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나를 시작하기 전에
그날 이후 나는 옷보다 마음이 먼저 벗겨진 사람처럼 세상 앞에 벌거숭이로 서 있었다.
아무 일 없던 하루. 예고도 없이 삶은 틀어졌다.
갑작스럽고, 잊을 수도 없는 사건이었지만 나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말해도 쉽게 해소될 종류의 일도 아니었다.
이제는 예전의 몸과 마음으로는 다시 살 수 없다는 사실만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번 벗겨지는 느낌 속에 있었다.
가족 사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 아프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운 몸,
창작 앞에서 자꾸 무너지는 마음까지.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오래 나라고 믿어온 껍질이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장수풍뎅이를 떠올렸다.
때가되면 조용히 탈피하는 존재.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껍질을 바꾸는 방식.
새로운 가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나도 그런 과정 한가운데 있었다.
벌거숭이처럼 드러난 기분을 숨기지 못한 채,
단단하지 않은 몸으로 버텨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 글은 그 시기를 지나며 내가 본 것과 느낀 것들을 적어두기 위한 기록이다.
거창한 회복을 말하는 글은 아니다.
아직도 터널 안에 있는 기분과, 언젠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하루 안에 오르내린다.
확실한 건 아직 굳지 않은 껍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