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나의 아버지는 내가 7살때 돌아가셨다.

나는 비오는 날 꽃상여에 올라서 어리둥절하게 산소로 갔다.

아버지는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 일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줄 사건이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 수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아빠역할을 해야한다고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했다.


내 꿈은 일찍 돈을 버는 것이었다.

가족의 형태는 아빠가 돈을 벌어오면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고 생활비를 쓰는 그런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공부했다.

왜냐면 공부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들어서다.

나의 사춘기는 남들보다 빨랐고 깊었다.


그렇게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

서울대에도 가고, 한의대에도 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좋은 아빠역할을 한것처럼 생각했다.

홀로 고생고생하며 나와 동생을 키워준

엄마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오랜시간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긴 근면성실은 나의 성격이 되었다.

가끔 남들로부터 인정에 민감한 나의 모습을 보면

아, 어렸을때부터 니가 아빠역할을 해야한다는 말을 들어서구나

그런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기적과도 같다.

그 시골에서 삐뚤어지지 않고 곧게 자란 내가 대견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나를 키워준 가족들이 고맙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버지는 연구실에서 근무했는데, 독한 화학약품을 많이 다루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이라도 나는 그 연구실로 뛰쳐들어가 뒤집어 엎고 싶은데

이미 많이 흘러버린 세월 속에,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수 있는 동력으로 녹아버렸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운건 그렇게 열심히 살며, 지칠때다.


지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힘들고 지칠 때가 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다.

40대가 되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사실 예전처럼 뚜렷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를 치열하게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에게 그 관심이 옮겨졌다.

그래서 힘든일이 생기면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힘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그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 부분이 제일 마음아팠을것 같다.

지금의 내 아이의 나이인, 어린 나를 보며

이 아이는 어떻게 될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그 마음이 가끔 전달이 된다.

아마도 굉장히 흐뭇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아버지, 저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참 고생많이하셨습니다.

이제는 전처럼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참 많이 노력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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