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서 연기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무대제작에 참여해 본 적은 있는가?
반 친구들과 장면만들기를 완성해 본 경험이 있는가?
아이들을 무대에 세우는 공연발표를 진두지휘해 본 적이 있는가?
학교로 찾아오는 예술강사와 협업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연극놀이 관련 연수에 참여해 본 경험은?
연극교육 관련 자료나 책을 찾아보고 동료들과 스터디모임을 진행했는가?
혹은, 이미 연극놀이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는가?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에는 위에서 열거한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본질상, 연극을 가르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연극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교과서적으로 정리를 해 보자면, 연극을 가르친다는 것은 ‘연극언어’들, 곧 말, 동작, 움직임, 무대, 소리, 공간, 매체, 이미지, 빛 등의 요소들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그에 대한 예술체험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보통 연극전문인을 양성한다고 할 때 필요로 하는 연출자, 연기자, 무대전문가, 극작가 등의 전문성을 끌어내기 위한 체험과 훈련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극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힘들- 언어능력, 사회성, 협동능력, 문제해결 능력, 표현력 증대, 잠재성 개발, 미적감각 함양 등’에 대해 탐색하고, 이러한 힘들을 참여자들이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참여자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교육연극 연수를 할 때면, 교육연극을 연극과는 다른 어떤 것, 교육연극을 위해서 정리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트화된 어떠한 도식과 방법론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만나곤 한다. 그분들은 보통 이렇게 질문 혹은 요구하신다.
“이러이러한 문제로 아이들과 연극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에 관한 연극대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특화된 방법이 있을까요?”
“활용하신 소품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그 소품을 써서 할 수 있는 연극놀이 방법이 정리되어 있나요?”
“오늘 사용하신 음악의 음원을 제게도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 선생님이 진행하신 프로그램을 정리해서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 혹은 요구가 가능한 것은 연극을 가르친다는 것을, 아주 효율적인 기술과 방법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무도 당당히 프로그램을 달라고 요구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연극은 통합예술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이 3차원에서 만나는 통합예술이다. 또한, 미술, 음악, 움직임, 언어, 논리 등의 다양한 장르가 복합된 융합예술이다. 지성과 감성이 함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계되어 사고를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예술체계이다.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가 결코 몇 번의 연수와 패키지프로그램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교사이자 예술교육가인 에릭 부스(Eric Booth)는 예술교육의 전문가인 예술가교사(teaching artist)를 “예술의 기량을 가르치는 일을 넘어, 타인을 예술적으로 교육하는 일을 경력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예술가”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가르친다는 행위의 80%를 차지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 곧 됨됨이이며, 타인을 가르치는 행위자체가 예술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필자는 이 정의에 적극 공감, 지지한다.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 곧 연극을 경험하도록 하는 행위는 단편적인 기술들의 전수와 공급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교사와 학생, 이끔이와 참여자가 모두 함께 연극의 세계와 공간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연극은 인간의 말과 행동을 다룬다는 이유로 전공자가 아니어도 지도할 수 있다. 그 누구든지 연극을 시작하고 지도할 수 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에 관심을 끌게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 연극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한 관심을 내 교수학습방법에 적용하고 싶어졌을 수도 있고, 요즘 교육연극이 대세라고 하고, 교과서 안에 실제로 단원이 있어서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대학시절 혹은 그 전에 동아리 등에서 무대에 서 본 경험이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끌게 했을 수도 있고, 아예 대학원 진학 등을 계획했거나 전공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스터디모임이나 교육 관련 교사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고, 나름 연극을 통한 수업에 자신감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어느 경로를 통해서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가 시작되었건, 그건 자신의 정체성, 됨됨이와 같이 한발 한발 닦아나가야 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처음의 시작은 매우 효율적인 접근으로 촉발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이 지속해서 진지하게 계속된다면, 위에서 제시했던 질문의 예들은 다음과 같이 변화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연극을 이루는 요소들에 관한 연구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즉흥으로 장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교사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학교라는 공간이 좀 더 창의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요?”
연극은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감각과 언어, 움직임이 토대가 되는 예술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에 들어선 이상, 스스로 연극을 경험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연극을 경험해나가는 여정에 들어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는 단순히 기능적인 방식으로 연극지도를 하는 것 이상의 총체적이고 융합적인 행위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가치들을 바탕으로,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를 위한 기본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무엇보다도 먼저 교사들이 연극을 경험하고 그 재미를 느껴야 한다.
강조했듯이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는 방법이 아니라 경험이다. 실제로도 다양한 연수에서 만난 교사 대부분은 연극의 매력을 발견한 분들이다. 최소한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실마리들을 가지고 있다. 공연 속에서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거나, 직접 연기를 해보며 다른 연기자와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교육연극 수업을 하는 걸 보면서 관심을 두게 되었다거나 등등.
이 최소한의 실마리에서 출발하는 교사와 연극교육을 해야 한다는 정당성에서 출발하는 교사는 이미 그 몰입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수많은 연수에서, 교육현장에서 확인하였다. 실제로 연극에 몰입해서 재미를 느껴볼 기회를 교사가 직접 갖는 것은 그 어떤 방법론적인 연수 이전에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몸짓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표현을 함께 공유하고 그 표현에 성취감을 느껴보는 것,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타협해가며 장면을 만들어보는 성취감, 머릿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발현되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 소품, 노래, 음악 등을 장면에 적절히 배치해보는 노력, 다른 친구들의 장면에 대해 솔직하게 논평해보는 경험 등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 이상의 더 훌륭한 연수가 있을까? 한 편의 연극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직접 겪어보면서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이끔이로서 어떠한 자세와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를 직접 터득해가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는 듯하다.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무대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던 경험 혹은 매우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지시만을 받으며 장면을 만들어봤던 경험 등이 연기자가 되어 무대에 서는 데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연극을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데는, 본인이 연극을 하면서 겪은 모든 경험이 매우 소중한 가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교사가 이미 연극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다음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진행되어간다. 당연히 공연을 보거나, 스터디 모임을 찾거나, 연수를 찾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연극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교사 스스로 연극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환경에 교사 자신을 넣어보길 바란다. 그 역동이 당신을 그다음 단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2. 자신이 알고 있고 경험한 것으로 연극의 세계를 규정 지어서는 안 된다.
‘연극’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공연? 무대? 대사? 배역? 혹은 연극놀이?
배우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강사는 주로 연기지도의 방식을, 그리고 연출을 기반으로 하는 분들은 연기지도보다는 작품만들기, 구성을 선호할 수 있다. 실제로 다년간 연극반의 풍경을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연극수업의 모습은 예술강사의 경험과 오롯이 닮아있었다. 가르치는 행위의 80%가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다시금 실감 나는 순간이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교회에서 연극을 배우며, 보며, 하며 자라났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8년 이상을 교회학교 교사를 하며 여름, 겨울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술제에서 연극을 만들고, 찬양대에서 율동과 이야기를 섞은 뮤지컬 형식의 찬양제를 만들어내었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어려운 수행과제라기 보다는 일상의 즐거움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정작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극단에 들어가고, 대학원에서 전공하면서는 한동안 내가 연극지진아라고 생각했었다. 연극을 관통해내는 주제를 탁월하게 표현해내야만 한다는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극단과 대학원에서의 연극은 그야말로 제작방식의 공연,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대한 작품의 탄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인물분석과 무대 동작선의 연습, 무대장치와 배우들 간의 연기의 앙상블 등 모든 것이 내가 하는 행위, 나의 즐거움보다는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작품을 통해서 표현해내야 하는 미학과 양식에 대한 싸움이었다. 나중에 아동청소년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우리가 통으로 연극으로 말하는 세계 속에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drama)의 세계와 무대에서의 공연에 초점을 맞추는 연극(theatre)의 세계가 독립적이면서, 매우 끈끈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연극을 가르친다는 행위는 이 두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실제적인 적용이 가능하게 되면서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연극놀이 연수 등을 통해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교사들은 연극을 놀이 쪽에 가까운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연극반 동아리 등의 경험에서 출발한 교사들의 경우에는 연극이 무대에서 하는 공연, 보여주기 위한 연습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은 ‘연극을 가르치는 행위’에 오롯이 반영되어 그 나름의 차별성을 형성하게 된다. 무엇이 어린이들을 위한 올바른 방향인가? 정답은 없는 것이다. 단, 어느 한쪽으로 연극의 방향성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연극을 가르치는 행위’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여정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연극지도에 대해 자기만의 완벽한 방식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게 된다면, 그 순간이 오히려 위험한 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연극의 세계를 계속 탐색해 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접근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연극의 요소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연극의 요소란 연극을 구성하는 요소, 연극을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말하는 것이다. 연극을 만들 때, 오로지 대사를 통해서 장면을 구성하는 연극만들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소리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 소리와 움직임을 함께 쓸 수도 있고, 인형이나 매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공간에 관한 관심 또한 3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사고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연극이 줄거리 중심이 아니고, 중심일 필요도 없다는 것. 이야기를 다양하게 편집할 수는 방식이 장면구성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극세계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일단 다양한 공연을 많이 접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사의 경험이 곧 가르치는 행위가 된다는 이 진실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3. 교사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의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연극놀이가 주는 신체적인 표현을 통한 해방감에 더 반응하고, 어떤 아이는 참여연극이 제공하는 성인과 아동 사이 상호교류의 경험을 더 필요로 한다. 또 다른 경우 의 아이들은 아동극관람을 통해 얻게 되는 인물과 이야기에의 강력한 동일시 체험에 더 매 력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성격에 따라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더 배우기 도 하고, 언어표현을 통해, 혹은 신체적인 참여를 통해 배운다. ..... 이와같이 연극을 활용 한 교육에서 모든 어린이들에게 전 범위에 걸친 연극(drama/theatre)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글은 연극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 ‘연극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사 자신의 열정과 방법론을 설파하고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참여자중심’의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히려 연극전공자가 된다는 것은 연극의 분야 속에서 자신만의 전공을 훈련, 연구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된다. 그래서 연극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훌륭한 연기자, 탁월한 연출자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교수학습방법의 탐구에 대한 지나친 열정을 가진 교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연극이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자신이 추적하고 찾아내서 만들어낸 연극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왜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가?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성취감, 나의 연구업적 향상, 혹은 구체적인 진로 진도를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연극을 만나게 하려는 이유는 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인식해서, 좀 더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세계에서 성장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학생 중심의 연극교육을 만드는 출발점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나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정서적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감각과 경험을 통해 만나는 연극의 세계에서는, 이끔이와 참여자, 곧 교사와 학생 사이의 정서적 안정감- 우리의 연극 공간에서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고,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을 형성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야만, 표현도 발산도, 소통도, 토론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참여자중심을 실천하는 중요한 연극적 감성은 ‘몸의 리듬’에 대한 관심과 탐색이 라 할 수 있다. 연극은 논리를 수용하지만, 또한 넘어선다. 도입, 전개, 결말이라는 짜인 진행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이다. 몸이 열리고, 감각이 깨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감각열기, 주요활동, 마무리라는 과정과 용어를 선호하고, 수업도 이 과정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초등 40분의 수업 속에서 필요에 따라서는 30분을 감각열기에, 주요활동은 10분 내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좀 더 깊숙한 탐구한 필요한 수업은 80분으로 연계해서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발산하고, 표현하고, 즉흥을 통해 장면을 만들어나가고, 그 장면에서 인물을 형성하는 모든 행위들이 몸의 리듬인 것이다. 연극수업은 철저히 몸의 리듬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연극을 가르치는 행위’는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몸의 리듬을 탐구해나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교사 역시 끊임없이 이 여정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교육연극 전문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우리나라의 현장에 정착되어가고 있는 개념이 있다. ‘Teaching Artist’, 곧 ‘예술가교사’라는 용어이다. 이 용어가 자리 잡기 전에 대중적으로 인식된 명칭은 ‘예술강사’였다. 이 용어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중심으로 전국에 예술강사 파견제도가 운영되면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용어는 2000년대 들면서, 문화실천가, 교육기획자, 교육매개자 등의 역할을 수용해나가고 있지만, 본질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실행하는 직업인이라는 개념이 매우 강하다. 매우 기능적인 용어로 읽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2006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어린이 창의(Arts-Tree)’라는 자체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현재의 어린이, 청소년 대상 창의예술교육과 서울형 예술가교사를 양성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적체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면서, 예술가교사에 대한 개념 정립도 함께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미적체험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지하고 심오한 감동을 주는 어떤 대상에 대해 특별한 방식으로 주목함으로써 감응하고 동시에 이것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되는 상태”
여기서 ‘진지하고 심오한 감동을 주는 어떤 대상’이란, 우리가 연극수업을 할 때의 소재 혹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소재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고, 문제해결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나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교과과정과 연계하여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등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대상을 특별한 방식, 곧 다양한 연극적 요소를 통한, 예술적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감응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미적체험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을 여러 번 체험하고 관찰하고, 그 대상에 대해 몰입하는 방법에 대해 탐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될 때는 하나의 정답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 학생, 한명 한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대상에 대해 표출하고 표현하고 정리해 내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그야말로 총체적이고 융합적인 역량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수많은 지도자가 앞으로의 세계에서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예술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 곧 미적체험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감수성과 감각을 키우는 작업이 아니라,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진지하고 심오한 관계를 맺는 일이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 한명 한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서적, 논리적, 사회적 역량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역시 이러한 미적체험을 안내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러한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연극을 가르치는 행위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연극 수업의 기본이 되는 연극놀이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연극놀이란 놀이-연극놀이-연극이라는 연속개념 안에 위치해 있는 과정중심의 연극이며,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연습하는 과정이 아닌, 참여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즉흥적이며, 창의적인 예술 활동으로서, 연극놀이 이끔이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간단한 연극게임으로부 터 연극만들기까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연극활동이다.”
종종 연극놀이를 교육연극 수업을 하기 위한 몸풀기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러나 연극놀이는 하나하나의 활동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교육연극을 실천해내는 가장 기본적인 연극활동에 대한 개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개별적인 연극놀이 활동을 수집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러한 연극놀이들이 어떠한 목표와 방향성 안에서 설계되고 연계되어, 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교육연극 수업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고 연계과정이다. 융·복합적인 예술활동이며, 미적체험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가인, ‘예술가교사’는 “예술 언어에 대한 이해 및 통합적 활용 능력을 기반으로 교육학적 기술을 겸비한 자로서 학습자를 삶에 대한 미적체험의 기회로 안내하는 자”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의 본질은 무엇일까?”
“드라마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장면만들기에서 무대발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필요한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창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들이 필요한 것일까?”
“아이들을 드라마과정에 몰입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이야기, 혹은 소재가 적절할까?”
“좋은 공연의 조건에는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는 것일까?”
이처럼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가’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그리고 필수적인 진화과정이라는 점에서 ‘예술가교사’의 정체성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예술가교사’는 그야말로 교사와 예술가를 넘나드는 새로운 영역의 전문가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문지방이라는 개념이 있다. 문지방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의미한다. 옛 어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의 상징인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은 이처럼 도전적이고 모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끊임없이 줄타기하며 긴장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탐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균형감과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여정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예술가교사’는 협력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술가교사의 역할을 정리해 보면, 예술가교사 자신이 중심이 되어 수업과 과정의 구조를 기획, 설정하고 진행해나가는 예술가교사 중심 구조, 오히려 대상자인 학생들이 과정의 중심과 구조를 기획,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강력히 뒷받침하는 대상자 중심 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여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수업과 연극 프로젝트의 과정과 성취를 위해서 나아가는 협력예술가 지향구조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첫발을 떼기 시작하면, 오히려 교사 자신이 수업의 모든 구조와 흐름을 기획하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또한, 1, 2학년 등 저학년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연극놀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그들이 잘 참여할 수 있는 연극놀이 활동들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잘 짜놓은 구조 속으로 학생들이 들어와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3학년 이상의 중학년, 고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 학생들이 스스로 장면을 만들고, 장면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또한 여러 가지 요소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학생들은 연극만들기 혹은 연극놀이 수업의 주도권이 학생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더 몰입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교사들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연극만들기 혹은 드라마과정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할까를 고민하며 촉진자 역할에 무게를 두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여정들을 계속 경험하면서, 교사들은 결국에는 자신 역시, 연극활동에 참여하는 한 명의 참여자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다른 영역에 있는 학생 참여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하나의 연극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가는 협력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구조자로서 학생들에게 소재 등을 던져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점차 학생 스스로 과정에 몰입하면서 궁극적으로 그 과정에서 창의적 결말을 함께 도출해나가는 협력자로서의 희열과 기쁨을 맛보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가’로서의 교사는 이미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핵심인물이다. 나는 강의와 연수에서 “한 명의 교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렇다. 이제 학교는 한 공간에 고착되어 있는 교육전달 건축물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내는 중심거점이 되기도 하고,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되기도 한다. 외부의 예술가와 전문가들이 학교 안의 공간으로 들어와 공동수업과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학습의 기회를 얻고 외부로 나아가기도 하지 않는가? 교사는 때로는 기획자가 되어 프로그램을 설계하기도 하고, 섭외자가 되어 적절한 강사를 모셔오기도 한다. 또한, 협력자가 되어 예술강사와 함께 수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 모든 영역에 교사들은 핵심요소이다. 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담당교사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풍경은 너무나도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크게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의 현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역의 문화센터, 노인, 지역이주민, 장애인, 군인, 지역주민 등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들이 기획, 실천되고 있지만,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이 전체 문화예술교육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와 교사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학교와 교사들이 어떠한 관점과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지역의 문화생태계가 바뀌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중심에 교사분들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소박하게 교사가 책임지는 학급의 아이들과 재미있게 교육연극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것으로 출발하는 여정이, 곧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서울문화재단, 『2011 서울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체계 구축방안을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보고서』
에릭 부스 지음, 오수원 옮김,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열린책들, 2017
- 최지영, 『교육연극, 탐색과 여정: 과정중심연극으로서의 교육연극』, 연극과 인간, 2016
최지영, 『드라마 스페셜리스타가 되자- 과정중심의 연극만들기』, 연극과 인간, 2019 수정판
- Jed H. Davis & Mary Jane Evans, Theatre, Children and Youth, New Orleans, Louisiana: Anchorage press,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