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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Jul 27. 2022

최지영의 연극놀이 이야기, 두번째

연극놀이 이끔이의 정체성

  연극놀이 이끔이의 정체성     


  “ 저는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합니다.”

  “ 마음이 따뜻한 예술강사가 되고자 합니다”

  “ 소통을 끌어내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 훌륭한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예술교육가가 되고 싶은가, 혹은 당신은 어떤 예술교육가인가라는 질문에, 종종 이러한 대답을 듣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예술교육가의 전문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영향력 있는 티칭아티스트(teaching artist)인 에릭 부스(Eric Booth)는 티칭아티스트의 전문성은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부터 나온다 했다. 정체성이란 한 인간이 가지는 그 사람만의 마음 밭이라 할 수 있다. 마음 밭은 단지 감정의 자리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헌신하고 소망하고 열정을 다하고자 하는 신뢰의 원천이다. 어떤 이는 이 원천이 매우 정서적인 영역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어떤 이는 매우 이성적인 체계에서 습득된다. 구체적인 관심이 특정한 역량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다양한 관심 속에서 하나의 성향이 발견되기도 한다. 개인별로 모두가 마음 밭을 가꾸는 성향도, 방법도, 시간도 다르다. 신뢰의 원천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가 자신만의 원천을 구체화하게 되고, 그것이 예술교육가의 정체성이 된다. 

  교육철학자인 맥신 그린(Maxin Greene)은 상상력에는 시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이 있다고 했다. 문학적 감수성의 영역을 시적 상상력과 연계시켰고,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와 얽혀있는 감수성과 능력을 사회적 상상력이라는 용어로 접근했다. 예술교육가의 정체성은 시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을 넘나들게 된다. 물론 개인의 성향상, 어느 한쪽이 강화되거나 쏠려있을 수 있지만, 예술체험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넘나들 수밖에 없다. 넘나드는 예술교육가 자신이 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인식한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이 곧 가르치는 행위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술교육가의 사고와 감정과 행동이 곧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정리하며, 필자는 예술교육가의 전문성은 예술교육가의 정체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부스의 말에 심히 공감한다.    

  

  예술교육가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예술교육가가 갖추어야 하는 전문성이라는 관점으로 풀어 말한다면, 그것은 예술교육가가 예술체험의 주체, 곧 예술체험의 ‘작용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체험의 참여자이면서 동시에 인식과 경험을 끌어내는 주체자로서의 경험과 세계관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예술교육가를 ‘연극놀이 이끔이’로 지칭하고 싶다. 여기에서 ‘연극놀이’란 예술작품으로서의 연극뿐만 아니라, 움직임, 시각, 공간 등의 다양한 예술의 체험을 끌어내는 예술 활동이자 예술개념이다.(다음 장에서 ‘연극놀이 이끔이’의 개념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한 명의 개인이 의지를 다지고 선택한 순간부터, 연극놀이 이끔이(예술교육가)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예술체험의 순간들을 끌어낼 수 있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 경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예술체험의 작용 주체’로서의 시작은 참여자로서의 몰입과 기쁨과 헌신을 경험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여자로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이끔이로서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이끔이로서의 초창기 시절 만났던 한 선생님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 참관 수업에서 만난 그 선생님은 발목까지 내려온 드레스를 입고 있으셨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기억되는 학생들이 4계절에 관한 연극놀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마치 마스게임을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선생님은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필요한 기점에서 호루라기를 불면 학생들은 신속히 움직였다. ‘세상에 이렇게도 연극놀이가 되는구나,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참관 내내 떠나질 않았다. 실제로 아이들은 참관하러 간 우리 앞에서 완벽하게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그 기억은 참여자로서의 경험을 함께 나누지 못한 지도자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지금도 일깨워준다. 


  처음의 질문을 필자에게 되돌려 본다. 나는 ‘참여자이면서 동시에 이끔이로서, 예술체험을 끌어내고 공유하는 예술가, 시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을 넘나드는 운영자’인 예술교육가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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