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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Feb 12. 2023

말로만 미니멀라이프

추억까지 버리긴 어려우니까

미니멀라이프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시작이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필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금방 찾아내서 쓸 수 있는 것. 그렇게 살면 나라는 사람도 정돈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제목에 미니멀라이프나 정리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책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지금은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다.)


볕이 드는 따스한 창과 물건이 없는 말끔한 거실, 티셔츠가 각 맞춰 정리된 서랍장, 크기별로 나누어진 접시, 몇 개 안 되는 화장품병이 놓인 원목 화장대 같은 사진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편안하고 따스해져서 자꾸만 다시 보게 되고,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다.


우리 집은 그런 모습일까? 추구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지 않은가. 한창 어지르며 노는 아이 둘과 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으나 잘 들여다보면 문제는 나한테 있다. 미니멀라이프의 첫 번째 과제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책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쉽게 버릴 수 있는지, 버리기 위한 순서는 어떤지에 많은 부분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한다. 머릿속으로는 다 알겠는데 실천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 통지표와 대학 합격증 같은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찢어서 버리는 순간 그 시절이 통째로 날아가버릴 것 같은 공포가 드는 것이다. 


버리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아이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만들기 한 것, 다 푼 문제집,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적힌 색종이 쪽지들, 졸라맨을 그려놓은 아이들 그림 같은 것....... 방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자잘한 것들을 구겨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며 풀로 붙여가며 만든 성의가, 열심히 덧셈 뺄셈을 한 흔적이, 삐툴빼툴한 글씨로 마음을 표현한 진심이, 어릴 적에만 그릴 수 있는 어설픈 솜씨를 무시해 버리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만든 것들

아이들 몰래 쓰레기봉투에 담아 넣으면서 쿵 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물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삭히는 시간을 갖는다. 시간이 지나면 아까운 마음이 숙성되고 비로소 버릴 용기가 생긴다. '이쯤이면 되었어. 이만큼 보고 칭찬해 주었으니 이제는 괜찮아.'와 같은.



내가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후로는 물건을 살 때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예쁜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닌지, 꼭 필요한 것인지, 집에 비슷한 것이 있는지, 버릴 때 괜찮을지 같은 것들을.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쉽게 사들였다가 버리면서 오래 고민하는 일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커피를 여러 잔 마시면 받는 연말 다이어리, 예쁜 스티커나 책갈피, 기념품샵에서 파는 마그넷, 반짝이는 키링이나 귀걸이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지만 욕구를 꾹 누르고 지나치고 있다. (물론 지나치지 못하고 손에 들려 있을 때도 있다.)


미니멀이라는 단아한 느낌을 주는 말이 좋다. 비어있다는 것은 여유로움도 함께 준다. 


책꽂이에 남은 공간이 있어야 새 책을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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