안 주변에 ‘자기 할 일 똑부러지게 잘 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애’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의 가운데에 있었던 나는 그게 마냥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25살, 취업 시즌을 겪으면서 힘든 시기임에도 타고난 성격과는 달리 과도하게 활발하고 외향적인 ‘척’을 하며 살아가다보니 예민함과 우울함이 겹쳐들어 소위 ‘현타’가 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내가 아닌 남처럼 힘들게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거지?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진짜 내 모습이 달라서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라는 자괴감 어린 생각에 빠져 매일을 보냈다. 이런 고민과 더불어 연속된 3번의 취업 시즌에서 줄줄이 광탈의 고배를 마시면서 계속해서 위축되었던 나는 다시 예전의 그 낯가림 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루프탑에서 한 계단씩 내려오듯 점차적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 그리고 취업 시즌의 극도로 예민하고 고민 많던 시기의 꽤나 멀어진 시간을 사는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꼭 모두가 외향적이고 활달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 외향적이고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묵묵히 바라봐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요즘 책이나 글들을 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혹은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 어필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탈바꿈’ 할 것을 쉽게 권유한다. 나 또한 예전에는 그렇게 나를 바꾸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상반된 두 세계를 살아본 결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 앉아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든, 무엇을 해도 효율이 가장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안 맞는 옷을 억지로 껴입고 있으면 옷매무새를 자꾸 만지게 되고 남들이 지금 이 옷을 입은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은 스스로 벗게 되는 법이다. 좋지 못한 버릇은 고치는게 좋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내 마음에 들게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남의 기준에 맞추어 맹목적으로 나를 바꾸려고 하고, 내 잣대와 내 기준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기준 없이 나를 바꾸려고 하면 결국에는 스트레스와 자괴감으로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나가자고 다짐한다. 외향적이고 활달한 인싸들과 비교해서 내가 조금 초라해보이면 어떤가? 나만의 내실을 쌓으면 될 일이다. 삶에는 저마다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다. 인싸들도 고충은 있는 법이다. 안 맞는 옷을 입고 불편한 자리에 가서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도 그만큼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그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고, 그렇지 못할 것 같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할 때, 나의 가장 편한 모습이 돋보이는 상황에서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