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아버지는 술과 함께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전보다 더 무거워진 침묵 속에 집 안은 눅눅했고, 대화는 꼭 필요한 말만 오갔다. 다툼도, 부딪히는 소리도 없었지만 아버지 방 근처에는 알코올 냄새가 오래 맴돌았고, 베란다에 쌓여 가는 빈 병들만이 가족 사이의 거리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나는 부엌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집에서 유일하게 수압이 나오는 곳이 그곳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 팔을 들고 샴푸 거품을 털어내던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겨드랑이 쪽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아버지의 손이었다.
“간지럽히면 웃을 줄 알았어.”
술에 젖은 기운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몸이 얼어붙는 순간, 놀랄 틈도 소리를 낼 틈도 없었다. 팔을 위로 올린 채 스스로를 가릴 수도 없었다. 몇 초 뒤에야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이미 그 짧은 순간의 충격이 내 몸 깊숙이 박혔다. 아버지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가족 사이에서 허용된 경계선을 넘어섰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그날 이후 집안의 공기는 달라졌다.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고, 나는 부엌을 지날 때면 그날의 감각이 다시 떠올라 숨이 막혔다. 격한 감정보다 ‘설명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누구에게도 똑바로 말하기 어려운 종류의 사건이었다.
ㅡ*ㅡ
이 시기에 나는 직장 생활을 잠시 접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막 뒤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데도 내가 다가가면 웃음소리가 금세 낮아졌고, 회의 자리에서는 시선이 나를 살짝 피해 바닥이나 벽으로 향했다. 분명한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분명한 배제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걸까.
내가 예민한 걸까.
나는 그저 나름의 아픔을 견디며 조용히 할 일을 해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고, 만약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차라리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앞이 아니라 내 뒤에서, 내가 아닌 ‘그들이 상상한 나’를 만들어 놓고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였을까.
나도 잘못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잘 지내보려고 애썼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표정을 살피고, 말투를 고치려 했다. 하지만 한 번 생긴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는, 내가 아무리 애써 움직여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혼란스러웠고, 자꾸만 내가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점점 날이 서 갔고, 그들의 방식으로 되돌려주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단단히 뭉쳤다. 내 작은 행동도 예의주시 하고 있는 듯 시선이 느껴졌고 실수하면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날이 선 말투로 차갑게 나를 대했다.
어느새 한 번도 대화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내 소문만 듣고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공지 하나를 전할 때도 굳이 나를 건너뛰고 다른 사람을 거쳐 전달되는 일이 쌓여갔다.
왜 그러는지 조심스럽게 물으면 “누구 씨가 불편하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나도 모르는 ‘나’가 어딘가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공기는 집 안에서 느끼던 것과 닮아 있었다.
퇴근길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눈 아래가 유난히 깊게 들어가 보였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말없이 TV를 보고 있었고, 그 시선도, 그 침묵도 어느 날 갑자기 낯설어졌다.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삶의 두 면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유조차 설명할 수 없어서, 내가 파괴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처음에는 엄마조차 믿지 못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그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고 했다. 평생 돈을 안 벌어다 줘도, 평생 바람을 피워도 딸들만큼은 잘 챙겼다고 믿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오랜 인내와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거다.
결국 나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왔다. 삼촌 명의로 비어 있던 좁은 빌라를 급히 빌려 엄마, 나. 그리고 치매가 있는 할머니까지 함께 들어갔다. 벽지엔 곰팡이가 퍼져 있었고, 청소를 해도 금세 눅눅해졌다. 인터넷조차 깔려 있지 않아 휴대폰 데이터를 아껴 썼다.
그때 키우던 작은 거북이도 함께 데려왔다. 비좁고 눅눅한 집에서도 묵묵히 움직이는 그 작은 생명이 이상하게 나에게만은 큰 위안이 되었다.
급여도 없는 창작 업무는 계속되었다.
감정을 집에 두고 작업실로 가면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낼 뿐이었다.
밤이면 방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이어갔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습기 냄새와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뒤섞여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멈추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계획도 없었으니까.
ㅡ*ㅡ
그렇게 6개월을 버티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사과 문자가 왔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술기운 없는 목소리가 느껴졌고, 글자 사이로 지치고 늙은 아버지의 한숨이 배어 있었다.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비도, 앞으로의 계획도 없었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